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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6~7년 전 내가 고등학생이었던 시절에 갑자기 인문학 바람이 불었다. 인문학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대학에서 정시모집이 아닌 수시모집으로 학생들을 많이 뽑기 시작하면서 부터였다. 예전에는 수능 시험 한 방으로 어느 대학을 가는지 정해졌다면 이제 수시 모집이라는 방법이 생겨 학교 성적 이외 논술 면접 등이 중요해졌던 것이다.

논술 시험이 수시 모집에 20~30% 이상을 차지하게 되자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니는 내 주위에 친구들이 갑자기 플라톤의 국가, 데카르트의 방법서설, 공자의 논어 등 원문 보다 쉽게 쓰여진 동/서양 철학 서적을 보기 시작했다.

난 그 당시 학교 내신 성적이 좋지 않아 논술 준비를 등한시 했었다. 하지만 논술 열풍이 너무 거세어 친구들이 보는 인문학 서적을 보지 않고는 대화가 통하지 않았다. 그래서 잠깐 본 기억이 있는데 책 내용 전체가 철학자, 사상가, 문학 작가 등의 책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로 가득했다.

그 구절이 어떤 생각과 시대에 나와 그 사람들이 얘기 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 없이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노자의 도덕경은 "도가도 비상도(道可道非常道)" 등으로만 서술되어 있었다.

그 당시 고등학교에서 알려주고 있는 인문학 학습은 논술 시험을 보기 위해 유명한 사상과 구절을 암기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대학에서 뭔가 다를 줄 알았던 인문학 공부

고등학교 인문학 공부에 대해 실망을 했던 나는 대학은 조금 다르리라는 기대를 하고 철학과에 대학 입학 원서를 썼다. 대학에서는 고등학교와 달리 인문학적 지식을 얻기 위한 잘 정리된 커리큘럼이 짜여 있을 줄 알았다. 그리고 인문학을 통해 현재 시대적 문제와 사람과 사람의 관계적 문제에 대해 토론 하는 시간이 많을 줄 알았다.

하지만 대학 학부 철학과 커리큘럼을 보고 너무나 혼란스러웠다. 2학년이 되어 본격적으로 철학 전공 커리큘럼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첫 시작이 <근대 철학>, <인도 철학의 뒤안길>, <삶의 철학> 등 이었다.

얕은 나의 지식으로 보더라도 '근대 철학을 한 학기 만에 다 다룰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삶의 철학과 같은 경우는 쇼펜하우어, 니체 등 근대 철학 이후에 다루는 과목이었는데 서양 철학사의 근대, 현대적 흐름을 알지 못하고 이런 사람들의 사상을 이해할 수 있을까 라는 걱정이 앞섰다.

결국 <근대 철학> 수업은 데카르트 이후 합리주의와 경험주의에 대한 내용만 다루게 되었고, 그 중간의 서양 철학의 흐름을 건너 띄고 <삶의 철학>의 수업 시간에 니체, 쇼펜하우어, 오르테가 등의 철학자들을 만났다. 철학에 대해 막 입문한 2학년 학부생인 나로서 이 커리큘럼을 통해 서양 철학의 흐름을 알 수가 없었다.

인문학 학습의 방향을 제시하는 <인문학 스터디>

 <인문학 스터디-마크 C. 헨리 (지은이)>
 <인문학 스터디-마크 C. 헨리 (지은이)>
ⓒ 라티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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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4학년 동안 철학 공부에 대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데 인터넷 검색 중 '인문학 스터디' 라는 책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의 첫 표지를 보면 '미국대학 교양 교육, 핵심과정 한국에서의 인문학 공부 안내' 라고 적혀 있었다. 철학 및 인문학 공부에 대해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는 나에게 이 책이야 말로 인문학 공부에 대한 방향을 제시해줄 것 같았다.

미국의 대학 연구소의 (Intercollegiate Studies Institute) 부소장인 마크C. 헨리는 미국의 일반 대학에서 고전과 서구문명을 공부하는데 어려움이 있음을 직시하고 학생들이 교과과정을 선택하는 데 도움이 되게 하려고 이 책을 썼다. 이를 위해 저자와 저자가 속한 대학연구소에서는 미국의 모든 공사립 대학의 강좌를 조사하고, 다양한 전공분야에서 유명한 학자들의 자문을 받았다. 그렇게 해서 저자는 미국의 대학들에 개설되어 있는 8개의 과정을 정리하였다.

이것을 바탕으로 한국의 강유원 외 5명의 인문학 전문가들이 한국의 실정에 맡게 책의 내용을 재배치하여 <인문학 스터디> 라는 책을 한국에 출판 하였다.

책에서 주로 다루고 있는 것은 1. 문학 예술, 2. 철학, 정치, 3. 역사학, 4. 기독교 사상 등 인문학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핵심적인 네 가지 분야에 대한 커리큘럼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단지 커리큘럼만 제시하는데 그치지 않고 각 분야 별로 논쟁이 되고 있는 지점과 꼭 알고 넘어가야 하는 점을 알려 준다.

잠깐 책의 내용을 엿보면 재미난 부분을 발견 할 수 있다. 저자는 경제사상사 공부에 있어서 우리가 많은 편견을 가지고 공부를 하고 있다고 말한다. 대게 많은 사람들이 경제 사상사의 두 가지 큰 흐름인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사이는 좁힐 수 없는 견해의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유주의는 자유를 추구하고 사회주의는 평등을 추구하는 경제 사상이라고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경제사상을 공부하면 이것이 그릇된 편견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한다.

"모든 경제 사상은 나름의 방식으로 풍요와 부의 증진, 자유, 평등 모두를 추구한다. 문제는 어떤 종류의 부, 어떤 종류의 자유, 그리고 어떤 종류의 평등을 선택할 것인가이다."

인문학 잘하고 싶으면 스승과 친구를 사귀세요!

저자는 인문학 공부 필요한 것은 커리큘럼과 각 분야별 논의 지점을 아는 것 뿐만 아니라 스승과 친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반드시 자신의 전과목에서 탁월하면서도 학생을 배려하는 훌륭한 스승을 찾아나서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교수를 찾았다면 그와 관계를 돈독히 해야 한다. 좋은 스승의 관심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학생들의 사유의 힘은 굉장히 발전하게 될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정의에 관해서는 한권 분량만 할애한 반면 우정에 관해서는 두 권을 할애했을 정도다. 가장 좋은 교우관계는 지적인 교유관계이다. 그렇게 하면 학생들은 '혼자서 배움의 길을 나서는 것' 보다 휠씬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러한 교우관계는 학생들의 인생을 변화시킬 것이다."

마지막으로 편역자들은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의 인문학 공부에 많은 진전이 있기를 기원하며, 더 나아가 다양한 관심사를 가진 이들이 인문학을 매개로 하여 함께 공부하는 일이 많이 생겨나길 바란다"라고 말하며 한국 사회에 인문학 바이러스가 여러 공간에 감염되기를 바라고 있다.

철학, 역사, 문학, 예술 등 단어만 들어도 무엇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한 학문이다. 하지만 <인문학 스터디>에서 제시해주는 커리큘럼과 각 분야별 논쟁 지점들을 살펴보고 인문학 공부를 한 번 시작해 보는 건 어떻까? 주변의 친구들과 함께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인문학 스터디 - 미국대학 교양교육 핵심과정과 한국에서의 인문학 공부안내

마크 C. 헨리 지음, 강유원 외 편역, 라티오(2009)


#인문학#인문학스터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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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부산본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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