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계 올림픽에 가려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러시아 이르쿠츠크 바르나울에서 지난 달 15일(한국시간 16일 새벽) 한국인 연수생 강 모씨(22, 광주교대)와 정 모씨(22)가 인종주의자들로 보이는 3명의 러시아 청년들에게 피격을 당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은 치료중이던 강 모씨가 사망한 18일에서야 국내 몇몇 언론사에 보도가 되었지만 이내 동계올림픽의 열기에 묻혀 잊힌 사건이 되었다. 후속 보도라고는 유해가 한국으로 돌아와 쓸쓸한 장례식이 열렸다는 것 정도 소개되었을 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잊힌 사건이 되었지만 가해자의 나라인 러시아에서는 이를 잊지 않은 듯 싶다. 2월 마지막 날 러시아 안티 파시스트 단체인 '안티파'와 '1월19일 연합' 주도로 바르나울 시민 130명이 모여 시내 중심가 광장에서 한국인 연수생 강씨의 추모 행사 및 인종차별 범죄 규탄시위를 벌였다.

두 단체 회원들과 바르나울 시민들은 사망한 강씨의 초상이 담긴 피켓과 현수막을 들고 파시즘 규탄 성명을 냈으며, 시내 광장에 별도의 장소를 마련해 촛불을 밝히는 추모행사를 했다. 이날 시민들이 적은 '우리가 기억하는 한 그는 살아있다', '영원히 잊지 않겠다'라는 문구가 인상깊다.

이들은 바르나울 해당기관에 정식으로 집회 신청을 해서 공식 시위를 벌였다. 참고로 러시아 집회 관련 현행법은 해당기관에 15일 전, 늦어도 10일 전에 집회명, 집회에 사용할 피켓에 들어갈 문구 등이 포함된 집회 신고서를 제출하게 되어있다. 이를 근거로 봤을 때 이들은 강씨가 사망한 직후 집회 신고를 한 것으로 보인다.

행사 주도 단체 중 하나인 안티파는 '안티파시스트 연합'의 줄임말로 푸틴 현 총리의 대통령 재임시절과 현 메드베데프 대통령 정권을 국민을 억압하는 파시스트 정부로 규정하고 파시즘에 맞서 인권 및 언론의 자유를 위해 시위와 집회를 빈번하게 열고 있는 단체다.

또한 이들은 정부 말고도 인종주의, 사회주의, 반유대주의, 외국인 혐오 및 베타주의 등도 파시즘으로 규정한다. 다만 아직까지 규모면이나 시위의 일관성, 통일성은 다소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번 추모집회와 파시즘 규탄대회는 러시아 언론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강씨 사망 당시 단신 위주로 사건을 보도했던 대다수 언론사들이 이번 집회를 보도하면서 강씨 사건에 대해 재조명을 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간 자국에서 일어난 외국인, 특히 유색인종에 대한 폭행사건이나 사망사건에 대해 러시아인들은 단순히 불량청년들의 치기어린 폭력사건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강했다. 더불어 러시아 정부 또한 외교분쟁을 피하고자 인종차별 범죄라기보다는 지역 폭력배들의 우발적인 폭력사건으로 축소하는 모양새를 보여왔다.

하지만 점차 폭력사건에서 살인사건으로 그 범죄의 강도가 세지면서 러시아 정부는 인종차별 범죄에 대해 가중처벌 등 법적인 대안을 마련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