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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암호를 끼고 돌아 들어가는 후곡,유경,왕대마을 길은 한가한 드라이브 코스다
 주암호를 끼고 돌아 들어가는 후곡,유경,왕대마을 길은 한가한 드라이브 코스다
ⓒ 서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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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월 정도 줄기차게 바이크를 타고 돌아다녔다. 주변에서는 깜짝 놀라는 표정들이다. 어떤 이는 바람났냐고 그러고 어떤 이들은 제정신이 아니라고도 한다. 차를 타고 돌아다니면 뭔가 일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바이크를 타고 돌아다니니 여기저기서 한량이라는 소리만 들릴 뿐이다.

그나마 다행으로 20년이 넘은 바이크, 일명 '노쇠난테'를 타고 다녔기에 망정이지 소리 좀 요란하고 번쩍거리는 것으로 광(?)을 내고 다녔다면 시골바닥에서 입방아에 살아남지 못했을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이 기회에 확실하게 좀 설명해 두고 싶은 것이 있다. 바이크는 이동수단으로 매우 편리하고 유용하며 이동하는 곳 어디에서도 현지인들과 같은 공기를 마시고 있기에 유리창을 올려 소통을 차단해 서로 딴 세상인 그런 운송수단과는 애초부터 다르다는 것이다.

송광사에서 나와 낙안읍성, 벌교쪽으로 약 2킬로미터 정도 오면 평촌마을이 우측으로 나오는데 그곳으로 들어와 신평교를 지나면 가고자 하는 목적지인 후곡,유경,왕대마을이다
 송광사에서 나와 낙안읍성, 벌교쪽으로 약 2킬로미터 정도 오면 평촌마을이 우측으로 나오는데 그곳으로 들어와 신평교를 지나면 가고자 하는 목적지인 후곡,유경,왕대마을이다
ⓒ 서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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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필자가 요즘 다시금 음미해 보는 김춘수님의 꽃이란 시다. 얼마나 의미 있는 시인지 모른다. '내가 그를 꽃이라 불러주니 그는 내게 와서 꽃의 향기를 내뿜었다. 그런데 내가 그를 꽃이라 부르기 전에는 그저 하나의 몸짓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와 똑같이 '나의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나의 이름을 부르면 나는 그에게 꽃이 되겠다는' 필자가 연재 제목으로 '바이크올레꾼'이라는 신조어를 집어넣은 이유가 지금껏 다소 껄렁하다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는 바이크지만 서로를 꽃이라 부르면 서로 꽃이 돼 좋은 향기를 뿜어낼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서론이 길었지만 아무튼 오늘도 바이크와 바이크 탄 사람에 대한 현지인들의 시각이 변해 '바이크올레꾼'이라 불러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송광사 가는 길에서 평촌마을 쪽으로 돌아들어가 자리 잡은 모후산 자락의 마을, 송광면 후곡마을과 유경, 왕대마을로 애마 노쇠난테의 머리를 돌렸다.

주암호를 가로지르는 다리인 신평교, 건너편이 평촌마을쪽이며 후곡,유경,왕대마을은 섬처럼 보인다
 주암호를 가로지르는 다리인 신평교, 건너편이 평촌마을쪽이며 후곡,유경,왕대마을은 섬처럼 보인다
ⓒ 서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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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모후산(母後山)은 화순군과 순천시의 경계를 이루는 높이 919m의 산이다. 나복산(蘿蔔山)이라고 부르다가 고려 공민왕 10년인 1361년에 홍건적의 고려 침공이 있었을 때 공민왕 부부가 태후와 함께 피난해 산 것을 계기로 모후산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후곡마을은 산촌체험마을로 지정돼 있으며 각종 야생화와 산나물, 산열매가 널려있고 야생동물과 철새, 텃새들의 보금자리이며 가재, 산개구리, 수서곤충 등 생태계가 잘 보존된 계곡과 웅덩이, 습지가 어우러져 다양한 생태를 관찰할 수 있어 환경과 생태교육은 물론 생태관광지로서 각광을 받고 있는 마을이다.

왕대마을은 공민왕이 피신해 머물렀던 마을이며 그 아래 유경마을은 공민왕이 왕대에 머무르자 서울도 따라서 옮겨왔다고 해서 '유경'이라 이름 지었다는 설이 있다. 이곳과 깊은 연관이 있는 공민왕은 고려 31대왕으로 충숙왕(忠肅王)의 둘째 아들이며 어머니는 명덕태후(明德太后)이다. 원나라에서 10여 년간 머물다가 1351년 충정왕(忠定王)의 뒤를 이어 즉위했다.

마을앞의 범죄 없는 마을 푯말
 마을앞의 범죄 없는 마을 푯말
ⓒ 서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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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필자가 이곳으로 말머리를 돌린 것은 설화와도 같은 역사적인 일의 사실관계를 따져보기 위함은 아니다. 도대체 인간에게 얼마나 편안함을 주기에 어미 모(母)자를 쓰는 모후산이며 얼마나 안전하고 아늑하기에 왕이 피신을 왔다는 얘기가 전해 내려오는가 하는 표면적이며 동물적인 감상차원이었다.

방문한 느낌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있지만 양지바르고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지만 결코 외진 듯 보이지 않는 요새와 같이 탄탄하고 어머니의 품속같이 편안하다는 인상이었다. 집들은 산줄기 하단의 둔덕에 자리하고 있고 나지막한 개울이 그 둘레를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눈에 띄는 푯말인 '범죄 없는 마을' 그것이 형식적이거나 가식적이라 해도 이미 진하게 와 닿는 그 무언가의 살가움이 있었다. 그럼 법 없이도 사는 마을인 후곡, 유경, 왕대마을은 어떻게 찾아갈까?

모후산을 뒤로하고 둥지처럼 앉은 마을 왕대마을
 모후산을 뒤로하고 둥지처럼 앉은 마을 왕대마을
ⓒ 서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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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사에서 출발해 낙안읍성, 벌교 쪽으로 향하다 보면 약 2킬로미터 지점에 길가 우측으로 평촌마을이 있다. 주암호를 끼고 있는 마을인데 이 마을로 들어와 5분 정도 호반 길을 달리면 약 300여 미터 되는 '신평교'라는 다리를 만나게 된다. 흡사 섬으로 들어가는 듯 한 착각이 드는 곳.

이 다리를 넘어 우측으로는 유경, 왕대마을이며 좌측으로는 후곡마을이다. 어느 곳으로 들어서든 원으로 연결돼 있기에 되돌아 나올 필요는 없다. 필자는 좌측으로 먼저 들어가서 우측으로 나오는 길을 택할 것을 권한다. 그래야 머릿속에 얘기가 정리된다.

정확한 문헌상의 근거는 없지만 홍건적난을 피해 은신했던 공민왕 일행이 지금은 생태체험마을로 변신한 후곡마을에 머물다가 좀 더 안전한 곳으로 이동한 것이 고개 너머에 있는 왕대마을이었을 것이라 생각되는데 지형은 그것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좌측으로 들어가 만나게 되는 후곡마을은 마을 터가 널찍하다. 은신처라기보다는 생활 근거지처럼 보이는데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답답한 느낌 없이 한가로우면서도 여유로움이 있는 마을이다. 만약 공민왕 은신처라는 주제를 가지고 방문하지 않았다면 생태체험마을에 관해 좀 더 깊숙이 봤겠지만 이 정도 느낌만으로 1차 방문의 소감을 정리한다.

왕대마을 들어가는 길은 숲으로 둘러싸여있다
 왕대마을 들어가는 길은 숲으로 둘러싸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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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후곡마을을 돌아본 다음에 마을 아래쪽에서 우측으로 난 길을 따라 약 2km 정도의 낮은 재를 넘으면 후곡마을과 비슷한 형태지만 다소 작은 유경마을을 만나게 된다. 마을 앞에 조성해 놓은 연못이 인상적이다. 이 마을이 공민왕 피신 때 조정의 신하들이 따라 내려와서 거처했다고 붙여진 이름 유경(留京)이다.

여기서 부터가 매우 흥미로운 여행이 될지도 모른다. 유경마을에서 좌측으로 난 산길이 있다. 그곳이 왕대마을로 가는 길인데 지금은 넓히고 포장을 해서 다소 길다운 길이지만 아마도 옛날에는 그저 짐승이 지나 다닐 정도의 쉽게 알아차리기 힘든 길이었을 것이다.

그런 길을 따라 약 5분~10분 정도 가면 개울이지만 좀 깊다 싶은 곳에 작은 다리가 하나 놓여있고 그 다리를 건너서 위를 쳐다보면 놀라운 광경이 펼쳐진다. 어머니 품 속 같은 모후산이 버티고 있고 언덕배기에 작지만 눈에 확 띄는 왕대마을이 펼쳐진다. "이곳이 그곳이구나" 하는 감탄사가 저절로 나올 정도다.

온통 산과 숲으로 둘러싸여 있어 공중에서 촬영하고픈 욕심이 듬뿍 솟아나는 마을, 만약 백설공주의 영화를 찍는다면 이곳은 숲속의 일곱난장이가 살았던 마을로 제격인 곳, 바이크올레꾼인 필자가 꽃이라 불러주기 전에 이미 꽃향기를 품고 있던 곳.

50여 가구 정도 살고 있는 마을의 집들은 층층이 놓여있고 "너무 외져서 안 좋다"는 주민들의 얘기가 귀에 들어오지 않을 만큼 금세 푹 빠져들게 만드는 묘한 마력을 지니고 있었다. 다시 한 번 꼭 방문해 보고 싶은 곳 중에 한 곳인 것만은 틀림없다.

덧붙이는 글 | 남도TV에도 실렸습니다



태그:#바이크올레꾼, #송광면, #후곡마을, #유경마을, #왕대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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