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탤런트 출신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화부) 장관의 활약상은 참으로 약여하다. 그는 장관에 취임하면서부터 역대 장관들이 하지 못했던 매우 특별한 일들을 감행했다. 전임 정권 때 임명된 임기가 남아 있는 공공기관의 수장들을 불명예스럽게 몰아내는 작업을 했다. 치욕스러움을 안겨주는 방법을 동원하면서 어설픈 '이념'을 전면에 내세우기도 했다. 그는 '형질변경'을 도모하는 일에 선봉장 역할을 자임했고, 자연 난폭한 전투적인 방식을 활용함으로써 '완장'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문화 쪽부터 정리정돈을 해야 한다는 어떤 인식에 따라 국가사회의 '정신'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 문화부장관이 누구보다도 선두에 나서서 그런 일을 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를 곱씹게 한다. 우선은 문화에 대한 인식이 매우 조잡함을 느낄 수 있다. 문화란 그렇게 쉽게 강제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한시적인 현실권력과 제도의 힘으로 규제하고 방향을 잡는다고 해서 문화의 밑바탕까지 변화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문화는 흐르는 물과 같은 것이다. 물은 직선으로만 흐르지 않는다. 수많은 곡선과 변형들을 아우르고 수용함으로써 흐르는 물이 생명력을 유지하듯 문화도 그런 것이다.

 

공공기관의 수장들을 갈아치우고, 방송을 장악하고, 이념적 명분까지 동원하여 문화마당의 포지션을 확보한다고 해서 한시적 현실권력의 어떤 목표가 영구히 구현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만일 그것을 목표로 했다면 문화에 대한 지독한 무지다.

 

문화에 대한 무지와 모독을 드러내는 일에 한 나라의 문화정책을 총괄하는 문화부 장관이 앞장을 서고 전투적인 모양새로 일관하는 것은 슬픈 일이다. 여기에서 문화부 장관에게는 일정한 학문적 소양과 함께 고도의 지성적 풍모가 겸비되어야 함을 생각하게 된다. 프랑스 드골 정부의 문화부 장관이었던 앙드레 말로처럼 '문화'라는 이름과 걸맞을 정도의 지성을 갖춘 인물이 등용되었다면 오늘처럼 온 나라의 문화계가 살벌한 분위기 속으로 휘말려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무튼 한 나라의 문화정책을 총괄하는 장관이 '완장'이라는 별명을 얻고, 드라마 속의 '망나니'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는 사실은 불행한 일이다.

 

대통령부터 갖가지 범법 위법 혐의에다가 병역 미필 등 '태생적 한계'를 안은 정권으로서는 겸손과 포용성을 지니고 사회통합 쪽으로 크게 지혜를 발휘해야 하며 그 일에는 문화부 장관이 앞장서야 한다. 국가사회에 조잡하고 천박한 이념의 기류를 확산시키며 거칠게 시비를 만들어내기보다는 조화와 균형의 미덕을 추구하는 것이 문화의 본령에 속하는 것임을 누구보다도 그가 정확히 인지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5년이라는 한시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권력에 도취된 그는 초장부터 브레이크가 고장난 자동차 형국이 되어 버렸다. 거의 범법에 가까울 정도로 가속 페달을 밟는 것이 관성이 된 나머지 최근에는 문화부 산하 기관인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해괴한 짓을 저질렀다. '한국작가회의'에 대해 "'불법 폭력시위 불참 확인서'를 제출해야만 정부에서 지원하는 3400만원의 보조금을 지원해 주겠다"는 기상천외한 코미디로 압박을 가한 것이다. 다시 말해 한국작가회의에 2년 전의 촛불집회 등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확인서' 제출을 요구하면서 단서를 붙인 것인데, 그것은 앞으로 반정부 시위에 일체 참여하지 말 것이며 만약 이를 어기면 정부 보조금을 중단하겠다는 협박이기도 한 셈이었다.

 

큰 모욕감을 느낀 한국작가회의 문인들은 즉각 회의를 열고 정부 보조금으로 시행하던 사업들을 스스로 중단하는 쪽으로 중지를 모았고, 익명의 원로 문인이 3400만원을 희사한 사실을 밝히기도 했다. 국민 세금이 정권의 쌈짓돈인 것으로 착각하고 심부름꾼 처지를 망각했던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관료들은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작가회의 사무실을 방문해 "올해 지원금 3400만원을 예정대로 지급하겠다"고 사과했지만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은 문인들은 지원금 수령을 거부하기로 했다. 

 

작가회의 문인들은 "이번 일은 상징적이고 정치적인 문제이다. 현 정부의 문화정책이 얼마나 황당한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작가회의가 정부의 탄압을 받고 있는 다른 단체의 문제도 함께 푸는 열쇠 역할을 해야 한다" "사태의 근본책임은 문화예술위가 아니라 정부에 있다"며 지원금 수령 거부와 함께 사과도 거절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또한 작가들은 '저항의 글 쓰기' 운동을 펼치기로 의결하고 참석자 서명을 받은 뒤 작가회의 2500여명 전 회원을 대상으로 서명을 받고 명단을 공개하기로 했다. 필자도 이 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기로 하고 기꺼이 서명을 했다.

 

작가들이 집단으로 정권에 항거한 일은 '6.29'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탤런트 출신 유인촌씨가 장관으로 있는 문화부 산하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과거 군사독재정권 시절에도 행해지지 않았던 몰이성적인 일을 저지른 것은 시대착오적이고 독재적인 이명박 정권의 현 주소를 우리에게 알려 준 셈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충남 태안의 <태안신문> 4일치 '태안칼럼' 난에도 실린 글입니다.


태그:#유인촌, #완장, #민주주의 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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