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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음악 팬들이라면 알겠지만,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은 '이진원'이라는 뮤지션의 또 다른 이름이다. 예전에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처음 접한 그의 참신한 노래들을 필자는 아직 잊지 못한다. 그의 음악은 매우 독특했기 때문이다. 달빛요정의 음악에는 솔직함을 뛰어넘는 비참한 자기고백이 깊게 배어 있었다.

 

 

이 앨범은 데뷔하자마자 라디오 프로그램인 <고스트스테이션>에서 5주 연속 인디앨범 차트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지금도 팬들에게 불후의 명곡으로 꼽히는 '절룩거리네'와 '스끼다시 내 인생'으로 대표되는 그의 1집 <인필드 플라이>는 이렇게 대중들에게 각인되기 시작했다. 이름조차 신기하고 생소했던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은 골방과 지하실에 처박혀 만들어낸 이 가내수공업 음반을 통해 '거물' 인디가수로 발돋움했다.

 

하지만 그 후의 행보는 대중들의 기대감에 비해 속도가 더뎠다. 1집의 성공 이후, 약간 상업적인 콘셉트가 가미된 <소포모어 징크스> 앨범을 발표했지만 대중들의 반응은 밍밍했다. 정규 3집 <굿바이 알루미늄>에서는 1집의 콘셉트로 되돌아왔지만 1집 이상의 무언가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의 음악은 여전히 골방에 갇혀있는 모양새였다.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3.5집 [전투형 달빛요정: Prototype A]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이 줄곧 지켜오던 '어느 골방의 솔직한 아저씨' 콘셉트가 지겨웠던 팬이라면 이번 앨범에 주목해볼 만하다.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은 지난 1월 발매된 3.5집 <전투형 달빛요정: Prototype A>에서 그동안 주로 다뤘던 자기연민과 비하의 영역을 넘어 세상을 향한 조금 더 적극적인 반격을 시도한다.

 

두 번째 트랙인 '입금하라'에는 이 음반 제목에 언급된 '전투'의 의미가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다. '결국엔 나도 똑같다. 정의가 있네, 없네 잘난 척 하고 있지만 1억만 주면 닥칠 것이다'라고 일갈하는 '입금하라'의 가사는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이 즐겨 쓰던 자기비하의 정서를 그대로 드러낸다.

 

그러나 그 정서는 그 뿐만이 아니라 현재 한국의 젊은이들이 공유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부정한 방법으로 많은 돈을 거머쥔 자본가들을 욕하면서도 그 자본가 집단에 들어가기 위해 토익스피킹 시험을 접수하는 20대의 모습은 가사처럼 이율배반적이다.

세 번째 트랙인 '나는 개'는 앞 곡인 '입금하라'와 연결된다. 이 트랙에서 달빛요정은 '왜 날 빨갱이로 만들어 왜 날 혁명가로 만들어 네가 아니어도 나는 개, 왜 날 광장으로 내몰아 왜 널 상대하게 만들어'라고 강력하게 외친다. 그리고 이러한 은유적인 가사는 그간 달빛요정이 들려줬던 스스로 침전하는 자기 자신의 모습 혹은 직접적인 관계를 통해 누군가를 비판하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이 음반의 제목이 왜 '전투형 달빛요정'인지 여기서부터 확실해진다.

 

네 번째 트랙이자 이 음반에 실린 네 곡의 신곡중 마지막 곡인 '피가 모자라' 역시 앞 트랙과 이어진다. '친구들이 걱정하네 그러다 잡혀간다고 무서운 세상이라고 몸조심해야 한다고'하는 가사에서 엿보이는 현실 인식은, 앞선 곡들의 연장선 위에 있다. 여기서도 달빛요정은 부끄러운 자기고백을 숨기지 않는다. '모자라 피가 모자라 하지만 그 피가 내 것은 아니길 난 비겁해 너와 똑같아 숨어서 이렇게 노래만 부르네'라는 가사는 꺼내 보이기 싫었던 우리의 '불편한' 진심이다. 바뀌길 바라지만 나서지 못한다. 누군가 희생되어 바뀌길 바라지만, 그게 나이기는 원치 않는다.

 

하지만 곡 말미에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은 '난 비겁했어 어제까진 하지만 이젠 하지만 이젠 물러서지 않겠어 물러서지 않겠어 두 번 다시는 두 번 다시는'이라며 전의를 불태운다. 골방에 갇혀 있던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시선은 이미 골방 바깥을 향하고 있다. 그의 팬들이 이번 앨범에 열광하는 이유는 아마 그 지점에 있는 것이 아닐까.

 

아직 경기는 끝나지 않았다!

 

메이저리그의 전설적인 타자 요기 베라(Yogi Berra)는 "모든 것은 끝날 때 까지 끝난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물러서지 않겠다'는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다짐은 비록 지금은 열세지만 결국에는 역전승으로 끝나는 즐거운 야구 경기를 떠올리게 만든다.

 

필자는 소망한다. '전투형'으로 골방에서 뛰쳐나온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이 바라던 꿈을 이루기를. 그때는 그와 그의 팬 모두가 이 음반 첫 번째 트랙에 있는 '축배'를 모두 함께 부를 것이다. 세상 그 누구보다 맑고 밝은 웃음을 띠면서 말이다.


태그:#음반의재발견,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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