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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담배를 핀다. 지독한 골초 들이다. 그들은 가끔 내게 묻는다.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글 쓰면서 어떻게 담배를 안 피울 수 있느냐고. 그 때마다 난 살며시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한다. '담배 피울 때 보다 훨씬 더 재미있다고, 살 맛 난다고, 글 쓰는데 아무 지장 없다고'

나도 한 때 지독한 골초였다. 술 마시면서도 담배 안 피우는 인간들을 외계인 취급했다. 벽에 똥 칠 할 때까지 살라고 은근히 저주를 퍼붓기도 했다. 그러면서 가늘게 100년 사느니 굵고 짧게 살 만큼만 살고 가겠다고 거드름을 피우기도 했다. 마치 담배 피우는 것이 역사적 사명이라도 되는 양.

내 주변에 있는 지독한 골초들은 가끔 내게 왜 담배를 끊었느냐고 묻는다. 이럴 때 마다 난 '그냥 끊었다' 며 얼버무린다. 술자리 안주처럼 답변하기에는 좀 무거운 내용이기 때문이다. '금연' 내게는 너무나 절실했다.

인생이 꼬였다, 어떻게 풀어야 하지!

담배
 담배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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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전, 난 험난한 IMF 를 넘으면서 몸과 마음이 지치다 못해 피폐해져 있었다. 사업은 망해가고 있었고 빚은 산더미처럼 쌓여갔다. 밑천이라고는 아직 젊은 몸뚱아리 하난데 그나마도 극심한 스트레스 탓인지 시도 때도 없이 아팠다.

'인생이 꼬였다'는 비애감에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줄담배를 피워댔다. 소주 한 잔만 마시면 속살까지 빨개지는 술 못하는 체질인데도 깡소주를 입에 달고 살았다. 그럴수록 몸이 점점 더 아파왔다. 당연한 결과였다.

무엇인가 자극이 필요했다. 꼬일대로 꼬인 인생을 어떻게든 풀어야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점점 더 깊은 늪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았다. 고민 끝에 '내가 변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생각해 보니 난 그동안 세상만 원망 하면서 살아왔다.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마다 세상을 원망했지 정작 내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는 단 한 번도 생각 해보지 않았다. 내 문제는 도대체 무엇일까! 생각해 보니 아무래도 나약한 의지력 이었다. 조급한 성격, 어려운 일이 닥치면 피하려고 하는 마음 같은 게 따지고 보면 모두 나약한 의지력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내 의지력을 나름대로 시험해보고 평가하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금연'이다. 그 이전에도 '금연' 을 몇 번 시도한 적이 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 했다. 왜 그렇게도 핑계가 많았는지! 딱 한 대만 더 피우고 끊어야 겠다고 하다가 실패, 스트레스 받는 것 보다는 담배 한 대 피우는 게 몸에 덜 해로울 듯해서 담배를 물었다가 실패했다.

하지만 그 때는 절박한 심정으로 시도한 '금연' 이라 그런지 한동안은 별다른 어려움 없이 넘길 수 있었다. 금단현상도 없었고 갑자기 체중이 불어난다거나 하는 부작용도 없었다.

한 달 정도 지난 후부터 위기가 찾아왔다. 이유 없이 짜증이 나고 몸이 불기 시작했다. 주변사람들은 내 짜증을 받아 주기가 힘들었던지 "한 대씩 피우면서 천천히 하는 게 어떻겠느냐" 고 충고하기 시작했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흔들렸다. '딱 한 대만 더' 라는 간사한 마음이 자꾸만 고개를 치켜들었다. 절박하지 않았다면 아마 그 유혹에 넘어갔을 것이다.

다른 사람과 약속한 일이었다면 십중팔구 그 약속을 깨 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절박한 상황에서 나 자신과 한 약속이었다. 난 그 약속을 깨 버리고 난 이후에 찾아올 허무함과 자괴감을 도저히 감당 할 자신이 없었다. 아무래도 금연마저 실패한다면 내가 살아가야 할 이유를 찾지 못 할 것 같아서 두려웠다.

<포레스트 검프> 주인공처럼 아무 생각 없이 뛰기로

담배 종류도 참 가지가지
 담배 종류도 참 가지가지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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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기로 했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 주인공처럼 아무 생각 없이 뛰기로 했다. 괜스레 짜증이 날 때도 뛰었고 스트레스 때문에 머리가 터질 듯 아플 때도 뛰었다. '한 대만 더' 라는 간사한 마음이 들 때는 심장이 아우성 칠 때까지 뛰었다.

그러기를 1년, 2년, 3년...3년이 지난 후에 자신 있게 '나 이제 담배 끊었노라'고 선포했다. 말로만 한 게 아니라 글로도 썼다. 그 글은 모 인터넷 신문에 소개 됐고 방송국 작가 눈에도 띄었다. 그 덕에 텔레비전에 출연해서 '금연비법'을 소개하기도 했다.

담배를 끊어가면서, 내 의지력을 시험해 가면서 어려운 시기를 넘길 수 있었다. 마음을 바꿔 먹으니 신기하게도 일이 술술 풀렸다. 무엇보다도 내게 자신이 생겼다. 내 의지력으로 내 몸과 마음을 다스렸다고 생각하니 모든 일에 자신이 생겼다.

툭 하면 여기저기 아프던 몸이 강철 체력으로 변했다. 니코틴이 주는 해독에서 벗어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담배를 잊기 위해 시작한 '달리기' 덕분이었다. 늘 천근만근 무거웠던 몸이 가벼워지고 나니 세상이 아름다워 보였다.

금연은 의지력이 이루어낸 쾌거였다. 하지만 딱 하나 의지력으로 극복하지 못한 게 있다. 바로 '금연몽' 이다. '금연몽' 은 '군대몽' 보다 더 지독하다. 난 제대한 후 약 2년 동안 '군대몽'을 꾸었다. 하지만 금연몽은 담배를 끊고 난후 거의 5년 간이나 꾸었다.

'군대몽'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다시 군대에 끌려가는 꿈이다. 분명히 군대를 제대했는데 꿈속에서는 다시 영장이 나온다. 군대 마쳤는데 왜 또 군대 가라고 하느냐며 아무리 항의해도 씨알이 먹히지 않는다. 그러다가 깨어나서는 아! 꿈이었구나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 쉬게 된다. 이게 '군대몽' 이다.

'금연몽' 도 마찬가지. 꿈속에서 신나게 담배를 피워댄다. 꿈속에서도 담배를 끊었다는 자각을 하지만 이상하게도 끊임없이 담배를 피워댄다. 결국 금연에 실패했다고 땅을 치면서 자책하다가 꿈에서 깨어나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아! 꿈이었구나 하고.

'금연몽' 은 지금 생각해 봐도 참 지독했다. 하지만 그래봤자 꿈일 뿐이었다. 금연몽이 날 어쩌지는 못했다. 금연을 시작하고 난 이후 10여 년 동안 난 담배를 단 한가치도 피우지 않았다. 이젠 자신 있게 밝힐 수 있다. '나 담배 진짜 끊었다고'.

어떤 이는 담배를 벗삼아 힘든 시간을 견뎌냈다고 한다. 난 그 반대로 담배를 끊으며 힘든 고비를 넘겼다. 만약 그때 내가 '금연'에 실패 했다면 10년이 지난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상상이 되지 않는다.

지금은 내가 예전에 하루 한 갑 이상 씩 피우던 골초였다는 사실조차도 아득하다. '금연' 에 성공해서 난 스스로 한 약속을 지켰고 자존감을 회복했다. 그리고 건강을 보너스로 받았다. '금연'은 지금 생각해도 참 잘한 일이다. 박수를 쳐주고 싶을 만큼.

덧붙이는 글 | 안양뉴스에도 실려 있습니다.



태그:#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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