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올해의 뉴스게릴라상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접한 지난 연말(2009년 12월) 이후 틈나는 대로 그동안 오마이뉴스에 쓴 기사들을 훑어보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힘들고 아픈 일들이 참 많았는데,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쓰는 덕분에 지금 이만큼이라도 용감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이리라 믿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남다른 애착을 가지고 돌아보는 것은 책동네 기사다. 2005년 2월 9일에 첫 기사를 쓴 후 그동안 쓴 기사는 599꼭지, 이중 책동네 기사는 436꼭지, 지난 몇 년간 참 많은 순간들을 책과 오마이뉴스 책동네와 함께 해왔기 때문이다.
'10여 년 전, 오마이뉴스 책동네를 몰랐다면 내 삶이 가장 위태로운 순간에 스스로를 붙잡기 위한 방편으로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쓸 생각을 하기나 했을까? 오마이뉴스에 서평을 쓰지 않았다면 지난날 그 많은 책들을 읽을 수 있었을까?'
지난 연말 이후 종종 드는 생각이다. 단언하건데 아마도 지금과 같은 삶에 대한 자신감과 용기는 훨씬 적으리라.
힘든 시기에 붙잡은 <오마이뉴스>
개인적으로 참 힘든 시기에 오마이뉴스를 붙잡았다. 화재와 사업 실패로 거듭 깨지면서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쳐있던 때였다. 자꾸 피폐해지는 자신을 붙잡아 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리하여 몇 년 동안의 <오마이뉴스> 책동네 열혈 독자였던 나는 내가 좋아하는 책을 소개하는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당시, 기사를 쓴다고 몇 시간 동안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것이 사치로 여겨지기도 할 만큼 내 사정이 경제적으로도 많이 힘들었다. 그러니 친구나 주변 사람들 중에 "한푼이 아쉬운 판에 컴퓨터에 매달릴 정신이 어디 있느냐?"며 대놓고 한심해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내게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없다. 아니 자랑스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지난 연말에 올해의 뉴스게릴라상 수상이 발표된 후부터 상을 받은 2월 22일 이후 참 많은 사람들이 전화와 메일, 쪽지로 축하와 격려를 해줬다. 사실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쓰는 것은 나 혼자만의 의지 덕분이라고만 생각한 것 같다. 하지만 수많은 주변인들의 축하는 '내가 그동안 참 많은 사람들의 격려의 힘으로 살고 있었구나!'라고 생각하게 했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오마이뉴스와 함께 해온 날들을 돌아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아니 그래야 하지 않을까?
"<오마이뉴스> 책동네는 책 끼고 사는 내게 오아시스였다"
인터넷과 접속을 시작한 것은 2001년 가을이다. 접속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오마이뉴스 독자가 되었다. 오마이뉴스의 성격을 잘 아는 사람들이 "오마이뉴스에 늘 끼고 사는 책을 소개하는 글을 써보는 것이 어떨까?"하고 권유하곤 했다. 하지만 아이들도 어렸고 가게도 바빠 도무지 짬이 나주질 않았다. 기사를 쓴다? 또한 막연하게 어렵게만 여겨지기도 했다.
당시 오마이뉴스에서 내가 가장 많이 클릭했던 것은 책동네였다. 덕분에 참 많은 책들을 접했다. <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서서> <신갈나무 투쟁기> <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 <꽃과 이야기하는 여자>…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책들을 <오마이뉴스> 책동네 기사들 덕분에 읽게 되었다.
아이 둘을 키우는 동안에도 1년에 1백여 권에 가까운 책을 읽을 만큼 책을 좋아하다 보니 책에 대한 정보에 늘 목말랐다. 오마이뉴스 책동네를 통해 책 정보를 얻기 전에는 종이신문에서 얻은 정보로 서점에서 책을 사곤 했다. 또 책 속에 언급된 책이나 출판사가 책표지 안쪽 혹은 여백지에 소개한 책을 사서 읽곤 했다.
이런 식의 책 선택은 한편으론 단점도 많았다. 어린 아이 둘을 키우면서 가게 일까지 하다 보니 서점에 가기가 결코 쉽지 않았는데, 어쩌다 어렵게 찾아간 서점인지라 책 욕심을 어느 정도 잠재울 만큼 한꺼번에 여러 권을 사다보니 주머니 부담도 컸다. 또 같은 출판사의 책 정보를 얻다보니 책 선택의 시야가 좁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지라 오마이뉴스 책동네에서 얻는 정보는 오아시스처럼 유용했다. 기억을 더듬어 보건데, 당시 하루에도 몇 번씩 틈만 나면 오마이뉴스 책동네를 클릭, 거의 모든 책동네 기사들을 읽었다. 당시 책동네 기사 '덧붙이는 글'란에 기사 관련 책표지와 함께 한 인터넷서점이 링크되었는데 몇 번의 클릭만으로 무궁무진한 책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여하간 10여년 전 오마이뉴스 덕분에 다양한, 수많은 책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때 만난 책들이 거의 생각나지 않지만, 그 어느 때보다 의미 있는 책들을 많이 만난 것 같다. 드릴을 들고 일을 해야 하는 자동차 용품점에서 틈틈이 읽어야 했기에 책마다 검은 띠들이 층을 이뤘지만 오마이뉴스 책동네를 통한 책과의 만남은 내게 참으로 소중했다.
그런데 2004년 4월, 화재가 났다. 수많은 책들이 한꺼번에 잿더미로 사라졌다. 화재 이후 한동안 쓰리고 아쉽게 떠올릴 만큼 감동 있게 읽은 책들이 참 많았는데, 이젠 화재가 나기 전에 읽었던 책들 대부분 가물가물, 잊은 책이 대부분이다. 인터넷 또 다른 공간에서 우연찮게 그때 읽었던 책을 만나도 이젠 구체적으로 생각나는 것이 거의 없다.
책을 읽는 동안 내게 스며든 것들이 많았을 것이고, 그 덕분에 이렇게 건강하게 살 수 있을 것인데 그래도 한때 감동 있게 읽은 책의 속살이 거의 까맣게 지워졌음은 참으로 아쉬운 일이다. 책을 통해 사람을 만나고 세상을 바라보았던지라, 두 아이의 엄마로 소박하게 살아가는 내 삶을 위로하고 변명해주는 가장 든든한 친구였던지라 더 그랬다.
<오마이뉴스> 서평쓰는 것으로 책읽기는 마무리된다, 앞으로도 쭈욱~!
사실 좋은 책이라는 기억은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대목들이 좋은지 거의 생각나지 않는 이런 책들을 아쉬워하며 '오마이뉴스에 좀 더 일찍 책소개 글을 썼더라면 지금처럼 그 책의 어떤 부분이 좋고 나쁜지 확실하게 기억할 수 있을 텐데'라며 아쉬워 한 적이 많다. 오마이뉴스에 서평을 쓴 모든 책들은 구체적으로 상세하게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운 좋게도 참 많은 책들을 읽으며 자랐다. 글짓기를 좋아해 학교 대표로 백일장에도 자주 나갔고 독후감이나 글을 잘 썼다고 상도 적잖이 받았지만, 독후감 숙제는 늘 지겨웠다. 이런지라 어른이 되면서 책은 읽는 것으로 그만, 별도로 메모하질 않았다. '바람직하지 못한 책읽기'라는 것을 알면서도 감상이든 메모든 읽은 책을 기록하기란 쉽지 않았다.
이 때문에 그 누구보다 많은 책들을 읽고 살았음에도 지난날 그렇게 읽은 책들에 대한 별다른 기억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 바람직하지 못한 책읽기는 오마이뉴스에 서평 혹은 리뷰를 쓰면서 많이 달라졌다. '많이 발전했다'는 표현이 더욱 적절하겠다. 그리하여 이제는 내가 서평을 쓴 책들만큼은 책의 소소한 것들까지 거의 기억하고 있다.
그 책의 기본적인 것들은 물론 소소한 것들까지 확실하게 기억하게 된 것이다. 왜 읽어야 하는지 이유까지 자세하게 말해줄 수 있음은 물론이다. 어떤 공간에서 만나든 서평을 쓴 책들만큼은 금방 알아볼 수 있다. 자신 있게 말하건데, 앞으로 수 천 권에 달하는 책에 대한 서평을 쓸지라도 그동안 서평을 쓴 436권처럼 모두 기억할 수 있으리라.
때문에 이젠 책읽기의 마무리는 오마이뉴스에 서평을 송고하는 순간으로 하고 있다. 제아무리 유용하고 감동 있게 읽었어도 서평 혹은 리뷰를 쓰지 않은 책들은 아직도 읽고 있는 책일 뿐이다. 또 누군가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라고 물으면 "그 책을 모두 읽은 후의 느낌을 기록하는 것으로 책읽기를 마무리 하는 것이 제대로 된 책읽기"라고 꼭 말한다.
종종 세상의 수많은 것들 중 하필 책읽기를 좋아하게 된 것, 책을 좋아하는 성향으로 태어난 것이야말로 가장 축복받은 삶이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이런 내게 오마이뉴스에 서평을 쓰면서 책을 대하는 근본적인 것이 달라졌음은 어찌 보면 가장 큰 선물을 받은 셈이다. 또한 내가 읽은 책을 소개할 수 있어서 더욱 많은 책을 읽게 됐다.
2000년보다 더 많이 가난해졌지만 실은 더 큰 부자
2010년의 나는 오마이뉴스 책동네를 처음 알던 2001년보다 경제적으로 참 많이 가난해졌다. 하지만 가장 힘들 때도 절대 놓지 않았을 만큼 내 삶에 무척 중요한 책을 제대로 만나는 법을 터득했으니 사실 이만하면 부자 아닌가! 게다가 공공연히 내게 붙여진 책동네 안방마님이란 명예까지 보통 자랑스러운 것이 아니다.
10년 전 오마이뉴스와의 만남이 없었다면 내 삶의 가장 힘든 순간에 책을 붙잡을 수 있었을까? 아니 그 많은 책들을 읽을 수나 있었을까? 혹은 수많은 사람들처럼 결혼까지는 책을 많이 읽었지만 생활인으로 책을 거의 읽지 못하는 그 한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을까? 책을 읽는 동안 내게 든든하게 자란, 어떤 힘든 순간도 헤쳐 나갈 수 있는 이 자신감도 책을 통해 얻은 소중한 재산이다.
"오마이뉴스 덕분에 행복했는데 이렇게 큰 상까지 주셔서 감사합니다. 개인적으로 참 힘든 시기인 2005년 2월에 오마이뉴스에 첫 기사를 썼습니다. 하루하루 먹고 살기 힘든 와중에 제게 가장 많은 위안과 살아갈 힘을 주었던 것은 땀을 흘리는 틈틈이 읽었던 책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책들을 또 누군가에게 위안이 되고 힘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맘껏 소개할 수 있는 오마이뉴스였습니다. 앞으로 세상을 더 깊고 넓게 바라보아 변함없이 열심히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마이뉴스 창간 10주년 기념식장에서 올해의 뉴스게릴라상을 받으며 수상 소감을 이렇게 말했지 싶다. 오마이뉴스에 서평을 쓰기 시작한 2005년이나 436꼭지의 책동네 기사를 쓴 지금이나 서평을 쓰기는 여전히 힘들다. 그때나 지금이나 책을 읽는 것이 더 쉽고 행복하다. 그래도 서평 쓰는 것을 절대 멈추지 않을 작정이다.
오마이뉴스와 함께 해온 지난 10년간, 오마이뉴스 덕분에 참으로 많은 책들을 읽을 수 있었고 서평을 쓰는 것으로 책읽기를 마무리하는 습관이 이제 당연한 것으로, 단단하게 생겼기 때문이다. 가장 바람직한 책읽기는 서평(혹은 리뷰 등)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누구에게든 자신 있게 말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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