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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티 마을에서 시작하는 산행

 

 

지난 1월 10일에 소백산 비로봉을 등반하고는 두 달 동안 산행을 하지 못했다. 2월 한 달은 글쓰기에 쫓겨 시간을 내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정신적인 건강만큼 중요한 것이 육체적인 건강이다. 운동을 좀 해야겠다는 생각에 7일 산행담소 팀과 함께 희양산에 오르기로 했다. 희양산은 괴산군 연풍면과 문경시 가은읍 사이에 있는 백두대간 상의 유명한 산이다.

 

희양산은 가은 쪽에서 보아야만 진면목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봉암사 쪽으로의 산행길이 폐쇄되어 산꾼들은 보통 연풍의 은티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또 서울에서의 접근성도 가은 쪽보다는 연풍 쪽이 훨씬 가깝고 편하다. 우리 팀은 차를 은티 주차장에 세우고 걸어서 은티 마을로 들어간다.

 

 

은티는 연풍면 주진리에 속한 마을이다. 주진리라는 이름은 이 지역에서 가장 큰 마을이었던 주치동(周峙洞)과 진촌(榛村)의 첫 글자를 따서 1914년 처음 만들어졌다. 1945년 해방 후 주진리를 다시 3개의 행정 마을로 나누는 과정에서 은티라는 마을 이름이 생겨나게 되었다. 그러나 은티라는 명칭은 현재 은티 마을에서 봉암사 계곡 상류로 이어지는 고개 이름으로 옛날부터 사용되기도 했다.

   

은티 마을 입구에는 멋진 소나무 군락이 조성되어 있다. 모두 15그루로 400년 된 소나무다. 이 나무들은 현재 괴산군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이들 옆으로는 장승인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이 나란히 서서 마을을 지키고 있다. 또 장승 옆에는 자연석으로 만든 은티 마을 유래비가 서 있다. 이 유래비는 1996년에 세워졌다. 

 

여궁혈과 남근석

 

 

마을 유래비를 지나 조금 더 마을로 들어서니 나무 사이로 금줄을 두른 서낭이 보인다. 작은 돌을 쌓고 그 위에 비교적 뾰족한 돌을 세우고는 새끼줄을 둘렀다. 이것이 남근석이란다. 마을 사람들에 의하면 은티 마을이 풍수지리적으로 여궁혈(女宮穴)에 자리 잡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에 음기가 세다는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이러한 음기를 약화시켜야만 마을이 번창하고 아들을 많이 낳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그 때문에 매년 정월 초이튿날 이 남근석에서 동제를 지내왔다고 한다. 그렇다면 지난 2월15일에 제를 지냈다는 얘기가 된다. 그래선지 그때 둘렀던 새끼줄과 그 사이에 꼬인 한지가 아직도 생생하다.

 

 

은티 마을 한가운데로는 희양산에서 내려오는 계곡물이 흘러내린다. 봄을 재촉하는듯 물은 콸콸 소리를 내며 힘차게 흘러간다. 이 개천을 건너려면 작은 다리를 지나야 한다. 다리를 건너기 전 오른쪽에 세워진 대나무 발에는 수십 개의 산악회 꼬리표들이 꽂혀 있다. 수많은 산악인들이 은티 마을을 찾았다는 얘기가 된다.

 

마을에서 오늘의 목적지인 희양산으로 가기 위해서는 마을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가야 한다. 이 길은 마을 위에 있는 과수원과 펜션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비교적 넓게 확장되어 있다. 과수원의 사과나무들은 이미 전지되어 있고, 나무 밑에는 거름이 뿌려져 있다. 전지를 하지 않거나 거름을 주지 않고는 좋은 사과를 생산할 수가 없다. 전지된 가지에서 새순이 나오고 그곳에 꽃이 피어야 열매를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부지런한 농부들이 2월에 이미 농사일을 시작한 것이다.

 

 

과수나무를 보며 한참을 올라가니 백두대간 희양산이라는 표지석이 나온다. 이곳은 지름티와 호리골재로 갈라지는 삼거리다. 이곳에서 왼쪽으로 가면 우리가 오를 희양산이 나오고 호리골재로 가면 주치봉이 나온다. 우리는 왼쪽 희양산길로 접어든다. 곧 이어 오른쪽으로 해골바위가 보이고, 잠시 후 또 다시 갈림길이 나온다. 이곳에서 왼쪽으로 가면 성터를 지나 희양산에 오르게 되고, 오른쪽으로 가면 지름티를 거쳐 희양산에 오르게 된다.   

 

어! 이번에는 뭔가 건질 수 있을 것 같은데

 

우리는 두 팀으로 나눠 희양산으로 향한다. 성터 쪽으로 가면 길이 상대적으로 평탄한 편이어서 다수의 사람들이 그곳으로 간다. 나와 다른 일곱 명은 조금 위험하지만 스릴이 있는 지름티 쪽으로 간다. 산을 오르면서 보니 지난 가을 떨어지지 않은 단풍잎들이 아직도 나뭇가지에 붙어 있다. 아직 나무에서 봄기운을 찾기는 어렵다. 산수유도 이제 겨우 꽃망울을 만들어가고 있는 정도다.

 

 

산에 오르면서 보니 아주 작은 싸락눈이 조금씩 떨어진다. 기온이 조금씩 낮아진다는 얘기다. 그러고 보니 높은 산 7부 능선 정도부터 상고대가 보인다. 그렇다면 희양산에서 상고대의 멋진 풍경을 볼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또 오늘은 해도 나지 않아 상고대가 광범위하게 형성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 세 갈래 길에서 지름티까지는 1㎞이다. 걸어 오르는 데 채 20분이 걸리지 않는다. 그리고 지름티에서 희양산 가는 길은 백두대간을 따라 북쪽으로 이어진다. 지름티에는 서낭당이 있고, 고개를 넘어 봉암사로 이어지는 길은 목책으로 차단되어 있다. 그리고 봉암사 주지 명의의 안내판을 세워 놓았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봉암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 소속의 특별 수도원이다. 이곳에서는 스님들이 참선 수행하고 있다. 등산객 및 관람객은 일체 출입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봉암사로의 출입은 금하지만 희양산 등산은 허용한다는 점이다. 옛날에는 스님들이 이곳에 나와 희양산에 오르는 것까지 막았기 때문에 등산객과 스님들 사이에 늘 갈등이 있었다. 백두대간을 등산하는 산악인들이 봉암사 스님들에 대한 불만을 말하곤 했던 기억이 난다. 사실 등산객들 때문에 참선을 할 수 없다는 것은 지나친 주장이다. 옛 조사 스님들이 말하지 않았던가! 밖에서 찾지 말라고.

   

희양산 정상을 찾아서

 

 

이곳 지름티에서 희양산 갈림길까지는 다시 1㎞로 한 30분이면 가는 곳이다. 그런데 문제는 지난 겨울 눈이 많이 왔고 이 길이 얼어붙어 있다는 점이다. 가파른 바위길이 미끄럽다면 시간이 더 걸리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우리는 어느 정도 각오를 하고 왔기 때문에 다들 기분 좋게 바위에 걸려있는 로프를 탄다.

 

그래도 조심하면서 한 단계 한 단계 위로 올라간다. 다리에 힘을 주고 팔을 당기면서 미끄러지지 않게 오르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가장 늦게 오른다. 그것은 아이젠을 차지 않았기 때문이다. 생각에 아이젠 없이도 충분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젠이 없으니 생각보다 더 다리에 힘이 들어간다. 또 앞사람이 로프를 사용하여 바위에 오른 다음 뒷사람이 올라야 하니 시간도 자꾸 늦어진다.

 

 

또 한 가지 이 구간에서 만난 눈 덮인 산과 상고대 때문에 그냥 갈 수가 없다. 멋진 장면을 만날 때마다 나는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댄다. 구왕봉 쪽으로 상고대가 산을 덮고 있고, 저 아래 우리가 올라온 은티 마을이 연무 사이로 드러난다. 길옆으로는 눈이 녹으면서 만들어진 고드름이 보인다. 얼음과 눈 그리고 상고대, 겨울 산에서만 느낄 수 있는 멋과 맛이다.

 

로프를 타고 오르는 고비를 크게 두 번 넘으니 또 다시 희양산으로 오르는 갈림길에 이른다. 모두 무사히 오른 것에 대해 서로를 격려하며 감사한다. 그렇지만 팔과 다리에 힘이 꽤나 빠진 모습이다. 또 긴장도 조금은 풀려 편안한 마음이다. 이곳 갈림길에서부터는 눈과 나무에 붙은 상고대가 더욱 더 장관이다. 한마디로 산 전체가 온통 하얗다.

 

 

이곳 희양산 갈림길은 성터에서 올라온 길과 지름티에서 올라온 길이 만나는 지점이다. 우리는 성터 쪽으로 올라간 회원들을 기다리며 순백의 아름다움을 만끽한다. 금년에 이렇게 멋진 경치를 또 볼 수 있겠냐는 둥, 사실 별 기대를 안했는데 오늘 산행 끝내준다는 둥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3월 희양산에서 이 정도의 경치를 보게 되리라고는 그 누구도 생각을 못했던 게 사실이다. 역설적이게도 그 때문에 산행의 즐거움은 더욱 더 크게 다가온다. 또 갈림길 표지판에 보니 이곳 희양산에는 고란초, 솔나리, 천마 같은 희귀식물이 자생하고 있어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되어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정말 설원뿐 아니라 희귀 세상에 들어온 셈이 된다.

 

 

이곳에서 희양산 정상까지는 400m쯤 된다. 이 구간은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어지며 남쪽으로의 조망이 특히 좋다. 그것은 남쪽으로 깎아지른 절벽을 이루고 있어, 거치는 것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바로 앞으로 구왕봉이 보이고, 그 뒤로 장성봉에서 제수리치로 이어지는 하얀 능선이 선명하다. 장성봉 너머 왼쪽으로는 대야산이 보이고, 그 뒤로 멀리 동서로는 속리산 연봉이 아스라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태그:#희양산, #은티 마을, #성터, #지름티, #상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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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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