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친의 요양병원 생활이 오늘(2월 10일)로 100일째다. 지난해 11월 한 달 동안 꼬박 서울성모병원 호스피스 병동에 계시다가 31일 충남 태안의 서해안요양병원으로 옮겨오셨으니, 서울성모병원 생활까지 합하면 넉 달 하고도 열흘을 병상에서 생활하시는 셈이다. 노친의 요양병원 생활 100일을 맞은 오늘, 지난 시간들을 뒤돌아보며 '회복' 가능성과 희망을 스스로 되새겨본다.
지난해 6월 폐암과 갑상선암 말기 진단을 받을 때는 여생이 6개월 정도라는 말을 들었는데, 이미 그 기간을 너끈히 넘긴 상태다. 물론 11월 서울성모병원 호스피스 병동에 있을 때는 위험한 상황도 겪었다. 호스피스 병동 30년 경력의 이경식 명예교수님이 '임종 임박'을 알려주셨고, 간호수녀님이 임종이 임박한 환자 가족들을 소집하여 실시하는 '교육'에 나도 참석해야 했다.
다행히 위험한 지경을 가까스로 넘기고, '최상의 상태'로 서울성모병원을 떠나올 때는 여생이 2개월 정도일 거라는 말을 들었다. 이곳 서해안요양병원으로 옮겨왔을 때도 노친을 담당하시게 된 원장님에게서 "회복시키기 위해서 요양병원에 오신 건 아니지요?"라는 질문에 이어 "현재 암세포가 골수에까지 전이된 상태예요. 그러니까 온 몸에 암세포가 퍼진 거지요"라는 말을 들었다. 회복은 생각할 수도 없고, 고통을 줄이면서 여생을 조금이라도 편케 사시다가 돌아가시게 해드리는 것이 요양병원 입원 목적임을 수긍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요양병원 입원 목적을 확인하면서도, 뭔가 내 나름의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고,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 부부의 적극적인 식이요법과 대체의학 활용으로 폐암과 갑상선암을 이겨낸 반면에 뜻밖에도 암세포가 골반 뼈에 붙고 점점 커졌는데, 암세포 부위 골반 뼈가 그만 골절되는 바람에 걷지 못하게 된 어머니.
병상에서만 생활하시게 된 올해 87세의 노친을 어떻게든 병마로부터 건져내려는 내 의지와 노력을 염두에 두면서도, 내 노력의 성과를 스스로 확신할 수는 없기에 그저 별 말없이 요양병원 입원 목적에 동의해야 했지만, 그러면서도 내 나름의 방법에 희망을 걸고 있었던 것이다.
노친의 현재 상태현재 노친은 '매우' 좋은 상태다. 정신도 맑은 편이고 말씀도 잘하신다. 식사도 잘하시는 편이고, 대변보는 일도 어렵지 않다. 내가 노친을 돌보면서 가장 신경을 쓴 부분이 배변이다. 배변만 잘 되면 식사도 잘하게 되고, 모든 순환이 원활해지리라는 생각이었다.
병상에서만 지내고 운동을 전혀 하지 못하니 자연 식사 양이 적을 수밖에 없다. 대개 밥을 3/1 아니면 반 그릇 정도 잡순다. 그러니 변을 매일 보지는 못한다. 대개 이틀이나 사흘에 한 번 꼴로 변을 보신다. 병원에서는 변비 약을 처방하기도 했지만 나는 그 약을 거부했다. 배변을 돕기 위한 내 노력들의 효과를 확신하고 있었고, 노친의 변비 상태가 길어도 사흘을 넘기지는 않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기저귀에 변을 보시기도 했지만, 이제는 기저귀 착용이 거의 필요 없다. 노친이 변의(便意) 표시를 확실하게 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하루에 세 번씩 병원을 가므로 아무 때든지 쉽게 휠체어에 태워 화장실로 가서 변기에 앉혀 드릴 수 있고, 내가 없는 동안에는 요양보호사들이 그 일을 한다. 요양사들도 병상에서 기저귀 처리를 하는 것보다 화장실로 모시고 가는 것을 더 선호한다.
나는 노친이 변을 보신 날이나 그 다음날은, 낮에는 기저귀를 빼어 시원하게 지내시도록 하고,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여 밤에만 기저귀를 채워 드리도록 요양사들에게 단단히 부탁을 해놓았다.
노친의 안색은 좋은 편이다. 전혀 환자 같지 않은 혈색이다. 특히 손과 발을 주물러 드릴 때 느끼는 것인데, 피부가 매끌매끌하다. '바이오 기공수' 덕이다. '회전 전자파'를 방출하는 기계 위에 4시간 이상 올려놓은 물을 마시기 시작한 후로 내 손의 피부가 매끌매끌한 것을 느끼게 되었는데, 이제는 노친의 손과 발에서도 그것을 확연하게 느낀다.
무엇보다도 희망적인 것은 노친의 두 다리에 힘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화장실을 가기 위해 휠체어에 태우는 일이 여간 힘들지 않았다. 변기에 앉혀 드릴 때도, 병실로 돌아와서 병상에 올려드릴 때도 전적으로 내 두 팔에만 의지하는 형국이었다. 내 두 팔의 힘으로만 그 일을 하려하니 진땀이 나는 때도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노친을 안아 일으키면 노친이 두 다리에 힘을 주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내 팔에 의지한 채로 걸음도 두어 발짝씩 떼고 나를 거들어주니 내가 훨씬 힘이 덜 들게 되었다.
또 병상에다 엉덩이만 얹혀 드리면 스스로 두 다리를 올려놓을 수도 있게 되었다. 병상에서 스스로 몸을 돌려 눕기도 하고, 기저귀를 채우거나 뺄 때도 누운 채로 스스로 엉덩이를 들 수 있게 되었다. 요양사가 노친의 몸을 좌우로 돌리지 않고 들려진 엉덩이 밑으로 곧바로 기저귀를 넣을 수 있으니 작업이 한결 간편하게 된 것이다.
전에는 병상의 노친 몸을 위로 좀 올려드리려면 두 사람의 손이 필요했다. 양쪽에서 함께 해야 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 일을 나 혼자서도 수월하게 할 수 있다. 노친이 두 발에 힘을 주어 거들어주기 때문이다.
노친은 거의 고통을 호소하지 않는다. 아침에 일어날 때는 팔이 아프다는 말씀을 하시는데, 그리 심한 것 같지는 않다. 전에는 두 발에 늘 부기가 있었다. 혈액 순환에 문제가 있어서일 터였다. 왼쪽 골반 뼈가 골절되었던 탓인지 특히 왼발의 부기가 심했고, 왼쪽 발과 무릎의 통증을 호소하곤 했다. 또 왼손에도 부기가 나타나곤 했다. 그런데 이제는 손과 발의 부기가 완전히 없어졌다. 온전히 정상적인 상태다.
이런 변화들을 느끼게 되면서 나는 슬슬 욕심(?)을 갖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노친이 고통을 겪지 않게 해드리려는 일념이었다. 내 나름의 방법에 어떤 희망을 두면서도 일차적인 목적은 어디까지나 고통을 덜 겪게 해드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노친이 고통 겪지 않을 뿐더러 변화의 모습을 보이니, 이러다가는 일어서서 걷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암세포 부위 골반 뼈 골절로 인해 걷지 못하게 된 87세 노인이 다시 걷게 되는 '대사건'이 연출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그 놀라운 상황에 대한 상상과 기대를 가슴 가득 품기 시작한 것이다.
그동안 노친의 전신에 퍼져 있는 암세포들에 대처하기 위한 내 노력들을 다음 글에 상세히 밝히고자 한다. 좋은 정보 가치들을 지니게 될 것으로 믿는다. 노인의 연세를 생각하고, 또 노인 건강은 믿을 수 없다는 말도 상기하면 조심스러운 바가 없지 않지만, 현재로서는 내 노친의 건강 회복에 대해 큰 기대와 희망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노친의 운명이 언제 어떻게 될지 알 수는 없지만, 노친께서 보여주시고 있는 현재의 호전 상태를 기쁘게 생각하면서, 좀 더 희망을 갖고자 하는 마음으로, 지난 수개월 동안 내가 해온 일들을 소상히 기록하여 독자 여러분께 좋은 정보를 제공해 드리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