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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가슴엔들 시가 꽃피지 않으랴2/문태준 해설/민음사 대표 시인 100인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을 모은 두 번째 시 모음집.
어느 가슴엔들 시가 꽃피지 않으랴2/문태준 해설/민음사대표 시인 100인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을 모은 두 번째 시 모음집. ⓒ 민음사

일전에 '한국 대표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 <어느 가슴엔들 시가 꽃피지 않으랴> 1편 서평을 썼었는데 이제 2편을 읽고서 그 감동을 전하게 되었다.

 

<어느 가슴엔들 시가 꽃피지 않으랴> 2편은 문태준 시인의 해설로 김수영, 서정주, 윤동주 시인에서부터 오탁번, 강은교, 김용택, 정끝별 시인에 이르기까지 근현대사에 큰 족적을 남기고 있는 주요 시인들의 시가 실려 있다.

 

 

사슴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언제나 점잖은 편 말이 없구나

관이 향기로운 너는

무척 높은 족속이었나 보다

 

-이하 생략

 

우리에게 너무나도 잘 알려져 있는 노천명 시인의 시 '사슴'의 1연이다. 문태준 시인은 노천명 시인에 대해 "남빛 치마와 흰 저고리를 즐겨 입었다는 노천명 시인은 한국시사에서 시적 대상을 시적 화자와 겹쳐 놓음으로써 현대 서정시의 동일성 시학을 선보인 최초의 여성 시인이었다"고 평한다.

 

노천명 시인은 '사슴'을 통해 자신의 자화상을 그려내면서 그 속에 환희와 고독을 동시에 담아 내고 있다. 과거의 행복하고 소중했던 기억과 현실에서 오는 통증은 항상 팽팽한 긴장감을 형성하면서 때론 추억의 재연으로, 때론 고독감과의 짙은 싸움으로 이어지는 듯하다.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나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로 시작되는 강은교 시인의 '우리가 물이 되어'에 대해 문태준 시인은 "불이 어떤 부정과의 대립이라면 물은 그마저도 끌어안는 어떤 관용. 물은 사랑. 자주 침묵하지만 한 번도 사랑을 잊은 적이 없는 마음 큰 이. 우리도 서로에게 물이 되어 서로의 목숨 속을 흐를 수 없을까. 우리는 그렇게 만날 수 없을까. 물과 같고 대지와도 같은 침묵의 큰 사랑일 수 없을까"라고 되묻는다.

 

또한 "그녀의 시는 민중적인 서정에도 가 닿고, 사소하고 하찮은 생명들을 끌어안기도 하는 등 아주 큰 스펙트럼을 보여 주었다. 그때에도 지금에도 강은교 시인은 이 세계의 순례자로서, 이 세계의 구원을 위해 생명수를 구해 오는 바리데기의 헌신"이라고 평한다. 

 

정말 '물'과 같이 만물을 품을 수 있는 '풍성함'과 '넉넉함'이 이 나라 우리 모두를 뒤덮기를 , 그래서 우리 모두가  '흐르는 물'이 되어 만나기를 염원하게 된다. 

 

 

상한 영혼을 위하여

 

                                     고정희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 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하략

 

 

짓이기는 삶의 무게로 고통 가운데 있는 상한 영혼들에게 전하는 고정희 시인의 시다. 여성운동가이기 했던 시인의 의식이 잘 반영된 시인 거 같다. 기독교적 가치관을 바탕으로 민중의 고통에 대해 80년대 억압과 굴레 속에서 민중의 고통을 선동적이지 않으면서 아름답게 잘 승화시키고 있다.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며 시인은 고통에 직면함으로써 고통 이면에 있을 '고통의 이유' 그리고 고통 이후의 '열매'로 독자들을 인도하고 있다.

 

문태준 시인은 평하길 "한국신학대학을 졸업해 다분히 기독교적 신앙에 기초한 시편들을 썼으며 한 생애를 정열적으로 살다 간 여성운동가이기도 했던 고정희 시인은 조금의 호락호락함도 없이 평소 신념을 시 창작과 생활에서 실천했다"며 "한 시대의 깊고 어두운 계곡을 묵상했으므로 그녀의 시는 미지근하거나 융융한 그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시는 1980년대의 격문이면서 '우릉우릉 폭발하는 화산'이었다"고 밝힌다.  

 

 

눈물

 

                                         김현승

 

더러는

옥토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이고저……

 

흠도 티도,

금 가지 않은

나의 전체는 오직 이뿐!

 

더욱 값진 것으로

드리라 하올제,

 

나의 가장 나아중 지니인 것도 오직 이뿐!

 

아름다운 나무의 꽃이 시듦을 보시고

열매를 맺게 하신 당신은,

 

나의 웃음을 만드신 후에

새로이 나의 눈물을 지어 주시다.

 

 

슬픔의 마음을 시로 아름답게 승화시킨 대표적인 작품이 김현승 시인의 '눈물'이다. 마치 성경의 구약에서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칠 때의 현장을 떠올릴 수 있을 만큼 김현승 시인은 절대자에 대한 숭고한 믿음을 지니고 있다.

 

'눈물'에서는 '흠도 티도, 금 가지 않은 나의 전체'이며 '나의 가장 나중 지닌 것'이라 표현된 소중한 아들의 죽음이 절대자에게 올려드린 인간의 아픔 이상의 것으로 표현되고 있으며 '결국 웃음을 만드신 이가 새로이 눈물을 지어주신 것'으로 시인은 굳게 믿고 있다.

 

문태준 시인은 김현승 시인과 시에 대해 " '눈물'은 독실한 기독교 신앙에 의지해 그 슬픔을 넘어선다.  그는 눈물이야말로 한 점 생명의 씨앗과도 같고, 더러움이 없으며, 인간의 마음이 가장 마지막 순간까지 순금처럼 지니고 살아야 할 것으로 보았다"고 평한다. 

 

이어 "현대시 100년의 역사에서 김현승처럼 고독과 슬픔을 지독하게 노래한 시인도 드물다"며 "'싸늘한 증류수의 시대'를 살다 간 그에게 고독과 슬픔과 뜨거운 눈물은 본능적으로 이끌리는 것이었으며 숭전대학교(현 숭실대학교) 채플시간에 기도 중 쓰러진 뒤 병석에서 끝내 일어나지 못한 눈물의 옹호자였던 시인은 영혼의 옷마저 벗고 우리 곁을 떠났다"고 그를 기리고 있다.

 

김현승 시인은 자신의 지독한 고통과 아픔마저 '영혼의 눈물'로 정결하게 닦아내었고 지금은 또한 하늘나라에서 그 모든 아픔을 이겨낸 자의 참 평안을 맛보고 있을 듯하다. 

 

끝으로 '체포당한 자유와 민주주의와 인권과 평등과 평화'를 노래한 이시영 시인의 '서시'를 통해 이 시대의 어둡고 고통 가운데 있는 곳에 자유와 평화 그리고 소망의 빛이 임하길 간절히 염원해 본다.

 

 

서시

 

                                  이시영

 

어서 오라 그리운 얼굴

산 넘고 물 건너 발 디디러 간 사람아

댓잎만 살랑여도 너 기다리는 얼굴들

봉창 열고 슬픈 눈동자를 태우는데

이 밤이 새기 전에 땅을 울리며 오라

어서 어머님의 긴 이야기를 듣자


어느 가슴엔들 시가 꽃피지 않으랴 2 - 한국 대표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

문태준 해설, 잠산 그림, 민음사(2008)


#어느 가슴엔들 시가 꽃피지 않으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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