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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자, 한 자 손으로 꾹꾹 눌러쓴 대자보 하나가 고려대 학생들의 발길을 붙들었다.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는 제목의 대자보는 '자발적 퇴교를 앞둔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3학년 김예슬' 학우가 쓴 것이었다.

 

그녀는 대자보를 붙이고 정문 앞에서 "오늘 저는 대학을 그만둡니다 – 진리도 우정도 정의도 없는 죽은 대학이기에"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침묵시위를 벌였다. 그녀의 글은 나를 포함한 많은 학생들의 마음 한 켠을 찡하게 만들었다. 한 후배는 그녀의 글을 읽다 눈물이 났다며 가슴 먹먹해하기도 했다.

 

이 대자보가 고려대를 넘어 전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아마도 그녀의 글이 오늘을 살아가는 대학생들의 고통과 답답함을 절절하게 써내려 갔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는 "G세대로 '빛나거나' 88만 원 세대로 '빚내거나' 그 양극화의 틈새에서 불안한 줄다리기를 하는 20대. 무언가 잘못된 것 같지만 어쩔 수 없다는 불안에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20대"라고 우리를 표현했다. 왜 우리는 "친구들을 넘어뜨린 것을 기뻐하면서, 나를 앞질러가는 친구들에 불안해하면서" "스무 살이 되어서도 꿈을 찾는 게 꿈이어서 억울"하며 "부모님 앞에 죄송스런 마음"을 가져야 하는 걸까?

 

그녀는 이제 대학이 자격증 장사 브로커가 됐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국가와 대학은 자본과 대기업의 인간 제품 제품을 조달하는 하청업체가 됐다"고 말한다. 우리를 현금인출기처럼 여기며 선택과 자율은 없고 강제와 경쟁만을 강요하는 대학에서 이 땅의 수많은 대학생들이 숨막혀 하고 있다. 입시 지옥을 벗어나자마자 또 다른 경쟁 지옥에 입성하는 셈이다. 그녀는 이제 "내 삶이 시들어버리기 전에. 쓸모있는 상품으로 '간택'되지 않고 인간의 길은 '선택'"하고 싶다며 자퇴를 택했다.

 

나는 이 대자보를 읽으며 김예슬 학우에게 한편으로는 응원을 다른 한편으로는 희망을 보내고 싶다. "길 잃고 상처받을 것"이라 두려워하면서도 "그것만이 삶이기에 생각한 대로 말하고 말한 대로 행동하고 행동한 대로 살아내겠다는 용기를 내련다"는 그녀의 용기와 선택에 응원을 보내고 싶다.

 

또 비록 그녀는 "대학과 자본의 이 거대한 탑에 내 몫의 돌멩이 하나가 빠진다. 탑은 끄떡없을 것"이라 했지만 그녀의 행동은 이 사회에 진정한 대학은, 20대의 행복은 대체 어디에 있는가 하는 큰 물음을 던져줬다 생각한다. 그리고 그 물음과 공감이 커져 그녀가 자퇴를 하게 만든 이 사회를 바꾸는 데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누군가 짜놓은 행복이 아니라 내가 찾는 행복과 희망을 만들고픈 더 많은 고대생들이 그녀에게 용기를 주었으면 좋겠다. 그녀는 이런 현실에 대해 대학과 기업과 국가에 큰 탓이 있다 했다. "누가 더 강한지 두고 볼 일"이라던 그녀처럼 우리를 억누르려는 세상에 맞서 우리도 용기를 내어 함께 희망을 만들자고 말하고 싶다.

덧붙이는 글 |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4학년 김지윤 


태그:#고려대, #자퇴, #대학생, #2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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