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법정스님의 다비식을 참관하기 위해 전남 순천시 송광사 송광면 신평리 송광사를 찾았다. 일주일 전부터 나를 괴롭히기 시작한 달팽이관의 고장으로 나들이 하기가 어려웠지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 분의 육신을 지척에서 볼 수 있다는 생각을 하자, 그깟 어지럼증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차량진입을 막은 송광사 삼거리부터 남편의 팔을 잡고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를 1시간여. 드디어 산문엘 도달했는데 아뿔싸 스님의 운구행렬이 절문을 나서고 있었다.

 

 

스님이 잠들어 계시다는 문수전 앞에서 정성을 다해 삼배를 올리고 싶었는데 그 희망은 물거품이 되었다. 나처럼 책과 친하지 않은 아줌마도 스님 저서 몇 권 정도는 통독을 했을 정도로 스타 문필가시니, 그 분을 흠모하는 애독자 내지는 불자들이 오죽 많을까.

 

아주 인산인해였다. 기다란 판 위에 고인을 모시고 붉은 가사 한 장으로 육신을 가린 운구행렬. 머리와 발끝까지 솟구치고 가라앉은 육신의 실루엣이 보는 이들의 눈에 그대로 투영되었다.

 

사실 법정스님이 생존해 계실 때에는 그 분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했다. 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간결한 문체로 이토록 깊은 사상을 물 흐르듯 풀어쓸 수 있는 문재에 감탄, 또 감탄 했을 뿐이고 외모에서 느껴지는 엄격함과 그 엄격함을 더욱 빛나게 하는 장대한 기골은 우리처럼 별 볼일 없는 중생 기죽이기에 딱 알맞은 사람이라는 느낌뿐이었다.

 

더구나 말발 세고 행세깨나 하는 멋쟁이 보살들이 법정스님이라면 깜박 죽는 판인데 그 무리에 나까지 합세 할 필요가 있을까. 스님의 공개강연에 한 번도 참석하지 않은 이유 중에 하나다.

 

스타스님, 법정스님에 대한 편견을 회고하자니 몇 년 전 풍경이 떠오른다. 내가 지도층 내지는 명망가를 기피하는 이유 중에 가장 적나라한 풍경이랄까? 남편의 절친한 친구 중에 이름만 대면 전 국민이 알만한 유명인사의 자제 결혼식이 있었다.

 

보통 남편과 관계된 지인들의 애경사엔 별로 동참하지 않았는데 그 결혼식만큼은 꼭 같이 가야 한다고 남편이 하도 우기기에 딴에는 내가 가지고 있던 옷 중에서 제일 좋은 옷을 걸쳐 입고 생전 안 하던 분칠까지 하면서 머나먼(?) 서울행을 나선 것이었다.

 

그 식장에서 마침 내가 제일 좋아하는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당연히 남편은 뒷전이고 그 친구와 합석을 해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는데 하필 친구와 함께 앉은 원탁 테이블 멤버가 정말 나 빼고 모두 잘난 사람들뿐이었다.

 

식이 끝나고 끼리끼리 담소가 무르익는데 혼주께서 사돈을 대동하고 인사를 다니고 있었다. 마침내 우리가 앉은 테이블에 도착했는데 글쎄 둥그렇게 앉은 8명 하객 중에 나만 빼고 인사를 시키는 게 아닌가.

 

나만 빠졌다는 모멸감 보다는 졸지에 나 혼자만 투명인간이 되고 만 상황 때문에 미안하고 민망해 어쩔 줄 몰라 하는 내 친구 때문에 더 곤혹스러웠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소개할 만큼 이렇다 할 프로필이 전혀 없는 초라한 시골 아줌마. 그렇잖아도 정신없는 혼주 시야에 들었을 리 만무하리라. 그래도 그렇지. 아주 간단하게 '저와 가깝게 지내는 아무개 선배 부인이십니다' 이렇게라도 소개했으면 그 테이블이 얼마나 부드러웠을까. 혼주의 그릇 크기에 대 실망을 했지만 세상인심이 다 그런 거 아닌가 할 정도의 지각은 있는지라 상처는 없었다.

 

다시 돌아 와 법정스님으로. 그 분이 해남 태생이시고 장준하, 함석헌 선생들과 유신철폐 운동에 뜻을 함께 하셨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았다. 엄혹한 유신 치하에서 '씨알의 소리' 편집동인, '크리스찬 아카데미' 운영위원을 맡아 민주화운동에 동참한 선각자라는 것도 물론 처음 안 사실이었다.

 

그저 구질구질한 속세와는 가능한 한 거리를 두고 고고하게 글이나 쓰며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 식으로 선승으로서의 품위를 지키려고 애쓰는 승려 정도라는 생각 때문에 그 분의 저서를 보고 감동이 물밀듯 몰려와도 애써 평가절하 하는 '삐딱이'가 바로 나였던 것이다.

 

백석의 연인, 길상화보살로부터 거액의 보시를 조건 없이 받았을 때 무소유를 주장한 스님이 과연 그 재산을 어떻게 요리하실까 호기심도 많았다. 중이든 속이든 돈 싫다고 하는 중생을 본 적이 없으니까.

 

그런데 법정스님은 확실히 달랐다. 온갖 사연이 차고 넘치는 요정, 대원각 터를 기증받아 길상사를 창건하고 사찰재산을 조계종단에 미련 없이 넘겼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과연 이 시대에 보기 드문 선승이구나 하는 생각에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부처님 말씀 중에 이 세상 모든 사물은 '공'한 것이라고 한다. 우리 눈앞에 엄연히 존재하는 육신. 그 자체도 시공간에 떠도는 '지수화풍'의 결합이라고 한다.

 

자연과 생명을 사랑한, 끊임없이 맑고 향기로운 사바세계를 염원하신 법정스님이 '지수화풍'의 결합에서 마침내 '지수화풍'의 흩어짐으로 우리 곁을 떠나셨다.

 

 

당신이 염원하신 그대로 불필요한 의식도 불필요한 과소비도 사양한 채 남들이 다 입는 수의 하나, 관 짝 하나 마다하시고 한 줌 흙으로 돌아갔다.

 

훨훨 타는 불빛을 바라보며 이런 세상은 참 아름답고 살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자연의 한 구성원으로서 자연으로 소박하게 귀의한 스님이나 그 스님의 유지를 한 치 오차 없이 섬기신 제자 스님들이나 모두가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오늘 하루는….


태그:#법정스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