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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지난 13일 저녁 서울 금천자원봉사센터에 동요 '고향의 봄'이 울려 퍼졌다. 중국 하얼빈에서 온 이주여성 징리지에(37)씨 아들 엄요한(1) 군의 돌잔치 풍경이다.

 

요한 군의 첫 번째 생일을 축하해주기 위해 다문화가족상담센터와 금천자원봉사센터가 힘을 합치고, 이주여성들이 조물조물 경단을 빚었다. 아코사랑봉사단이 멋진 아코디언 연주를 들려주고, 지란지교봉사단이 한국무용을 선보였다.
 
많은 이들의 축하를 받으며 행복한 생일을 보내는 색동옷 차림의 요한 군과 중국 전통 의상을 곱게 차려입은 어머니 징리지에씨. 그러나 요한군의 아버지는 보이지 않았다.

"아이만은 지키고 싶었다" 뱃속의 아이와 함께 이주여성 쉼터 전전

"징리지에씨는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곳을 찾기 위해 서울과 경기도를 전전했습니다. 이주여성으로서 임신과 출산을 홀로 감당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아이의 성장은 앞으로 주요한 과제입니다."

 

돌잔치 사회를 맡았던 다문화가족상담센터 안현숙 소장의 목소리가 떨렸다. 징리지에씨는 2008년 7월3일 전 남편과 함께 한국 땅을 밟았다. 조선족 지인의 소개로 만난 두 사람은 1년 정도 인터넷을 통해 서신을 교환하며 사랑을 키워갔다.

 

모 엘리베이터 회사에서 부장으로 일하던 9살 연상의 전 남편은 방직공장에서 일하던 징리지에씨를 만나기 위해 중국을 3번 정도 오가기도 했다. 한국에 와서 임신을 하자 상대의 태도가 돌변했다.

 

"식모가 임신을 했다"라며 징리지에씨의 불륜을 의심하고 낙태를 강요한 것이다. 전처와의 사이에서 낳은 11살짜리 아이만 잘 키울 것을 내심 바랐던 전 남편은 "아이를 낳지 않으면 국적을 취득할 수 있게 해주겠다"라며 밥을 굶겼지만 징리지에씨는 굴하지 않았다.

 

정신적 학대나 모욕은 참을 수 있었다. 그러나 뱃속의 아이를 지킬 수 있다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 결국 장리지에씨는 2008년 8월 23일 집을 나왔다. 한국에 온 지 두 달도 채 되지 않아 교회와 쉼터를 수소문하며 헤매던 그녀는 경찰서 앞에 쓰러진 채 발견되었다.

이주여성을 돕는 단체의 도움으로 작년 봄 무사히 출산을 마친 징리지에씨는 현재 요한 군과 함께 경기도 광주의 한 쉼터에서 생활하고 있다.

 

주변의 도움으로 이혼소송도 승소했다. 친자확인 유전자검사결과도 징리지에씨의 편이었다. 소송 내내 "아내가 아닌 식모로 한국에 데려왔다"라고 주장하던 전 남편은 요한군의 친권을 포기했다. 현재 그는 징리지에씨에게 위자료 1500만원을 지급하기로 한 상태이다.

 

한국인의 배우자 자격으로 입국해 이혼했지만 출국할 필요 없이 당분간 한국에 머무를 수 있다. 자녀가 있을 경우엔 체류기간 1년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가정의 세대주는 만 1세의 요한 군이다. 아직 징리지에씨가 한국 국적을 취득하지 못해서이다.

 

이주여성은 외국인등록증 취득일로부터 2년이 지나야 귀화를 신청할 수 있다. 징리지에씨는 한국에 들어온 지 3개월만인 2008년 10월, 한 교회의 도움으로 외국인등록증을 발급받았다. 그녀는 올해 10월까지 기다려야 한국에 귀화신청을 할 수 있다.

이미 '우리'가 된 이주여성에 따뜻한 관심 필요

"어느날 보니 징리지에의 앞머리가 많이 하얘졌더군요. 앞으로 행복한 날들만 가득해야할텐데."

 

임신 초기부터 출산까지 묵묵히 징리지에씨의 곁을 지키며 응원해준 다문화가족상담센터 안현숙(51) 소장은 요한 군의 첫돌을 기뻐하면서도 모자의 앞날에 대한 걱정을 감추지 못했다.

 

안 소장은 "이혼하면서 자녀양육권을 얻지 못해 강제 추방되거나 미등록체류자가 되는 이주여성들도 적지 않다"라며 "한국의 모자 보호시설에는 이주여성이 들어갈 수 없다. 이혼한 이주여성들도 아이와 함께 삶을 개척할 수 있도록 국가가 지원에 나서야 한다"라고 말했다.

 

모자세대가 3년까지 머무를 수 있는 한국의 '모자원'과 같은 시설의 마련이 이주여성들에게도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돌잔치 상에서 장난감 모형 마이크를 집어 들고 환하게 웃던 개구쟁이 요한 군이 이 사회에 기여하는 인물로 자라나길 희망하던 징리지에씨. 그녀는 어느새 중국 전통의상을 벗고 평상복으로 돌아와 아들을 품에 안고 있었다. 요한 군은 엄마의 젖을 물고 편안한 표정으로 자신의 첫 번째 생일파티를 마무리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이주노동자의방송 MWTV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이주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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