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법정 스님께서 열반하셔서 그를 흠모하던 많은 사람들의 눈물 속에 화장되어 산이 되고 물이 되고 바람이 되었으니, 봄이 되면 나비가 되어 날고, 꽃 향기 속에 우리들의 가슴깊이 오랫동안 남게 될 것이지만 낙엽이 지는 날에는 곁에 없음에 더욱 쓸쓸해질 것이다.

 

나의 서재 한켠에 오랜 침묵으로 기다리던 그분의 무소유를 찾아 들었다. 1976년 4월 10일 초판 발행, 1979년 10월 20일 중판으로 발행이 된 책이니 나이가 서른한 살이 되어 내가 군복무를 할 때 만났을 것 같은데 기억이 흐릿하다.

 

수십 년 세월 속에 기억을 할 수 없을 만큼 이사를 다녔고, 그분과는 종교가 다른 개신교 목사로서 이 낡고 작은 책을 오랫동안 나의 곁에 남겨 둔 것은 그분의 가르침과 나의 주님으로 섬기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다를 것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누렇게 바랜 책 속에 그 분의 이야기가 소곤거리듯이 들려온다. 20대 어린 나는 그 분의 가르침에 깊은 공감으로 연필로 줄을 그으며 듣고 있었다.

 

'나는 이 때 온몸으로, 그리고 마음 속으로 절절히 느끼게 되었다. 집착(執着)이 괴로움인 것을. 그렇다, 나는 난초에게 너무 집착해 버린 것이다.'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것은 무소유(無所有)의 역리(逆理)인것이다.'

 

나의 선생이시며 주님이신 예수께서는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고, "두 벌 옷을 가지지 말라"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가르치시며, 생전에 입던 옷까지 군병들에게 나누어 주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으니 가난한 목수의 집에서 태어나 무소유를 친히 본 보이셨다.

 

예수의 부르심을 받은 베드로는 배와 그물을 버리고 제자가 되었으니 그도 선생이신 예수처럼 무소유를 실천한 사람이고, 예수의 가르침을 세상에 전하다가 죄수가 되어 로마 감옥에 갇혀 있던 바울은 사랑하는 디모데에게 "네가 올 때에는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책을 가지고 오라"고 하였으니, 가까이 온 겨울에 몸을 가릴 옷조차 소유하지 못했다.

 

내가 예수의 제자가 되어 베드로처럼, 그리고 바울처럼 살겠다고 서원하였지만 지금 나의 삶을 들여다보면 가진 것이 너무나 많음에 부끄러울 뿐이다. 지금은 베드로와 바울이 살던 시대와 상황이 다르기는 하겠지만 나는 자유를 얻고자 이 길을 왔는데 실상은 자유를 잃고 집착에 빠져 있음을 부인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나의 삶을 옥죄고 얽매인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스님의 이력을 보니 '1954년 입산 가출'이라 적혀 있어 속세에 있던 과거조차 소유하지 않았다.

  

간디의 어록을 읽다가 '자신이 가진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을 느끼어 부끄러웠다'는 스님의 말씀을 나의 젊은 날에 또렷하게 들었고, 자랑할 것이 많은 과거를 배설물처럼 버렸다는 바울의 말씀을 수 없이 듣고 내 입으로 말하고 있으면서도, 보잘 것 없는 나의 과거를 큰 자랑으로 여기고 여러 줄 화려한 이력을 쓰려하니 참으로 부끄럽고 헛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뿐인가 나는 현재를 지나 미래까지도 소유하려 이 땅에 나의 이름을 남기는 기념비를 세우려 애쓰고 있으니 허탄하고 비루한 인생이라 할 수 있겠다.

 

나는 앞으로도 많은 것을 소유하고 살아갈 것이며, 크고 화려한 것을 소유함으로 목과 어깨에 힘을 주고 자랑하며 살려고 할 것이니 예수와는 거리가 먼 사람으로 괴로운 일이다.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는 전도자의 말처럼 헛된 것을 붙들고 놓지 못하고 매달린 나의 모습은 연민스럽기만 하다.

 

'그러나 우리는 언젠가는 빈 손으로 돌아갈 것이다. 내 육신마저 버리고 훌훌히 떠나 갈 것이다'라고 말한 대로 스님은 따듯한 봄이 오기 전에 우리들의 손을 놓고 서둘러 떠나고 말았다.

 

그렇다 나도 갈 것이다. 내가 소유하고 있던 보잘 것 없는 것들을 다 놓고 갈 것이다. 사랑하는 아내도 내 소유가 아니니 놓고 갈 것이며, 나의 몸을 빌어 이 땅에 태어난 아이들도 나의 소유가 아니니 그들도 놓고 갈 것이고, 자랑거리로 여기던 몇 줄 안 되는 과거의 이력과 사랑하던 것들을 다 놓고 가야 할 것이다.

 

흰 눈이 소복하게 쌓여 세상이 깨끗하고 하늘이 환한 겨울도 좋고, 쓸쓸한 가을도 좋겠지만 진달래 만발한 봄날에 부활을 기다리며 두 손 뒷짐 진 모습으로 길을 가야 할 것이다. 그때, 나를 얽매고 있던 모든 것을 다 놓고 떠날 때, 나는 비로소 자유를 얻을 것이다.


#법정스님#무소유#자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