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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 전야의 고요

 

3월 13일, 처의 단 하루 낮, 남도 여행길에 따라나섰습니다. 아랫녘 봄의 정황도 궁금하고 그곳을 오가는 긴 시간 동안 옆자리에 앉아 온전히 아내와 함께하는 시간을 갖고 싶었습니다.

 

이 외출은 지난 겨울 3개월 동안 불교기초교리를 함께 공부한 처와 그 도반들끼리의 전남 순천 선암사에서의 참배와 법회 및 가람답사를 겸한 것이었습니다. 스승인 본공 스님을 모시고 삶의 가치로운 것들을 함께 찾고자 하는 도반들끼리 함께하는 여로였습니다.

 

몸도 마음도 차창 밖 봄 햇살처럼 투명하고 가벼웠습니다. 고속도로를 내려서 국도로 접어들자 천지에 가득한 봄기운에 현기증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녹색의 보리밭, 그 밭가에서 거름을 내고 있는 허리 굽힌 농부, 논두렁에서 봄나물을 캐는 아낙들, 금방 터질 듯한 탱탱한 꽃망울을 단 매화나무. 이 모든 풍광은 혁명 전야의 고요처럼 에너지로 가득합니다. 이 응집된 에너지들은 곧 '만발한 봄'으로 폭발하리라.

 

버스에서 내린 우리를 처음 맞이한 것은 선암사로 난 길가를 굽이져 흐르는 계류였습니다.

산자락에 누운 채 맑은 물에 씻긴 바위가 길을 막으면 돌아 흐르고 소(沼)를 만나면 잠시 머물다 흐르는 계곡물, 그 계곡물 위로 가지를 뻗은 늙은 산벚나무들. 구배진 선암사 길을 따라 흐르는 계류천에는 순리로만 그득해서, 단 한 치의 거슬림도 없었습니다. 콘크리트 옹벽으로 하천을 정비한 인공의 삭막함과 위태함이 없으니 이 계곡을 따라 걷는 것만으로도 대처에서 벼리진 날선 감정들이 두루뭉술 누그러들었습니다.

 

상생의 발우공양

 

1500년 세월의 태고총림, 선암사는 긴 시간을 품은 고요함과 넉넉함이 감싸고 있었습니다.

 

 

대웅전에서 경담 주지 스님과 이 절간의 많은 스님들이 함께 합장하며 먼 길 온 법우들을 반겼고 서울에서 내려간 본공 스님과 우리 도반들은 열락의 마음으로 두 손 모아 화답했습니다.

 

처가 도반들과 함께 법회에 참가하는 동안 저는 찬찬히 선암사 경내를 걸었습니다. 너른 사찰의 규모와 적지 않은 불전의 수에도 불구하고 가람을 기능별로 분산 배치하고 건물의 규모가 위압적이지 않아 경이로움 대신 친근함으로 다가왔습니다.

 

고찰의 엄정함은 수목들에서 비롯됩니다. 경내의 홍매와 청매 등 모든 나무들이 법을 깨친 고승들처럼 위엄이 섰고 하늘높이 뻗은 편백나무군락은 '전라도는 물론 금강산 유점사의 스님들까지 와서 공부하였다(학계연록)'는 선암사 학승들의 용맹정진의 기상으로 읽혔습니다.

 

팽팽한 매화의 꽃망울을 살피느라 눈을 위로 두면 발 아래가 위태롭습니다. 흙을 뚫고 올라오고 있는 수많은 초록생명들이 자칫 밟힐까, 염려 때문입니다. 성급한 상사화는 벌써 초록빛 몸뚱이를 한 자 길이로 키웠습니다.

 

법회와 기도를 마친 처와 함께 공양간인 적묵당에서 점심 공양을 했습니다. 포에 쌓여 단정히 선반에 놓인 스님들의 바리때(발우)가 먹는 것의 성스러움을 일깨워주고 있었습니다. 대한민국의 경제적 풍요 속에서 너나없이 주지육림(酒池肉林)의 세월을 구가하고 있는 모습들이 그 바리때와 대비되었습니다.

 

도회지 근교의 즐비한 맛집들, 이미 어떤 것으로도 만족하기 어려운 까탈스러운 혀를 갖게 된 사람들, 입속으로 들어간 것보다 남겨진 것이 더 많은 밥상. 이것은 풍요로움이 아니라 뭇 생명들과의 상생을 해치는 횡포다, 싶습니다.

 

"한방울의 물에도 천지의 은혜가 스며있고 한 알의 곡식에도 만인의 노고가 담겨있습니다. 몸과 마음을 바로 하여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이롭게 하고자 하는 발원을 세웁니다."

 

머리 위에 걸린 공양게(供養偈)가 세속에서의 그 낭비를 통렬하게 나무랍니다.

 

공양간 스님의 넉넉한 미소 속에서 '꼭 먹을 만큼'만 담았습니다. 밥 한 톨도 남겨서는 안된다는 절간의 공양수칙을 함께한 어느 누구도 어긴 자가 없었습니다. 공양을 마친 식판은 애벌로 닦은 듯 반들반들했고, 잔반통에는 과일 껍질만이 모였습니다. 저는 기꺼이 '물은 자신의 국그릇으로 마셔라'는 공양간에 붙은 문구을 실천했습니다. 김치 한 조각으로 설거지조차 스스로 마치는 스님들의 발우공양법이야말로 '아껴 쓰고, 살려 쓰고, 나누어 써야' 하는 유한한 자원의 올바른 사용의 실천이다 싶습니다.

 

소나무의 하심과 토끼의 소신공양

 

선암사의 지도법사이신 진봉 스님께서 가람을 안내했습니다.  땅으로 누운 500년 수령의 소나무 앞에서 발길을 멈추었습니다.

 

"이 소나무를 보십시오. 온 몸을 낮추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심下心(불교에서 자기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는 마음)'입니다. 이 소나무는 여러분께 스스로를 낮춤으로써 모두를 올릴 수 있음을 설법하고 있는 것입니다."

 

소나무의 '겸손'을 설법하는 큰 스님이었습니다. 진봉 스님은 대복전(大福田)앞에서 다시 법문을 이었습니다.

 

"이 문의 하단 좌우에는 삼족오와 달나라에서 방아 찧는 토끼의 형상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태양을 상징하는 삼족오상은 양을, 달의 토끼상은 음을 나타내는 음양의 조화를 말합니다. 한데 어떻게 토끼가 달에서 방아 찧는 상징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을까요?

 

제석천왕께서 세상을 살피러 내려왔습니다. 배고픈 탁발승의 모습으로 세 짐승에게 먹을 것을 구했습니다. 여우는 물고기를 잡아주었고, 원숭이는 맛있는 과일을 따다 주었습니다. 하지만 토끼는 빈손이었습니다. 제석천왕께서 빈손인 이유를 물었습니다. 토끼가 말했습니다. '저도 보시할 것이 있습니다.' 토끼는 여우와 원숭이게 청을 해, 솥을 걸고 물을 끓이도록 했습니다. 마침내 물이 끓자 스스로 그 솥으로 뛰어들었습니다.

 

제석천왕은 그 뼈를 추려 달의 상징물로 삼았습니다. 이것은 희생과 헌신의 보살도菩薩道(보살이 불과(佛果)를 구하려고 닦는 길)를 나타낸 것입니다. 보살로서 이 세상을 산다면 소신공양(燒身供養)의 헌신을 실천하겠다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그러면 모든 인연은 소멸되고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감로가 흐르는 4단 석조

 

진봉 스님은 차를 덖는 가마솥이 걸린 달마전을 지나 칠전선원의 4단 다조(茶槽)로 안내했습니다. 조선시대 4대 선원 중의 하나였다는 이 칠전선원의 담장 너머에는 수령이 6~700년 이상 된 야생차가 군락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 차밭의 지하로 흘러온 물줄기가 나무 홈통을 타고 4기의 돌확에 잇대어서 흐를 수 있게 했습니다. 분명히 사람이 만들고 배치했을진대 저절로 생겨난 것처럼 자연스럽고 아취를 머금은 모습입니다.

 

선방수좌들이 차를 끓일 때 사용한다는 이 물은 땅과 하늘 그리고 바람이 만나는 곳의 물로서 최고의 물맛이라 했습니다. 지하 수직으로 뻗은 차나무의 뿌리를 축이고 온 물이니 그 찻잎과 이 물의 어울림은 분명코 감로(甘露, 불교에서 도리천(忉利天)에 있다는 달콤하고 신령스러운 액체)임이 틀림없을 것입니다.

 

일창이기(一槍二旗, 한 자루의 창에 두개의 깃발을 매단 형상 즉 제일 끝 부분이 창처럼 뾰족이 나와 있고 그 밑으로 좀 더 많이 자라 펴진 잎이 두 장 있는 때의 차순) 야생찻잎만을 9번 덖어 만들어진 선암사차는 한국 최고의 덖음차로 대접받고 있습니다.

 

14살에 선암사에 출가하여 선암사 다각(茶角, 절에서 차밭을 가꾸고 차를 만들며 다례를 올리는 등 일체의 차 살림을 맡은 사람)의 소임을 맡아 오신 전 선암사 주지 지허 스님의 책(지허 스님의 차, 김영사)에서는 '줄기째 딴 일창이기의 찻잎만이 오묘하고 신비한 한국차가 지닌 완전 덖음차의 향·색·미를 발휘할 수 있다'고 적고 있습니다.

 

차 마시기를 말 그대로 다반사(茶飯事, 차를 마시듯, 밥을 먹듯 예사로운 일)로 했던 저도 이곳에서 자생차에서는 우전이나 세작에만 집착할 일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사월초파일을 전후하여 생산되기 시작한다는, '구수하고 깊은 맛'의 선암사 야생차는 생산량이 적어서 그 최고의 맛을 보기는 쉽지가 않습니다.

 

 

근심과 번뇌를 떨구는 해우소

 

이 절의 빼놓을 수 없는 인상은 뒷간입니다. 맞배지붕 아래로 난 입구를 들어서면 남녀가 좌우로 나뉘고 다시 가슴 높이 정도의 가림막 나무로 문은 없이 칸들로만 나뉘어져있습니다.

 

정호승 시인은 이 해우소를 시로 읊었습니다.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 앞 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눈물까지 함께하는 배설을 하면 근심과 번뇌는 더 쉽게 떨어질지 모르겠습니다. 또한 이 화장실은 문화재(전남 문화재 자료 제214호)로도 지정되어있습니다.

 

이 화장실은 아득할 만큼 높습니다. 먼 아래의 배설물 위에는 왕겨만 뿌려져 있지만 냄새도 없습니다. 먹은 것을 자연에 짐이 되지 않는 방식으로 자연으로 되돌리는 방식입니다. 사실, 우리의 재래식 뒷간은 생명의 순환이 이루어지는 곳이었으며 똥·오줌은 소중한 거름이었습니다. 수세식 화장실은 정수된 물이 뒤처리를 하고, 그 오물은 긴 관을 흘러 종말처리장에 모여서 다시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한 다음에야 자연에 놓일 수 있는, 편리하고 위생적이지만 생명의 순환을 끊는 방법입니다.

 

행탁 하나면 족해라

 

아내를 따라나선 선암사 성지순례길은 제게 구도(求道)의 방법뿐만 아니라 어떻게 먹고 어떻게 버려야 하는지를 새삼스럽게 가르침 받는 수행길이 되었습니다.

 

산자락의 굽이진 골짜기를 따라 부딪치며 돌아 흐르는 계류야말로 우리 인생과 닮음꼴입니다. 끝이 빤히 보이는 직선의 흐름이었으면 얼마나 지루할까요. 눈앞의 모퉁이 바로 뒤의 모습도 볼 수 없으니 더욱 흥미로운 것이 인생입니다. 어떤 이는 그 굽이를 돌 때 고단하다 여기고 어떤 이는 즐겁다 여깁니다. 어떤 마음으로 그 모퉁이를 돌 것인가는 각자의 몫일 테지요.

 

늘 눈을 뜨고 있는 물고기처럼 깨어있는 마음으로 나의 행위와 그 행위의 결과가 타인과 생물의 삶에 어떤 영향일 것인가를 바로 인식해야겠습니다. 깨어 있는 마음으로 어찌 남길 만큼 음식을 담을 것이며 기지개 켜는 개구리가 있을 연못에 함부로 돌을 던질 수 있겠습니까.

 

진봉 스님은 일주문밖까지 나와 배웅을 했습니다. 선암사를 나서는 발길이 더디고 마음이 아쉬웠습니다. 세계를 떠돌며 수많은 유적과 정원들을 살폈지만 이곳 선암사 가람의 돌담과 마디 굵은 홍매화 그리고 달마전 뒤뜰과 그 뜰에 놓인 물확의 어울림처럼 소박한 아름다운 조화를 보지 못했습니다.

 

유흥의 탐닉과 삿된 유혹을 지우고 선암사 경내를 거닐던 그 삼가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산문 밖의 삶을 살리라 다짐합니다.

 

달랑 행탁(行橐) 하나 맨 모습으로 다시 뒤돌아보니 선암사 절간의 고요한 천지간 허공을 가득 메운 충만이 보입니다. 그것은 봄이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태그:#선암사, #기화류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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