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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겨울은 유난히 춥고 눈도 많이 내렸다. 설을 쇠고도 날씨는 옛사람들의 말처럼 '음력 정월 티'를 냈다. 2월 들어 화창한 날을 찾기 어려웠다는 통계도 있다. 잦은 비 그리고 흐린 날씨 때문에 시설에서 재배하는 딸기 등은 병충해가 심하고 노지에 심은 작물도 제대로 자라지 못한다고 했다.

그러나 아직 견습 농부라지만 날씨 탓이나 하면서 다음 농사에 손을 놓을 수는 없었다. 농사는 시기를 놓치면 바로 끝나버리기 때문이다.

정월 대보름을 전후로 아내와 날씨만 좋으면 숙지원으로 출근했다.  2월 28일부터 3월 1일까지 이틀 동안 텃밭의 일부에 수선화 등 구근류를 심고, 비닐하우스 안의 땅을 골라 강낭콩을 심고, 씨 고구마를 넣었다.  

비닐하우스 한 쪽에 씨 고구마를 넣다. 우리 마을에서는  씨앗을 심는다고 하지 않고 "넣는다."고 한다.
▲ 씨고구마 넣기 비닐하우스 한 쪽에 씨 고구마를 넣다. 우리 마을에서는 씨앗을 심는다고 하지 않고 "넣는다."고 한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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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색 강낭콩은 항암효과가 있다는데 확실한 것은 모른다. 그보다 우선 밥에 넣어 먹으면 콩알이 굵고 포근포근하여 완두콩과 함께 내가 좋아하는 작물이기에 아내가 신경을 쓰는 것 같다. 우선 비닐하우스 안에 두 이랑을 심고 날이 좀 더 풀리면 바깥 텃밭에도 두어이랑 심을 것이다.

고구마는 생명력이 강해 박토에서도 잘 자라며, 다른 작물에 비해 풀을 매는 손이 덜 가는 작물이다. 순을 꺾어 두둑에 꽂으면 거기서 뿌리가 생기고 가을이면 고구마를 주렁주렁 매달고 지상으로 나오는데 그 모습은 나이를 먹는다는 사실을 잊게 만들어주는 감동이다.

이 뿐만 아니라 고구마는 맛도 좋아 요즘 대표적인 건강 식품으로 꼽히는데 주요 간식거리이면서 가끔은 끼니 대용식으로도 좋은 작물이다. 또 여러 가족들과 함께 수확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작물 중의 하나라는 점 때문에도 많이 심을 작정이다.

3월 7일(일요일)오후, 반짝 해가 나는 틈을 노려 하지 감자를 심었다. 감자는 거름기가 많은 땅에서 잘 자란다기에 지난 가을 이미 퇴비를 뿌린 이랑도 만들었고 멀칭 후 씨앗을 넣었는데 지금같은 날씨라면 제대로 수확할 수 있을는지 걱정이다. 감자는 간식으로도 좋지만 한 여름 부식이라는 편이 더 맞을 것이다. 남작이라는 종자는 쪄먹어도 좋고 국거리로도 좋다기에 그걸 심었다.

   뒤가 허해 경계에 소나무와 철쭉을 옮겼다.
▲ 소나무를 옮기기 전의 모습 뒤가 허해 경계에 소나무와 철쭉을 옮겼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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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정월 스무 여드레(토요일)과 정월 스무 아흐렛날(일요일) 오후, 날씨가 괜찮았기에 아내가 마늘밭을 매는 동안 나는 흩어져 있던 동백을 한곳으로 모으고, 반송 몇 그루는 숙지원 뒤편의 울타리용으로 옮겨 심고 호랑가시나무, 은목서, 팽나무도 다시 자리를 잡아 재배치하는 작업을 했다.

숙지원을 가꾸기 시작한 지 4년째. 그동안 심었던 회초리 같던 어린 묘목들은 2, 3년이 자라니 나무들도 체격이 커져 가지가 맞닿을 지경이 되었다. 어린 묘목을 심었던 것인데 나무가 더 자라고 뿌리가 깊이 내리기 전에 나무와 나무 사이의 간격을 넓힐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먼저 옮길 나무와 그 나무가 갈 곳을 정한다. 그리고 나무 심을 자리에 옮길 나무가 자리 잡을 구덩이를 파놓고, 실하게 뿌리를 내린 나무를 캐어 밀차로 실어나르고 수형을 잡아 편안하게 앉히기까지의 과정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아직 어린 동백나무는 그런대로 쉬운 편이었지만 제법 자란 소나무는 자체 무게도 만만치 않아 땀을 흠뻑 흘려야만 했다. 그러다보니 고작 10여주를 옮기는 작업에 한 나절이 잠깐이었다. 아무리 내 노력으로 달라지는 새로운 풍경을 보는 즐거움도 크다지만 내 욕심만으로 나무를 괴롭힌 것이 아니냐는 생각도 들었다.

   경계를 분명히 하면서 뒤가 허하지 않아 보기에도 좋다.
▲ 소나무를 옮긴 후의 모습 경계를 분명히 하면서 뒤가 허하지 않아 보기에도 좋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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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무 예찬은 쉽게 시작 할 수 없고 끝내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인간이 내뿜는 이산화탄소를 마시고 인간의 생존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산소의 주요 공급원, 사람이 비를 가릴 건축의 소재, 인간의 생활용구인 가구의 소재, 먹을 과실을 제공하는 존재, 종이와 옷감의 원료가 되는 펄프 제공, 요리와 난방을 위한 땔감 제공, 방풍림과 풍치림의 기능, 심지어 장식용 분재의 소재가 되기까지 나무와 관련된 경험과 느낌까지 더한다면 일반인들도 책 몇 권은 너끈하게 넘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통상적인 나무만의 고유한 생김새나 향기, 그리고 나무의 열매에 대한 예찬보다 개인적으로 나무를 보고 있으면 마음의 평화를 느낄 수 있기에 오래도록 함께 하고 싶다. 내가 소유하는 것 같지만 영원히 소유할 수 없는 나무, 그 나무에 대한 나의 애착이 각별하다고 결코 죄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아직 나무 심기는 끝나지 않았다. 울타리용 남천도 더 심어야하고, 추위에 얼어 죽은 비파와 석류 자리를 메우는 일도 남았다. 또 꺾꽂이를 하여 3년을 키운 철쭉도 자리를 잡아 옮겨주어야 한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무리하는 것은 금물이다. 운동하는 셈치고 천천히 쉬엄쉬엄 서둘지 않을 작정이다.

이제 음력 2월, 양력 3월도 중순이다. 이미 산수유는 피었고 이어 매화가 뒤따르고 있다.
곧 수선화가 피면 하얀 자두꽃도 시새움을 할 것이다. 마늘과 양파는 더 푸르러지고 곧 감자도 싹을 내밀 것이다. 어젯밤부터 내린 비에 옮겨 심은 나무들도 활기를 찾을 것이다.

그러나 햇볕을 받지 못하면 식물은 야무지게 자라지 못한다. 추위가 오면 피던 꽃도 시들고 만다. 비가 많으면 채소의 수확량이 감소할 뿐 아니라 맛도 떨어지고 수분이 많은 탓에 오랫동안 신선도를 유지할 수 없다.

가랏이라는 채소는 두 해살이 풀로 가을에 씨를 뿌려 겨울을 나고 봄에 거두는 작물이다.
생김새는 갓과 비슷하며 주로 김치를 담거나 데쳐서 된장에 무쳐 나물로 먹어도 된다. 그런데 아내의 말에 의하면 금년에는 일조량의 부족, 잦은 비 때문에 텃밭에 뿌린 가랏마저 제대로 자라지도 않을 뿐 아니라 맛도 덜하다고 한다.

마을 아주머니들도 "정 이월에 비가 많으면 여름에도 비가 많다"면서 금년도 날씨가 심상치 않다고 걱정한다. 어떤 근거가 있는 말인지는 모르지만 만약 불행하게도 금년 농사를 망친다면 농민들의 소득 감소도 문제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도 안전성이 의심되는 외국 농산물에 의존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점이 더 큰 문제라고 본다.                       

수입 농산물의 안전성에 관해서는 많은 분들이 지적했고 그 피해 또한 여러 차례 보도된 바 있다. 각종 농약과 방부제로 인한 오염은 말할 것 없고, 가짜 불량식품에 발암물질까지 첨가된 농산물을 비싼 돈으로 들여와 국민들의 식탁에 올린다고 생각하면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꽃을 피우기 시작하는 홍매.
▲ 홍매 꽃을 피우기 시작하는 홍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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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날씨다. 제발 앞으로 험한 날씨만은 없었으면 한다. 사람의 힘만으로 할 수 없는 일이 농사뿐이랴만, 아마 농사처럼 자연의 영향을 많이 받는 일도 없을 것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지금처럼 비가 너무 자주 오는 것도 농작물에게는 치명적이다. 아무리 힘든 노동과 기나긴 기다림에도 날씨가 도와주지 않으면 수확은 기약할 수 없기 때문이다.

텃밭농사를 지으며 자연을 다시 생각한다. 비바람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는 사람의 한계를 다시 본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한겨레 필통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음력정월, #농사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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