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과의 관계개선을 내세우면서 등장한 이명박 대통령이 2006년 4월 24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독도연설과 같은- 영토수호를 위해서는 긴박한 외교전도 피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갖고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러나 마지노선은 있었다. 그도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헌법 66조에 따라 헌법준수와 국가보위의 의무를 선서한 이상 최소한 2005년 봄 반기문 당시 외교부 장관이 "독도는한일관계 위에 있다"는 정도의 인식은 지니고 있을 것이라는 소박한 기대까지 버리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현 정부가 해온 걸 보면 과연 일본이 독도문제에 대해 어떤 식의 술책을 쓰고 있는지에 대해 분석이나 해 보았는지 궁금하다.
일본의 '기정사실화' 전략 어떻게 봐야 하나
국제정치에서 국가간 이익쟁투의 정치군사적 방식에 대해 혹자는 지구전, 전격전, 기정사실화 (faitaccompli)등 세 가지 전략을 거론한다. 독도에 대해 지난 10여년간 일본은 이 세가지 전략을 병행해 왔다. 한국이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상대적 우위를 이겨내기 위해 독도 주변 해저지형을 국제해양학회에 등재한다든지, 동해를 '일본해'로 국제사회가 받아들이게 하는 행위, 시마네현 고시를 통해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하는 행위 등은 모두 지구전에 해당한다.
독도 인근 해양에 방사능 오염을 측정하기 위해 탐사선을 보내거나, 민간항공기를 독도 상공으로 보낸다든지, 일본 우익분자가 배를 몰고 독도에 상륙하려는 행위, 일본의 해상보안청 소속 함정을 독도에 보내는 행동은 일종의 전격전에 해당한다. 이 모든 행위 보다 더욱 더 집요하면서도 문제가 되는 것은 소위 '기정사실화'(fait accompli) 전략이다. 일본 외교청서, 방위백서는 물론 교과서 등 각종 공식문서와 공간서적에 독도를 자국령으로 표기하는 범위를 늘려가는 것이다. 특히 이 중에서 '기정사실화'(fait accompli)는 기본바탕을 이루고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이명박 정부에 대해 사용하는 전략도 기본은 '기정사실화'(fait accompli) 이다. 한일정상회담 5일 뒤인 2008년 7월 14일,일본정부가 발간한 중학교 사회과 교과서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 우리 고유의 영토인 독도를 자국령으로 주장하는 내용을 포함시킨 것과 때를 맞추어 7월 15 일본의 주요언론은 한일정상회담에서 일본 후쿠다 총리가 "다케시마를 (교과서 해설서에) 쓰지 않을 수 없다"고 통보했다고 보도했다.
요미우리는 여기서 더 나아가 이명박 대통령의 대응, 그러니까 "지금은 곤란하니 기다려 달라고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당시 논란이 일자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요미우리 보도는 사실 무근이다. 터무니없는 얘기이다. 한국내부를 분열시키고 독도 문제의 본질을 왜곡하려는 일본측의 언론플레이라면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라고 반박했다. 그리고 2008년 8월 백 아무개씨 등 시민소송단이 요미우리의 근거없는 보도가 한국인의 자존의식에 상처를 입혔다면서 요미우리 신문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였고, 최근 요미우리 신문이 자사 보도는 "허위보도가 아니다"라는 준비서면을 우리 법원에 제출한 것이 알려졌다.
민주당 대변인과 국회의원을 포함해서 대다수 야권 인사들과 애국시민들은 "요미우리 보도발언이 사실이라면 탄핵소추감"이라는 입장이다. 한나라당은 야당의 탄핵소추 등 여러 비판이야말로 "명백한 반국익적 행동이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청와대는 2008년 7월 도대체 이명박 대통령이 대한민국 대통령이라는 직책을 가지고 무엇이라고 말했는지에 대해서는 일언반구의 언급도 없었다. 지금도 박선규 청와대 대변인은 "별도로 입장을 밝힐 사안이 아니라고 본다"면서"이미 일본 외무성에서 요미우리신문의 보도가 사실이 아니라는 내용을 공표한 적이 있지 않느냐. 그것을 참고해 달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헌법상 의무를 수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필자는 정상회담 석상에서 후쿠다에게 강력하게 반박하고 그것을 국민들이 알 수 있도록 밝히지 않았다는 것 자체로 이미 대통령의 헌법상 의무를 수행하지 않은 것으로서 탄핵소추의 요건이 된다고 본다. 누구나 알다시피 정상회담이란 단 한시도 방심할 수 없는 국가와 국가간 국익, 국가의 가치와 존재이유를 걸고 싸우는 진검승부의 장이다.
국가정상으로서 상대국 정상을 상대할 때 결코 타협할 수도 양보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주권과 영토 문제이다. 국가가 국가로 설 수 있느냐 없느냐는 결국 주권과 영토를 지킬 의지와 능력이 있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바로 조금이라도 정신차리고 있었더라면 쉽게 간파할 수 있는 '다케시마는 우리의 영토이기 때문에' 다케시마를 (교과서 해설서에) 쓰지 않을 수 없다는 후쿠다의 발언에 스며있는 '기정사실화' (fait accompli) 전략에 넘어간 것이다. 근본적으로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냐고 강하게 반박하지 않는 한 후쿠다의 '기정사실화'(fait accompli)를 물리치지 못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곤란하다'는 말이 없더라도 이미 탄핵소추의 대상이 된다.
일본으로서는 자국 총리가 한국의 대통령에게 독도를 자국 영토라는 사회과 교과서 해설서 발행 입장을 통보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반박이 없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수확을 거두었다고 득의만만했을 터이다. "지금은 곤란하니 기다려 달라"는 말까지 정말 했다면 대한민국으로서는 절망스러운 일이 되겠지만 일본으로서는 그야말로 결정적인 망외의 소득을 얻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지 않아도 걸핏하면 국제사법재판소로 한번 가보자던 일본이 아니던가?
영토 문제에 양보란 있을 수 없다
일본정부가 요미우리 신문보도가 사실이 아니라고 했지만 어느 부분이 사실이 아니인지는 일본 정부가 마음대로 취사선택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오히려 우리 영토 가운데 가장 일상적으로 주권침해를 당하고 있는 독도에 대해 한국 대통령의 발언과 입장은 밝힐 사안이 아니라면서 일본측 발언에만 매달리는 것 자체에서 더욱더 현 정부 핵심부의 잘못된 인식을 엿볼 수 있다.
근본적으로 독도는 협상을 통해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협상론 중, 파이를 키워가면서 어떻게 그것을 분배할 것인가 하는 통합형 협상(integrative negotiation)과, 결코 타협할 수 없는 사안을 놓고 접점을 찾아보려는 분배형 협상(distributive negotiation) 가운데 후자에 속한다. 자유무역협정 같은 경제통상협상은 통합형 협상에 가깝고, 영토나 역사, 국가 존재의 본질적 가치에 관한 문제는 분배형 협상으로 분류할 수 있다. 어느 경우든 누가 핵심적인 이익을 주장하고 관철해 가는가 하는 것이 승패의 관건이다.
국제협상에서 영토는 패전국가로 전락하지 않는 한 결코 양보해선 안되는 문제이다. 러일전쟁 당시 우리 영토 가운데 제일 먼저 일본에게 침탈당했던 독도에 관한 한 한국정부의 어떤 책임자도 반드시 우리의 입장을 분명히 일본측에 확인시키고 도전하지 못하도록 고집스럽게 다지고 또 다져야할 사안이다. 아무리 한일관계를 더욱 발전시키고 싶어도 영토문제에서는 양보가 있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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