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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겉그림 〈나는 노비로소이다〉
책겉그림〈나는 노비로소이다〉 ⓒ 너머북스
조선 시대는 노비소송이 주를 이뤘다고 한다. <추노>에서도 보여주듯이 노비 문제는 나라 안팎을 들썩이게 만든 주요 과제였음이 분명하다. 양인들도 먹을 끼니가 없으면 노비로 전락하기도 하고, 노비도 돈으로 양인 문서를 살 정도였으니, 어찌 노비 문제가 법정에 주요 과제가 아니었겠는가.

노비 가운데는 개인 양반집 일을 돌보는 사노비도 있고, 관아나 별청 일을 맡아 보는 관노비도 있었다고 한다. 사노비에 비해 관노비는 일도 한결 수월하고 또 삶에 여유가 있었음을 내다볼 수 있다. 당연히 노비라면 사노비 보다는 관노비가 되기를 바랐을 것임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임상혁의 <나는 노비로소이다>(너머북스 펴냄)는 조선시대 나주 관아에서 벌어진 노비 소유권 문제를 다룬 것으로, 원고는 양반 남성 이지도(李止道)이고 피고는 여든이 된 노파 다물사리(多勿沙里), 그리고 그 재판을 담당한 송관은 김성일 나주 목사로서, 그 문제를 어떻게 판결해 냈는지를 상세하게 들여다 볼 수 있다.

사실 오늘날 법정에서는 판결문에 관한 사실관계를 생략하는 경향도 있고, 판결문도 지극히 짧은 편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그 때는 당사자가 입으로 주장한 내용과 서면으로 제출한 증거들을 모두 날짜별로 수록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만큼 판결문 하나에 소송에 관한 모든 진행 사항들을 담는 게 조선시대 민사소송의 특징이었다는 것이다.

노비 문제가 온 사회를 들썩이게 했던 그 시대에 노비들은 대부분 양반이 되길 바랐을 것이다. 그런데 피고 다물사리는 자신은 양인이 아니라 노비라고 주장한다. 그에 반해 원고 이지도는 피고가 노비가 아니라 양인이라고 반박한다.

대체 그 이유가 뭘까? 이지도는 다물사리가 양인이었는데, 이지도의 아버지 소유였던 노비 윤필과 그녀가 결혼하여 딸 양이를 낳았고, 양이는 노비 구지와 혼인하여 6남매를 낳아 길렀는데, 양이는 본래 자신의 가문 소유이므로 양이가 낳은 자식들 모두가 이지도 가문의 소유라고 주장한 것이다.

그에 비해 피고 다물사리는 자식들이 사노비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자신의 어머니가 성균관 소속의 관노비였다고 주장한다. 어머니가 관노비이면 아버지가 사노비일지라도 자식들은 관노비가 될 수 있었기에, 양이와 그 자식들 모두가 이지도의 노비가 아니라 성균관 소속의 관노비라고 주장한 것이다.

현명하기로 소문난 나주목사 김성일 송관은 원고와 피고의 주장을 들은 뒤 국가의 공적 장부인 호적과 천민명단까지 샅샅이 조사하게 된다. 더욱이 그 고을과 이웃 마을 사람들까지도 낱낱이 불러들여 모든 조사를 한 달 만에 마치는데, 결국 이지도의 승소로 끝이 난다.

송관 김성일은 그 당시 문서를 고치거나 덧씌운 것들은 모두 물 위에 띄워서 알아냈다고 한다. 문서에서 이어붙인 자리에다 물을 적시면 찰기가 생기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에 반해 오래된 문서는 아무리 물을 부어도 찰기가 생기지 않는다고 하니, 그럴 때면 어떠한 것도 캐물을 것 없이 바로 송사가 해결되었다고 한다.

다른 송관 신응시(辛應時, 1532-1585)도 명판결로 유명하다. 그는 아버지의 시주로 자식들이 거지가 되어 사찰을 상대로 낸 소송에 대해 '시주 행위를 무상의 증여가 아니라 복과 논밭을 서로 주고 받기로 한 계약'이라며, 사찰 스님에게 전답을 모두 그 자식들에게 돌려주도록 하여 거지 행세를 면하게 해 주었다고 한다.

조선 시대에 노비 문제를 둘러싼 법정 다툼을 통해 현 세대가 곱씹어 봐야 할 부분이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은 그 시대의 법정에서는 판결문에 그 모든 과정과 내용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기록했다는 점에 있지 않을까 싶다. 그것은 오늘날 검찰의 용산참사 수사기록 과정의 공개 여부를 통해서 곱씹게 되는 부분이다. 그런 점들을 하루 빨리 개선할 때에만 억울한 사람도 없을 것이고, 명송관과 명판결문도 더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나는 노비로소이다 - 소송으로 보는 조선의 법과 사회

임상혁 지음, 너머북스(2010)


#노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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