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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C 일일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
 MBC 일일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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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트콤(sitcom)은 시츄에이션 코메디(situation comedy)의 줄임말이다. 즉 시트콤은 코미디의 한 장르인 셈이다. 그런 까닭에 연말 시상식에서 시트콤은 연기대상이 아닌 연예대상에 속해 있고, <거침없이 하이킥>의 야동순재 이순재는 <무한도전> 멤버들과 함께 2007년 MBC 연예대상 대상을 수상했다.

연말 시상식에서의 분류뿐만 아니라 시트콤에 대한 대중의 인식 역시 '25분짜리 상황극'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드라마, 정극에 비해 가볍고 재미로 일관된, 대본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해내는 배우의 연기력보다는 애드리브와 같은 순발력에 초점을 맞춘, 이 느슨한 희극을 보는 시청자들 역시 시트콤을 드라마의 관점에서 보기보다는 예능의 관점에서 봐왔던 게 사실이고, 또 지금까지 많은 시트콤이 그래왔다.

그러나 김병욱 PD의 시트콤은 달랐다. 그는 시트콤도 희극이 아닌 비극을  그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시트콤에도 충분히 우스꽝스러운 세태를 풍자하고 우울한 현실을 반영할 수 있다고 믿는다. 단순히 25분 동안 웃다 마는 게 아니라, 뭔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줌과 동시에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기는 시트콤. 그의 이런 시트콤은 기존의 수많은 시트콤들과 차별화됐고, 결국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기에 이르렀다.

"세상의 시트콤은 두 가지로 나뉜다. 김병욱의 시트콤과 그렇지 않은 것들로."

숱한 화제 속에 막을 내리는 MBC <지붕 뚫고 하이킥>(이하 <지붕킥>)에도 김병욱 PD의 스타일은 살아있었다. <지붕킥> 안에는 희극과 비극이 공존했고, 경제력의 차이로 발생한 계급 간의 갈등과 청년실업 문제 같은 현실 세계의 문제들이 냉정하게 그려졌다. 그 때문에 <지붕킥>은 사회면 기사의 소재로 종종 쓰이기도 했다.

해리와 신애 내세워 현실 사회의 계급 고착화 인식

 해리는 신애에게 갈비를 건네면서 한 뼘 성장했음을 보인다.
 해리는 신애에게 갈비를 건네면서 한 뼘 성장했음을 보인다.
ⓒ MBC 화면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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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까지 김병욱 PD의 작품들이 주로 가족 내에서의 갈등에 초점을 맞춰 왔다면 <지붕킥>에서는 계급 간의 갈등으로 시선을 옮겼다. 식품업체를 운영하는 성북동 순재(이순재 분)의 집에 세경(신세경 분), 신애(서신애 분) 자매가 더부살이를 하기 시작하면서 <지붕킥>은 양 극단에 서 있는 두 계층의 모습을 그려냈다.

김병욱 PD가 계층 간 갈등의 주인공으로 내세운 건 다름 아닌 해리(진지희 분)와 신애, 두 아역배우들이었다. 해리는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세경과 신애 위에 군림한다. 자신의 오빠조차 누나라고 부르는 세경에게 거침없이 반말과 폭언을 퍼붓는 해리는 이미 알고 있었던 거다. 저들의 계급이 자신보다 낮다는 것을 말이다.

해리는 툭하면 신애를 괴롭히지만 신애는 반발하거나 맞서는 대신 뒤로 한 걸음 물러난다. 해리와 마찬가지로 신애 역시 자신이 해리에게 순종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거다. 김병욱 PD가 해리와 신애를 계급 갈등의 축으로 내세운 이유는 간단하다. 초등학생 어린아이들조차 자신의 계급이 어떠하다는 것을 알고 있을 만큼, 현실 사회의 계급 고착화가 심해졌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리라.

해리의 끝없는 탐욕을 단순히 어린아이의 치기어린 욕심과 질투로 치부할 수 없는 것도 그 때문이다. 값비싼 장난감과 인형, 가방을 가졌어도 신애가 가진 단 하나까지 모조리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직성이 풀리고 자신의 갈비는 절대 남에게 내어주지 않는 해리의 탐욕은 때때로 우리 사회의 가진 자들의 모습에 투영된다.

그리고 김병욱 PD는 이런 해리를 통해 그 끝없는 탐욕이 가져오는 결과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해리는 좋은 장난감을 다 가졌지만 가족 중 아무도 자신과 놀아주지 않아 행복하지 않다. 그녀는 변변찮은 장난감으로 세경과 노는 신애가 부럽고, 그녀가 좋아하는 갈비는 변비의 원인이다. 아무에게도 주지 않으려 하는 갈비 때문에 매일 아침 화장실에서 힘들어하는 해리의 모습은 아이러니 그 자체다.

'88만원 세대'를 대표하는 정음의 험난한 구직활동

 '88만원 세대' 정음의 눈물겨운 아르바이트.
 '88만원 세대' 정음의 눈물겨운 아르바이트.
ⓒ MBC 화면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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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가 어린아이의 시각에서 계급 간의 갈등과 가진 자의 아이러니를 그려냈다면, 정음(황정음 분)은 20대의 시각에서 보다 현실적으로 우리 사회의 '88만원 세대'가 당면한 문제를 묘사한다.

서울대에서 받침 하나가 달라 정말 서운한 '서운대'에 다니는 정음은 자신을 서울대생으로 잘못 알고 과외교사로 채용해준 현경(오현경 분)에게 진실을 말하지 못한다. 서운대생이라는 것이 알려지는 순간 일자리를 잃을 게 뻔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녀는 준혁(윤시윤 분)에게 영어에 대한 흥미를 일깨워주려 노력하는 과외교사였지만 서운대라는 학벌 앞에 노력과 실력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본격적인 구직활동에 나선 정음의 눈물겨운 노력은 많은 시청자들의 가슴을 울렸다. 가는 곳마다 문전박대 당하고, 천신만고 끝에 취직한 회사는 영어 교재를 판매하는 영업을 시키고, 회사에서 요구하는 매출을 달성하지 못하면 심지어 폭력까지 행사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그곳을 쉽게 그만둘 수 없었다. 서운대를 나온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이런 일 뿐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고 지금까지 집에서 지원 받아왔던 것과는 반대로 이제는 자신이 돈을 벌어 집을 도와야하는 형편이 된 정음은 아르바이트에 전념하고, 그런 자신의 모습이 서울대 출신의 의사 남자친구 지훈(최다니엘 분)에게 당당하지 못한 자신이 싫어 결국 이별을 고한다. 사랑하지만 이별을 택하는 정음을 통해 <지붕킥>은 사랑마저 현실의 벽을 넘어서지 못하는 모습을 씁쓸하게 그려냈다.

허를 찌르는 마지막 반전, 배신이 아닌 이유

결말에서도 김병욱 PD는 시청자의 허를 찌르는 반전을 준비했다. 세경과 지훈이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은 것.

19일 방송된 <지붕킥> 마지막회에서는 세경과 신애가 순재의 집을 떠나는 과정이 그려졌다. 지훈은 세경을 자신의 차로 공항에 바래다주고, 쏟아지는 비를 응시하며 세경은 지훈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시간이 잠시 멈췄으면 좋겠다"는 말을 끝으로 화면은 정지하고, 이내 흑백으로 변해갔다.

고향에 내려갔던 정음은 취직이 됐다는 합격 통보 전화에 기뻐 어쩔 줄 모르고, 그 시간 세경과 지훈은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는다. 희극과 비극이 공존하는 김병욱표 시트콤은 마지막까지 그 스타일을 잃지 않았다. 김병욱 PD가 말했던 '뒤늦은 자각'의 대가는 죽음이었고, 그 둘의 시간은 세경의 바람대로 영원히 정지했다.

이러한 장면들이 단순한 세태 풍자와 현실 반영에 그치고, 비극을 위한 개연성 없는 설정에 불과했다면 <지붕킥>은 이처럼 사랑받지 못했을 것이다. <지붕킥>의 작은 세계 속에는 계급 간의 갈등과 88만원 세대의 아픔만 있는 게 아니었다. 그 안에는 늙고 젊음에 구애받지 않는 남녀 간의 사랑이 있었고, 사랑에 아파하고 힘든 현실에 부딪치며 스스로가 독립된 하나의 개체로써 오롯이 일어서는 변화와 성장이 있었다.

인나(유인나 분)의 가수 데뷔와 성공에 광수(이광수 분)는 박수로 그녀를 떠나보내며 아름다운 이별을 택하고, 세경을 짝사랑하던 준혁은 그녀를 떠나보내는 과정에서 한층 성숙해진다. 정음은 따뜻한 지훈에게 기대고 싶지만 그 앞에 당당하게 서기 위해 노력해 결국 취직에 성공하고, 해리는 탐욕의 상징이었던 갈비를 신애에게 나눠주고 아끼던 인형을 선물하며 신애와 한 침대에 누워 잔다.

어딘가 부족했던 <지붕킥>의 등장인물들은 저마다 사랑을 하며 서서히 변화해 나가고 성장하기에 이른다. 그 사랑이 남녀 간의 사랑이든, 친구 간의 사랑이든, 짝사랑이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정음은 정음대로, 준혁은 준혁대로, 해리는 해리대로 사랑을 통해 자신의 지붕을 뚫고 한 뼘 더 자란 모습으로 성장했다. 우리가 <지붕킥>에 환호했던 지난 시간들이 헛되지 않은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지붕뚫고하이킥#황정음#신세경#김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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