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잖아요."
지난 13일, 가수 김범수가 자신이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한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다. 그는 "어렸을 때 그런 걸 가끔씩 즐긴 적이 있다"면서, 밤늦게 골목에서 '괜찮은 처자'가 지나갈 때 뒤에서 속도를 내면서 따라가면 앞에 걷는 여성이 무서워하는 것이 느껴져서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앞선 여성이 어깨를 들썩이면서 무서워하는 모습이 보이면 속도를 점점 더 빨리하다가 달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면 그 여성은 소리를 지르면서 도망치곤 했다고. 이 내용은 녹화방송이었음에도 여과없이 전파를 탔다.
지난 15일께 그의 발언이 누리꾼들 사이에 서서히 퍼지면서 라디오 프로그램의 홈페이지 게시판에 항의가 빗발치자 제작진과 김범수는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올리고 라디오 방송 도중 사과 발언을 했다. 김범수는 자신의 행동을 '어린 시절 철 없을 때 했던 나쁜 기억'으로 규정하고 자신의 발언이 미치는 사회적 파장을 이해하지 못한 데 대해 사과했다.
그러나 청취자들에게 이뤄진 그와 제작진의 '사과'는 분명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초점을 한참 벗어나 있다. 그와 제작진이 가장 먼저 사과하여야 하는 대상은 그가 밤길에 위협했었던 여성들과, 밤길이 얼마나 위험한지 귀가 닳도록 교육받았던 '잠재적 피해자'들이고, 그들이 반성하여야 하는 것은 이들의 고통을 공감하고자 시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로빈 웨스트라는 법학자는 여성의 경험을 언어화하는 것의 어려움에 대해서 이야기한 바 있다. 현실에서 여성과 남성의 경험세계는 매우 다른데 남성의 시각에서 고통을 설명하는 사회에서 여성이 겪는 고통은 '너무 사소하거나(길거리 성희롱) 희화화되거나(폭력적이지 않은 아내강간) 당할 만하다는 이유로(가정폭력)' 문제화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상대가 공감하지 못하는 고통을 언어로써 설명하는 일은 당사자에게는 무척 괴로운 자기비하적 경험이다.
오래 전 <퀸>이라는 드라마에서 A(이나영 분)의 남편은 별 이유 없이 A를 때리곤 했는데, 아마도 A의 직장 동료였던 B(김원희 분)가 이를 알고 분개하는 장면이 있었다. 그녀가 A의 남편을 찾아가는 장면에서, 드라마를 보던 나는 그만 막막해졌다. 아내를 때리는 남자에게 대체 무슨 말로 아내의 고통을 이해시킬 수 있을까. 상처의 아픔? 수치심? 두려움?
그를 찾아간 B는 그에게, 맞는 게 얼마나 모멸적인 일인지 아느냐 물었다. 그것도 남자한테 맞는 여자의 모멸감을 아느냐고. 그녀는 그 순간 아내폭력의 해악 하나를 언어화했다. 그런데 그 표현은 과연 그의 마음을 움직였던가.
김범수의 '장난'이 오랜 시간 공포의 기억으로 남아 밤길을 다시는 홀로 걷지 못했을지도 모르는 피해자들의 고통을 상상조차 하지 못한 채, 이를 과거의 즐거운 경험으로 기억하는 김범수와 그것이 그저 장난이었기 때문에 김범수를 비난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이들 모두가, 나는 두렵다. 피해자는 그들에게 영원한 '타인'이다.
'장난'은 상대방도 유쾌할 수 있을 때 사용할 수 있는 용어다. '장난'이 상대방에게 두려움과 상흔을 남길 때, 그 '장난'을 우리는 폭력이라 부른다. 폭력이 가져오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한 폭력은 얼마든지 증폭될 수 있기에,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회만큼 두려운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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