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친 상상일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 사람 중에 무인도에 표류했을 때 맨 먼저 죽음을 맞게 될 사람은 누구일까. 단언컨대, 입시 공부 외에는 그 어떤 생각과 행동조차 허락되지 않는 학생들이 아닐까 싶다. 그들이 이른 아침부터 밤늦도록 '올인'하고 있는 문제집이란 수능만 끝나면 깨끗하게 잊힐 일회용이자, 수험용일 뿐 그들의 삶을 지탱해 줄 도구가 아닌 까닭이다.
낼모레면 투표권까지 갖게 될 고등학생이지만, 솔직히 말해서, 시험공부 외에 그들이 지금 할 줄 아는 건 거의 없다. 헐거워진 사물함 문 나사못을 드라이버로 조이기만 하면 될 일을 못하겠다며 고쳐달라는 아이, 형광등 하나 갈아 끼우지 못해 발만 동동 구르는 아이, 선풍기 청소하랬더니 날개는커녕 덮개조차 분리하지 못해 쩔쩔 매는 아이, 커튼에 고리가 꽂혀있는지조차 몰라 철침에 찔린 아이 등등, 뭐 하나 마음 놓고 함께 할 수 있는 학급 일이 없다. 드문 경우라고 위안 삼고 있지만, 비질을 처음 해봤다는 아이, 대걸레를 처음 잡아봤다는 경우마저 있으니 더 말해서 무엇하랴.
이런 '허드렛일'들을 꼭 학생들이 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논란은 있을 수 있겠다. 교실 안팎의 청소를 비롯한 일체 시설 정비를 위한 용역을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얘기도 적잖이 들었고, 나름 일리 있다는 생각도 든다. 다만, 그것들이 학교의 교육과정을 통해서 다뤄야할 내용은 분명 아닐지라도, 그들이 살아가면서 수없이 접하고 처리해야 할 일상으로서 어쩌면 수험용 지식보다도 더 중요한 게 아닐는지.
사실 입시를 앞둔 고등학생들에게 그런 것들을 접할 시간조차 사치다. 꿈도 크고 하고 싶은 일도 넘쳐나는 혈기왕성한 나이라지만 변변한 취미도 없고, 내세울 수 있는 특기라고 해봐야 3년간의 '야자(야간자율학습)'를 버텨낸 강인한 체력(?)뿐이다. 더 솔직해지자면, 지금 고등학교의 현실에서는 입시를 위한 공부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용납되지 않는다. 말하자면 공부 외의 시간은 사치를 넘어 죄악의 영역이다.
교사도, 부모도, 그 누구도 그들에게 입시 외에는 그 어떤 대화도 없다. 아예 대놓고 "다른 건 아무것도 신경 쓰지 말고, 오로지 공부만 하라"고 부추긴다. 청소하라, 집안일 도와라, 심부름 하라 등 그 어떤 요구도 안 할 테니 너희는 오직 공부만 하면 된단다. 이것은 이미 아이가 초등학교 때부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온 '학생의 본분'이기도 하다.
학생의 본분에 충실한 아이의 일과 따라가 봤더니...
'학생의 본분'에 충실한 한 아이의 일과를 따라가 봤다. 이는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의 천편일률적인 일상이라고 해도 틀리진 않을 것이다. 현 정부의 '사교육비 절감'이라는 정책적 목표조차 지엽적인 것으로 느껴질 정도로 아이들의 일상은 가엾다. 아니 처절하다.
지각하지 않으려면 늦어도 아침 6시에는 일어나야 한다. 부모님은 새벽부터 일어나 아침을 챙겨주려 하지만, 거르는 게 습관이 된 지 이미 오래다. 중학교 때부터 습관으로 굳어지다보니 되레 아침을 먹으면 오전 내내 불편함을 느낀다. 하긴 매일 겪어야 하는 '등교 전쟁'이 아침을 챙겨 먹을 만큼 녹록지 않다.
6시 40분에는 집에서 나서야 한다. 집이 학교로부터 그리 먼 거리는 아니지만, 만원 버스를 타지 않으려면 일찍 서둘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만차라는 이유로 정류장을 그냥 지나쳐버리는 버스가 많기 때문이다. 이 시간대 버스는 늘 그렇듯 게슴츠레한 눈만 껌벅거리는 무표정한 아이들로 만원이다.
7시 반. 교문엘 들어선다. 봄은 왔지만, 봄을 느낄 수는 없다. 겨울날 아침처럼 새벽 기운이 남아있는 탓이다. 교실에는 이미 급우들 대부분이 와 있다. 그들은 대체 언제 일어난 것일까. 아닌 게 아니라, 지각 단속을 피하려고 등교만 일찍 했지, 어림잡아 절반은 엎드려 있다. 부족한 잠을 보충하려 토막잠을 청하고 있는 것이다.
하루 일과의 시작, 상쾌하고 즐겁게 시작해야 할 1교시는 수업 분위기가 대체로 '다운'돼 있다. 어려운 수업 내용과의 싸움이 아니라, 졸음과의 한판 싸움이 전개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역시 어림잡아 절반은 사경(?)을 헤매고 있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교사들도 1교시 수업을 부담스럽고 힘들어 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아이들의 '상태'는 조금씩 호전된다. 토막잠 덕분인지 4교시 즈음이면 다들 정신이 돌아옴을 느낀다. 점심시간. 하루 중 아이들이 가장 행복해하는 시간이다. 그것은 허기를 채울 수 있어서라기보다는 비로소 딱딱한 의자에서 비교적 긴 시간 동안 해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점심시간 1시간 중에 밥을 먹는 시간은 고작 5분 남짓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뛰어노는, 하루 중 거의 유일한 시간이다.
점심시간 끝종이 울리면 다시 교실로 돌아와 의자에 앉아야 한다. 저녁식사 시간 때까지 꼬박 4시간을 버텨내야 한다. 1교시보다는 덜 하지만, 점심이 소화되고 따사로운 오후 햇볕이 드는 이즈음 다시 졸음과 전쟁은 시작된다. 정규수업은 끝났으나 수업이 모두 끝난 건 아니다. 저녁 식사 시간 전까지 방과후 학교 수업이 이어진다. 저녁 식사 후에도 의자와의 만남은 계속된다. 밤 10시까지 야자가 이어지기 때문이다.
의자에 앉아있는 시간과 비례하는 건 '치질 발병률'
아이들은 하루의 대부분을 학교에서 보낸다지만, 좁은 교실 딱딱한 의자에서 한시도 벗어날 수 없는, 거칠게 말하자면, 사실상 고문이자 감금상태다. 수업과 수업 사이 쉬는 시간이 있다지만, 엎드려 토막잠 자기 바빠, 점심과 저녁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면 서거나 걷는 일조차 드물다. 이런 생활이 수능이 치러지는 날까지 1년 365일 반복된다.
고등학교에 들어와 입시를 위한 일상에 어느새 적응되다보니 야자가 끝나는 밤 10시면 초저녁처럼 느껴지고, 야식을 챙겨먹는 게 습관이 되다보니 아무리 빨라도 자정을 넘겨서야 잠자리에 들게 된다. 원하든 원치 않든 입시를 앞둔 고등학생 모두는 '올빼미족'이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것도 아침과 낮 동안의 잠이 허락되지 않은 강철 체력의 올빼미가 되어야 한다.
아침 6시부터 자정 넘어서까지 '학생의 본분'에 충실한 그의 손에 들려 있는 건 오직 하나 수험용 문제집뿐이다. 숨 막힐 듯한 일상과 종일토록 문제집만 푸는 수업이 과연 교육적으로 바람직한 것인가 생각하는 것조차 사치다. 그런 '쓸데없는' 생각할 시간이 있으면 한 문제라도 더 풀라는 질책을 부모로부터, 교사로부터 수도 없이 들었단다.
결국 그도 그런 생각은 나중에 대학 가서 하기로 했단다. 생각과 말과 행동 모두를 오직 수능 하나에 맞추다보니 외려 마음에 편해지더란다. 그런 '여유' 때문일까. 지금 그의 책상 위와 문제집 곳곳에 자신을 채찍질하는 글귀를 써서 붙여놓았다.
입시 지도 교사들이 수험생들에게 비장한 어투로 건네는 익숙한 금언이다. 군대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 '하면 된다'와 '피할 수 없는 것은 즐겨라'인 것처럼, 고등학교 아이들이 가장 자주 접하는 고전적인 레퍼토리다.
"의자에 앉아있는 시간과 수능 성적은 정확히 비례한다. 지금은 잊어라, 오로지 밝은 미래만 있을 뿐이다."학생으로서 열심히 공부하라는 이 말의 의미에 굳이 태클 걸고 싶진 않지만, 종일토록 의자에 앉아 열심히 문제집만 풀라는 말처럼 들려 불편하다. 경험상 위의 둘은 학생의 집중력에 따라 비례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정확히 비례하는 건 정작 따로 있다. 비아냥처럼 들릴까봐 그에게 일러주진 못했지만, 의자에 앉아있는 시간과 정확히 비례하는 건 '치질 발병률'이다.
학교에서 인정받는 범생이, 학교 밖에선 어떨까
그는 학교에서 인정받는 '범생이'다. 공부 외에는 아무 걱정도 고민도 없고, 학교생활에 불평 한 마디 늘어놓지 않은 채 이른 아침부터 밤늦도록 딱딱한 의자에 앉아 '학생의 본분'을 다 하고 있는 그다. 체력만 버텨준다면 3년 간 열심히 공부해서 틀림없이 좋은 성적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러나 명문대를 가든, 나아가 석박사가 되든, 그는 가엾게도 공부 밖에 모르는 기계일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이 무인도에 표류하면 얼마 못 버틸 것이라는 거라는 거친 상상, '학생의 본분'에 더없이 충실한 그 아이의 일상과 생각으로 인해 해보게 됐다. 이 세대가 이끌어 갈 우리 사회의 미래 모습이 그리 행복할 것 같지 않다.
덧붙이는 글 | 제 홈페이지(http://by0211.x-y.net)에도 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