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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
 안중근 의사
ⓒ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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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은 안중근 의사가 중국 뤼순 감옥에서 순국한 지 100주년 되는 날이다. 하지만 우리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버렸던 안 의사 앞에서 얼굴을 들 수 없다. 안 의사의 영혼이 조국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중국 대륙에서 떠돌고 있으니, 민족의 가슴이 아프다. 순국한 지 100년, 해방된 지 65년이 지났는데도, 우리는 아직도 안 의사의 유해를 찾지 못하고 있다.

안 의사의 마지막 유언은 해방이 되면 고국으로 자신의 유해를 안장해 달라는 것이었다. "내가 죽은 뒤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返葬)해 달라." 죽어서도 해방된 조국의 모습을 보고 싶어 했던 안 의사의 염원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우리 정부는 안 의사 순국 100주년을 맞아 여러 가지 추모행사를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정부가 발표한 추모사업 중 가장 주목받는 것은 한국과 중국, 일본 3국 공동으로 안 의사 유해발굴을 다시 추진한다는 내용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22일 한중일 3국의 합동 유해발굴 사업을 지시하자, 외교통상부와 국가보훈처 등이 발 벗고 나선 것이다. 언론들도 마치 한중일의 합동유해발굴이 조만간 이뤄질 것처럼 떠들썩하다.

하지만 정부의 유해 발굴 사업이 제대로 진행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중요한 대상인 북한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안 의사의 고향은 황해도 해주다. 그곳은 현재 북한 땅이다. 북한을 제외한 한중일 합동 유해발굴 사업은 상주 없이 발굴 작업을 하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국제외교 무대에서 통하기나 할 주장인가. 이는 북한핵 문제를 해결한다면서 북한을 제외하고 한미중일러 5자 회담을 하자는 것과 똑같다. 우리 언론은 왜 이런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가. 몰라서 그러는 것인가, 아니면 알면서도 정부의 북한 왕따 전략에 동참하기로 한 것인가.

'상주' 북한 뺀, '한중일' 안 의사 유해 공동 발굴?

그러나 정작 따돌림을 당하는 것은 남한 정부다. 중국이 남한의 요구에 응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그동안 안 의사 유해 발굴 작업에 대해 중국이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있는 것처럼 발표해왔다. 지난 2008년 3월 안 의사가 순국한 중국 다롄시 뤼순(여순) 감옥 근처에서 진행한 남한만의 '단독' 유해발굴 작업도 중국 정부의 적극적 협조로 이뤄졌다고 밝혔었다.  

나는 지난 2008년 4월 28일부터 30일까지 중국 하얼빈시 초청으로 하얼빈을 방문했다. 안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하얼빈역과 안중근 전시실을 방문하고, 저녁에는 하얼빈시 고위관계자와 만났다. 당시는 남한만의 단독 발굴단이 뤼순 감옥 근처에서 안 의사 유해발굴 작업을 하고 있던 시기여서 자연스럽게 안 의사 유해발굴이 화제로 올랐다.

하얼빈시는 안 의사의 의거 장소로, 안 의사 전시실을 갖고 있어 유해 발굴 작업에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이 고위관계자의 입에서 놀랄만한 이야기가 나왔다.

'안 의사 유해 발굴 문제는 잘 될 것 같으냐'는 질문에 그는 "안 의사 유해발굴은 북한과의 문제도 있어 중국으로서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이 유해의 연고를 주장할 텐데, 남북한이 그런 문제를 먼저 합의를 해야 중국이 적극적으로 협조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하얼빈시의 안 의사 전시실 확충 등에 대해서도 "중국으로서는 일본과의 관계도 고려해야 하는 등 조심스런 문제"라고 말했다. 놀랍도록 솔직한, 하지만 중국 정부의 고민이 담긴 말이 아니었을까.

남북한 공동 아니면 적극 협조할 수 없다는 중국

하얼빈시 고위관계자의 말대로 남한만의 안 의사 유해 발굴 작업은 그해 5월 몇 개의 동물 뼛조각만 발견한 채, 아무런 성과도 없이 중단됐다. 엉뚱한 곳에서 우물을 판 셈이었다. 그때 일은 남한만의 단독 발굴이 얼마나 성급한 일이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에 대해 당시 중국 인민일보사 자매지인 <환구시보>는 "지난 2006년 6월 남북 양측이 공동조사를 거쳐 유해가 뤼순감옥 뒤편의 야산에 묻혀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했지만, 한국과 북한, 중국 등 여러 국가 간 합의가 달성되지 않아 그간 발굴 작업에 진전이 없었다"고 보도했다.

당시 발굴 작업이 남북한과 중국 사이에 완전한 합의에 이르지 않은 상태에서, 남한의 일방적인 추진에 중국과 북한이 마지못해 동의해준 측면이 강했다고도 볼 수 있다. 중국은 남한 정부의 요구에 소극적으로 응했을 뿐이지, 애초부터 남한 단독 발굴에 적극적으로 협조할 생각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중국 정부는 북한과의 합의를 통한 남북한 공동조사가 아니라면, 안 의사 유해 발굴 작업에 적극적으로 협조할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안중근의사 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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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훈처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지난 2008년 3월 12일, 북한에 중국 공동 발굴 조사를 제안하며 17일까지 회신을 요청했다. 중국 현지에서의 공동 발굴 조사라는 대규모 작업에 대해 5일 만에 답장을 달라는 요구였다.

당시 우리 정부는 "북측이 '남측이 단독으로 조사하러 가도 상관하지 않겠다'고 통보해 남측 단독으로 조사단을 파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북한은 당시 공식적인 회신이 아닌 구두로 남한 단독 발굴을 양해한 것으로 밝혀졌다. 북한은 이명박 정부의 대북 강경정책에 대한 반발에서든, 아니면 안 의사 유해 발굴 작업이 졸속으로 추진되는 데 대한 우려에서든 어떻든 공동 발굴조사를 거부했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이미 실패한 단독 발굴 작업을, 그리고 북한과의 합의 없이는 협조하기 어렵다는 중국 정부의 공식입장을 알면서도, 올해 다시 한중일 3국 공동 발굴 사업을 발표하고 나섰다. 하지만 북한 동의 없이도 중국이 안 의사 유해발굴에 적극 협조할 것처럼 발표하는 것은 국민을 또다시 속이는 것이다.

정말 안 의사 유해를 발굴할 생각이라면 정부는 한중일 3국 공동발굴이 아니라, 먼저 남북한 공동발굴을 추진해야 한다. 중국 정부의 협조를 얻으려면, 먼저 북한에 안 의사 유해 공동발굴을 다시 제안해야 할 것이다. 앞서 남북은 지난 2005년 6월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단'을 공동으로 구성해 2007년까지 여러 차례 남북실무접촉을 했으나, 이명박 정부 들어서 완전 중단됐다.

공동유해발굴, 꽉 막힌 남북 관계 뚫어주지 않을까

이처럼 북한을 제외한 한중일 3국의 유해 발굴 사업은 실현 가능성도 없고, 설령 안 의사의 유해를 발굴한다고 하더라도 유해를 둘러싼 남북한의 연고권 논란이 벌어질 것이 뻔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남북한이 공동발굴에 합의하는 절차가 필수적이다.

안 의사는 북한에서 애국열사로 추앙받고 있고, 북한도 70년대부터 안 의사 유해 발굴을 추진했기 때문에 안 의사 유해를 남한에게 양보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최근 북한을 취재하고 온 춘천MBC에 따르면, 안 의사 후손 20여명이 현재 북한에 생존해 있고, 안중근 기념비도 세워져 있고 안 의사 기념주화와 우표도 발행하고 있다고 한다.

안 의사 같은 독립운동가들을 남북한 어느 쪽도 독점해서도 안 되지만, 당연히 그 직계 후손이 살아 있고 그가 태어나 자란 고향이 우선적인 연고권을 가질 수밖에 없다. 충남 예산 출생인 윤봉길 의사나 서울 출생인 이봉창 의사의 연고권을 북한에 양보할 수 있겠는가.

중국 정부의 입장을 알고 있는 우리 정부가 북한을 제외한 채, 엉뚱한 한중일 공동 발굴 사업을 추진하는 이유는 납득하기 어렵다. 통일조국을 원했을 안 의사의 뜻도 남북한 공동발굴일 것이다. 안 의사는 남북 모두에서 독립영웅으로 추앙받으니, 공동 유해 발굴 추진은 현재 꽉 막혀 있는 남북교류의 물꼬를 트고 남북 화해의 징검다리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정부는 중국과 일본의 협조를 얻기 위해서도 우선 남북한 공조부터 해야 한다. 그것이 안 의사가 주창했던 '동양평화론'에도 맞는 정신이다. 남북한이 먼저 손을 잡고, 중국·일본과 평화를 추구하라는 안 의사의 외침이 들리지 않은가.


태그:#안중근, #안중근 유해발굴, #뤼순 감옥, #안중근 순국 100주년, #안중근 후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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