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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오전 9시 한글과컴퓨터 주주총회가 서울 구의동 프라임센터 회의실에서 열렸다.
 26일 오전 9시 한글과컴퓨터 주주총회가 서울 구의동 프라임센터 회의실에서 열렸다.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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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닥 퇴출 위기에 몰린 한글과컴퓨터 주총이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긴 채 끝났다.

26일 오전 9시 한글과컴퓨터(대표 김영익, 아래 한컴) 주주총회가 열린 서울 구의동 프라임센터 회의실에 막 도착했을 때 바깥까지 고성이 새어나왔다. 주총 도중 일부 소액주주가 최근 사태와 관련, 경영진과 최대주주 책임을 추궁한 것이다. 하지만 역대 최대인 주당 200원 배당, 재무제표 승인, 이사 선임 등 주요 의안들은 별다른 이의 없이 통과됐다.

한컴 대주주에 13억 원 현금 배당

결국 한컴 최대주주 셀런에이치는 13억 원에 이르는 현금을 배당받게 됐다. 이에 일부 소액주주가 "최대주주는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배당을 안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이의를 제기했지만 대주주가 법인이어서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회사측 답변만 돌아왔다.

검찰은 지난 11일 김영익 한컴 대표와 형인 김영민 전 셀런 대표 등을 35억 원 횡령과 350억 원 배임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이어 거래소는 12일부터 한컴 주식매매 거래를 중단시키고 상장폐지 실질심사 대상에 포함시킬 것인지를 논의하고 있다.  

횡령과 배임 혐의로 검찰에서 기소한 김영익 한컴 대표
 횡령과 배임 혐의로 검찰에서 기소한 김영익 한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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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총이 끝난 뒤에도 셀런에스엔 주식 매입 문제, 계열사 자금 대여 문제에 대한 질문이 계속 이어졌다. 이에 김영익 대표는 "회사 경영상 대여가 필요한데 대여가 늘어 여러 의심을 받았다"면서 "이제 다 갚았고 46억 원 정도가 남았는데 근시일 내에 다 갚을 것"이라고 밝혔다.

해외부실채권 60억 원을 담보로 받았다는 일부 언론 보도에 대해서도 "언론 보도가 악의적으로 왜곡됐다"며 "해외우량채권을 담보로 받은 것이고 전액 현금으로 회수했다"고 해명했다.

외부감사 결과 '적정' 의견을 낸 안진회계법인 안규만 회계사 역시 "한컴 검찰 조사 때문에 대표와 부대표급이 포함된 리스크 매니지먼트 팀을 가동해 밀도 있게 토의하고 대여금이나 매출금과 관련해서는 거의 전수조사를 했다"면서 "한컴이 현재 일부 대여금이나 관계자 간 내부 거래가 있긴 했지만 재무제표에 나쁜 영향을 끼치거나 주주들에게 손실을 끼친 건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거들었다. 

실제 이날 발표한 회사 재무제표를 보면 지난해 한컴 매출은 486억 원이고 영업이익이 151억 원에 달한다. 2003년 이후 7년 연속 흑자 달성에, 평균 영업이익률도 30%에 이르는 건실한 실적이다.

하지만 대차대조표를 꼼꼼히 뜯어보면 127억 원에 이르는 단기차입금이나 각각 44억, 35억으로 급증한 미수금, 선급금 등이 '합법' 테두리 안의 '머니게임' 의혹을 낳고 있다. 또 지난해 7월 최대주주가 바뀐 뒤에도 옛 모기업 프라임그룹에 사무실 보증금 명목으로 363억 원을 여전히 묶어둔 것도 '무자본 M&A' 의심을 사고 있다.  

주총 도중 한 주주는 프라임그룹 소유 건물 담보를 옮기면서 1순위에서 2순위로 넘어간 걸 거론하며 "100억, 200억 벌면 뭐하나, 지키는 게 중요하지"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소액투자자 "현 경영진 물러나고 건실한 투자자가 인수해야"

최대주주인 셀런에이치 지분 28%와 한컴 자사주 3.2% 정도를 제외하면 한컴 지분의 약 70%는 개인투자자들이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이날 주총엔 소액 주주들에게 주총 참석 안내장을 따로 발송하지 않아 회사에 우호적인 주주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나마 경영진을 상대로 목소리를 높인 소액주주 두셋 가운데 하나가 정지흔(54)씨다.
 
이날 아침 주총 때문에 일부러 대구에서 왔다는 정씨는 "계열사 주식 매입은 이자도 받지 않고 돈을 빌려주는 셈인데, 현 경영진이 한컴을 인수한 목적이 의심스럽다"면서 "금감원에서 최대주주에게 주식 매각 명령을 내려서라도 대기업이나 건실한 투자자가 한컴을 인수했으면 좋겠다"는 개인적 바람을 밝히기도 했다.

실제 한컴 주주게시판에선 일부 소액주주들이 한컴 대표 업무정지 가처분 신청을 추진하기도 했다. 소액주주 40~50명으로부터 가처분 신청에 필요한 지분 2%(약 50만 주)를 모았다고 밝힌 김아무개씨는 25일 전화 통화에서 "현 경영진의 한컴 인수 과정 자체도 문제고 인수한 뒤 계열사 부당 지원은 대표가 엄연히 배임을 한 것으로 인지된다"면서 "이번 주총에서 현 대표이사와 경영진이 해임 조치되지 않는다면 오프라인 소액주주 모임을 열어 구체적으로 대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컴 위기는 국산 SW 위기"... "언제까지 애국심에 호소할 건가" 

한컴의 위기는 곧 국산 소프트웨어의 위기로 여겨지곤 한다. 1980~1990년대 창업한 소프트웨어 1세대 가운데 지금까지 살아남은 건 한글과컴퓨터와 안철수연구소 정도다.

지난 24일 신제품 발표 기자간담회를 연 안철수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한컴 사태를 거론하며 "소프트웨어가 열악한 '껍데기만 IT강국'에서 기술을 가진 IT업체가 자꾸 사라지는 게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였다. 김홍선 안철수연구소 대표 역시 "우리 소프트웨어 패키지 업체도 적은데 이제 우리밖에 안 남은 것 같다"면서 "우리가 중심을 갖고 해야 한다"는 각오를 밝히기도 했다.

앞서 정지흔씨는 "'한글은 곧 문화'라는 생각에 10년 넘게 한컴 주식을 보유했다"면서 "한컴이 없었다면 MS 오피스도 더 비싸지고 한국 소비자들은 봉이 됐을 것"이라며 한컴에 깊은 애정을 나타냈다.

하지만 국산임을 내세워 언제까지 '애국심'에만 호소할 거냐는 비판도 많다. 한컴 오피스2007 정품을 써온 한 IT 벤처기업인은 "고객 사후 지원이 안 돼, 공공기관을 상대로 업무상 쓰는 게 아니라면 솔직히 쓰고 싶지 않다"면서 "내부 경영진 분쟁은 안타깝지만 애국심 마케팅은 그만 하고 제발 돈 내는 만큼 제대로 서비스하라고 요구하고 싶다"고 쓴 소리를 하기도 했다.

지하철 승강장에서 한 승객이 MS 오피스를 겨냥한 '한컴 오피스 2010' 광고를 보고 있다.
 지하철 승강장에서 한 승객이 MS 오피스를 겨냥한 '한컴 오피스 2010' 광고를 보고 있다.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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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빠졌던 한컴은 한때 마이크로소프트 피인수설까지 나왔지만 결국 한글815 배포 등 국민적 관심 덕에 극적으로 회생했다. 그 뒤 한컴 오피스와 씽크프리로 활로를 모색했지만 그때마다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가 발목을 잡았다. 이달 초 한컴 오피스 2010 발표 때도 예외는 아니었고 이제 코스닥 퇴출 위기까지 몰린 상황이다.

한컴 오피스를 주로 공공기관에서 쓰는 걸 감안하면 이미 한컴은 국민 세금을 먹고 산다고 했도 틀린 말이 아니다. 적어도 이런 한컴 경영자라면 계열사를 챙기기에 앞서 국민의 눈을 먼저 의식하는 자세가 필요해 보인다.


태그:#한글과컴퓨터, #한컴오피스, #한컴, #김영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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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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