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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구촌 불끄기(Earth Hour)' 이미지
'지구촌 불끄기(Earth Hour)' 이미지 ⓒ 세계자연보호기금(WWF)

며칠 전부터 트위터에 간간이 보이기 시작한 글이 있었다. 27일, 한 시간은 불을 끄자는 내용이었는데, 정해진 시간에 불을 꺼서 그 시간만이라도 지구를 쉬게 해준다는 의미란다. 하지만 나 하나가 불을 끈다고 해서 그게 큰 의미가 있을까 싶어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고 지나치기만 했다. 그런데 이 행사가 전 세계에서 참여하는 것이고, 서울에 있는 N서울타워의 불도 꺼진다는 기사를 보고 호기심이 생겨 참여하기로 했다.

그리고 27일 저녁이 되자 트위터에 행사 시작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글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두근두근. 그냥 불을 한 시간 동안 끄는 것뿐인데 이상하게 기대가 되었다. 불을 끈 한 시간 동안 무엇을 하며 보낼까, 잠깐 자고 일어나기에도 어중간한 시간인데 등등. 그렇게 여러 생각을 하다가 시간을 놓쳐서 8시 35분에 내 방의 불을 껐다. 어머니께서 거실에서 TV를 보고 계셔서 내 방의 불만 끌 수밖에 없었지만, 불을 끄는 그 순간 '내가 이 지구를 위해 무언가를 하고 있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기분이 좋았다.
 
답답함과 무료함, 오기로 1시간을 버티다(!)

그런데 노트북과 전등을 끄니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양초라도 있으면 촛불을 한두 개 정도 켜서 책이라도 읽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럴 수도 없고. 그래서 휴대전화를 집어들고 트위터에 접속했다. 역시, 나처럼 불을 끄고 트위터에 접속한 사람들의 글이 몇 개 있었다. 트위터에 글이 많이 올라오니까 이걸 보다 보면 한 시간은 금방 지나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10분을 넘기지 못하고 휴대전화를 껐다. 평소에는 트위터에 글이 몇 초마다 한 번씩 올라와서 새로고침을 하느라 애를 먹었는데, 오늘은 왜 이리도 새 글이 올라오지 않는지... 새로고침을 아무리 해도 같은 글만 보일 뿐, 정신없던 트위터도 불끄기 행사에 참여하는 듯 너무 조용했다. 

그래서 잠을 잘까 하고 눈을 감았다. 불을 끄기 전까지만 해도 너무 피곤해서 차라리 조금 잘까 생각했다. 그런데 불을 끄자마자 잠이 깨버렸다. 오히려 정신이 맑아지고, 무슨 일이든 지금 당장 해야 할 것만 같았다. '좀이 쑤신다'라는 말이 어떤 뜻인지 직접 체험했던 순간이었다.

결국 9시쯤 되어서 불을 켰다. 그런데 불을 켜고 나니 이상하게 오기가 생겼다. 30분을 견뎠는데 남은 30분도 못 견딜까. 거기다 트위터에 너무도 당당하게 '저 불 껐어요'라는 글까지 올렸는데, 너무 지겨워서 중간에 그만뒀다고 생각하니 어이없게도 자존심이 상하는 것이었다. 환경을 생각하는 시간에 자존심 타령이라니 뭔가 이상하지만, 그 순간엔 정말 그랬다. 그래서 다시 불을 껐다.

여전히 시간은 아주 천천히 흘렀다. 그나마 트위터에 글이 좀 올라와서 그걸 보면서 버텼다. 9시 25분 정도가 되었을 때는 휴대전화 시계에서 눈을 떼지 못했고, 30분이 되는 그 순간 바로 침대를 박차고 나와 불을 켰다. 1시간의 암흑, 내겐 정말 힘든 시간이었다. 오죽했으면 불을 켜는 그 순간 해방감을 느꼈을까.

시간에 쫓기듯 살아가는 내 자신을 발견하다

그런데 불을 켜는 순간, '왜 내가 이 시간을 이렇게 힘들어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1시간을 다시 돌아봤다. 내 손에선 휴대전화가 떠나지 않았고, 순간순간 찾아오는 무료함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아무 일이라도 해야겠다는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했었다. 갑자기 아무 이유 없이 방을 박차고 나와 세수를 하려고 화장실에 들어가고, 몇 번이나 새로고침을 해도 변화가 없는 트위터 화면을 보면서 계속 새로고침을 하고 있뎐 것도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몰라서 그랬던 것이었다.

그랬다. 나는 항상 시간이 있으면 '무언가를 해야 한다'라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다. 며칠 전 남자친구가 내게 '넌 여유롭게 생각할 줄 모르고 항상 조바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라는 말을 들었지만 별 생각이 없었는데, 내 스스로가 이걸 느끼게 되니 남자친구가 했던 말이 굉장히 크게 다가왔다.

예전에는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도 틈만 나면 도서관 옥상에 올라가 하늘을 보면서 그냥 시간을 보낸 적도 많았는데, 요즘은 하늘을 보기는커녕 잘 나가지 않는 책 진도와 내가 하루 동안 하기로 마음먹은 것들을 떠올리면서 한숨을 쉬는 일이 늘었다. 가끔 책도 보고, 글도 쓰고, 사람들도 만나면서 지내겠다고 했는데, 실상은 얼마나 공부를 하는지 1분 1초까지 초시계로 재면서 조금이라도 시간을 낭비했다고 생각되면 계속 자책하고 있었다.

심지어 일요일은 쉬는 날로 정하고 교회를 다녀온 뒤에는 아무런 계획도 없이 그냥 쉬기로 했는데, 그 때도 언제는 책을 읽어야 하고 언제는 음악을 들어야 한다는 식으로 내 자신을 시간 속에 끊임없이 가두고 있었다. 이렇게 살고 있으니, 오늘의 1시간이 막막했던 건 당연했으리라.

결국 돌아보면, 그 한 시간은 내게 단순히 '지구를 쉬게 해 주자' 그 이상이었던 것 같다. 행사의 취지는 환경에 맞추어져 있었지만, 적어도 이번 행사를 통해 내 자신이 얼마나 조급하게 살아왔는지 알게 되었으니. 불을 끄고 누워 있었을 때만 해도 너무 힘들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이 행사를 참여하지 않았다면 내 삶의 방식을 돌아볼 일도 거의 없었으리라. 오히려 그냥 지치는 줄도 모르고 시간에 쫓기듯 살아가면서 왜 더 열심히 살지 못했냐고 내 자신을 원망하기만 했을 것이다. 이런 면에서 오늘의 이 행사가 오히려 고맙기까지 하다.

2010년의 불끄기 행사는 끝이 났다. 하지만 이 행사를 통해 느낀 것들은 쉽게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내년에도, 그 이후에도, 이 행사가 계속된다면, 또 참여하고 싶다. 이 행사가 그냥 전등을 끄는 그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는 걸 이미 알았으니까.

지구촌 불끄기(Earth Hour)
세계자연보호기금(WWF)이 주관하는 지구촌 불끄기 (Earth Hour) 행사는 '병들어가는 지구를 위한 1시간'이란 의미로 에너지 과소비에 따른 기후 변화의 심각성을 일깨우고 일반인들도 기후변화 문제 해결에 동참할 수 있도록 가정, 사무실, 가로등 등을 1시간 동안 소등하는 행사다. 매년 3월 마지막주 토요일에 뉴질랜드에서 시작하여 순차적으로 전 세계가 정해진 시각에 소등하게 되며, 올해는 2010년 3월 27일 밤 8시 30분부터 9시 30분까지 1시간 동안 진행되었다.

이 행사는 2007년 호주 시드니의 220만 명이 불을 끄는 것으로 그들이 환경 문제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 표현하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복잡한 행동지침이 아닌 스위치를 누르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실천방법에 힘입어 전세계로 퍼져 나갔고, 지난 2009년에는 88개국 4000개의 도시가 이 운동에 참여하였다.

우리나라도 2008년 서울시와 창원시가 처음으로 이 운동에 참여한 이후 여러 도시에서 행사에 참여하고 있다. 올해 역시 서울시가 N서울타워를 소등하는 등 여러 도시에서 이 운동에 동참했다. 하지만 소등을 할 경우 천안함 침몰사건의 구조작업에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는 몇몇 지역에서는 행사가 취소되었다.

#지구촌불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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