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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육타임스(2008년 7월 9일 전면광고) 가수 김장훈이 홍보전문가 서경덕씨와 함께 뉴욕타임즈(NYT)에 자비를 들여 게제한 전면 광고
뉴육타임스(2008년 7월 9일 전면광고)가수 김장훈이 홍보전문가 서경덕씨와 함께 뉴욕타임즈(NYT)에 자비를 들여 게제한 전면 광고 ⓒ .

 2008년 7월, 가수 김장훈이 미국의 대표적 신문 뉴욕타임스에 전면 광고를 게재했다. 사비로 미국민에게 독도를 포함한 동해가 우리영토임을 알리는 광고를 한 것이다. 그의 용기 있는 행동에 기꺼이 박수를 보낸다. 그런데 광고를 읽다가 한 가지 미심쩍음이 일었다. 타국민이 이 광고를 보고, 

 

 '한국 동쪽에 있는 바다(East Sea)? 그래서 어쨌단 말이지? 그리고 한국의 동쪽에 있는 저 바다이름이 무엇이지?'

 

 라는 의문점을 가질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자세히 읽어보면 "지난 2,000여 년 동안 한국과 일본 사이 바다를 'East Sea'라고 불렀다. 독도가 있는 'East Sea'는 한국의 영토다. 일본정부는 이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라는 내용도 있고, 첫 알파벳을 대문자로 표기하여 "East Sea"가 보통명사가 아닌, 고유명사임을, 즉 '동쪽 바다'가 아니고 해역 명(名)이라는 것을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전 세계인을 상대로 East Sea로 표기하여 우리 영토임을 주장하는 것은 왠지 석연찮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다. 'East Sea'란 이름을 보고, 이런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그렇다면, 이름의 정확한 정의는 무엇일까?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 누구나 한 번쯤은 읽어봄 직한 너무나 유명한 김춘수의 시 "꽃"의 부분이다. "하나의 몸짓"처럼 무의미했던 것에 이름을 불러주자 "꽃"처럼 의미 있는 존재가 내게 다가왔다는 것이다. '이름은 곧 존재다.'라고 이 시는 말하고 있다.

 

 굳이 시를 예를 들지 않고, 사전을 찾아봐도 이름과 존재의 긴밀한 관계를 금방 알 수 있다. 국어사전에 이름을 "다른 것과 구별하기 위하여 사물, 단체, 현상 따위에 붙여서 부르는 말"이라고 풀이했다. 이름을 짓는 목적은 '다른 것과 구별하기'에 있다. 그리고 구별은 존재와 일맥상통한다.

 

 그렇다면, 동쪽 바다(East Sea)란 단어만 놓고 보았을 때 이름이 성립될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성립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름의 기능인 "다른 것과 구별하기"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부르는 동쪽 바다는 일본의 서쪽 바다도 되고, 러시아의 남쪽 바다도 되고, 중국의 동쪽 바다도 되기 때문이다. 차라리 DONG HAE 또는 East Sea of Korea라고 하면 다른 것과 구별하기, 즉 이름이 성립된다. 물론 일본에서 주장하는 Sea of Japan도 이름이 성립된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여차여차해서 일본열도에서 일본인을 다 추방하고, 한민족이 삶의 터전을 잡았다고 해도, DONG HAE 또는 Sea of Korea라고는 표기할 수 있어도, 그들도  East Sea라고 표기하기에는 어딘지 모르게 찝찝해 할 것이다. 그것은 인류의 가장 상위법인 상식에 거슬리기 때문이다. 서쪽에 존재하는 바다를 어떻게 동쪽 바다라고 거리낌 없이 말하고 다닐 수 있을까.

 

 '동쪽'이란 단어의 의미는, 바람 같은 것이다. 물 같은 것이다. 구름 같은 것이다. 머무를 수 없는 공간이다. 기상학에서 동풍이라 하면 나를 중심으로 동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말한다. 나란 기준이 없으면 사라지는 것이 동풍이고 남풍이고 서풍이고 북풍이다. 이렇듯 동서남북이란 방위표시 단어는 중심이 없으면, 허황된 '몸짓'에 불과한 것이다. 그 곳에 내가 또는 그 무언가가 보듬을 때 이름을 붙일 수 있고, 비로소 존재하는 것이다.

 

 그럼 동해와 유사한 지리학적 위치에 있는, 즉 여러 나라와 접해있는 세계의 유명한 해역의 이름을 살펴보자. 그들은 '다른 것과 구별하기'를 어떤 방법으로 했을까. 먼저 우리나라와 가장 인접해 있고, 중국 동쪽 태평양 연해인 동중국해(East China Sea)는, 북으로는 제주도와 중국의 양자강 하구를 잇는 선의 아래부터, 남쪽으로는 대만 난세이제도와 동쪽으로는 일본 규슈제도로 둘러싸인 해역이다. 이 해역명의 기준은 중국이므로 동(East)이 명확한 의미를 갖는다. 중국 남쪽과 필리핀 및 인도차이나반도와 보르네오섬으로 둘러싸인 남중국해(South China Sea)도 마찬가지다. 오오츠크해, 베링해, 아라비아해, 카스피해, 발트해, 노르웨이해, 보르네오해, 솔로몬해, 태즈먼해 등 세계 대부분의 해역의 이름엔 기준을 정하는 고유단어를 갖고 있어, '다른 것과 구별하기' 즉 이름으로써 나무랄 데가 없다.

 

 어쩌면 독도를 비롯한 동해의 문제 해결 권한이 일본과 우리나라의 범위를 벗어날 수 있다. 실제로 1954년 일본은 독도영유권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International Court of Justice)를 통해 해결하자고 제의해 왔었다. 이에 우리 정부는 '독도는 분쟁상태에 있지 않으므로 논의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라고 반박하며 제안을 거부했다. 독도를 비롯한 동해의 문제로 일본과 가끔 마찰을 일으키지만, 아직은 국제적 분쟁지역은 아니다. 하지만, 언제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 될지 모른다.

 

 동해문제 관련하여 우선 우리 정부가 총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독도를 비롯한 동해의 분쟁상태 국제적 인정을 막아야 하는 것이다. 일본은 끊임없이 동해를 국제적 분쟁상태로 몰아넣을 궁리를 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이 독단적으로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한다고 해도, 국제사법재판소는 제소 건에 대해 분쟁의 대상이 되느냐를 구체적으로 검토한 후 결정한다. 국제적 분쟁을 제소해도, 그것이 부정되는 사례가 많다는 것이다.

 

 만약에 일본이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면, 국제사법재판소담당자가 맨 처음 보는 단어는 무엇일까? 당연히 East Sea와 Sea of Japan일 것이다. 그리고 East Sea라는 단어를 보고 고개를 갸우뚱할 소지가 없지 않다. 이게 이름인가? 라고. 우리 정부가 대처를 잘해 동해가 분쟁지역이 아니라는 판단을 얻어낸다고 해도, 어쩌면 국제사법재판소에서는 East Sea 명칭을 재고해 보라고 우리 정부에 권고할지도 모른다.

 

 분명히 East Sea는 이름이다. 하지만, 김춘수가 꽃이라 불리기 이전, 즉 존재 이전의 허망한 '하나의 몸짓'에 불과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름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존재하지 않는 것은 선점하는 자의 몫이다. 동해에 붉은 동백꽃처럼 선명한 이름을 지어주고 싶은 이유다.


#동해#이름#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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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청에서 24년간 근무했다. 현대문학 장편소설상과 대한민국 콘텐츠대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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