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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 '벼랑길'을 어떻게 산불끄러 다니라고 임도라는 이름의 길을 놓았을까? 아래쪽에 완만하고 넓은 길이 있는데도 특정 산주의 임야를 관통하도록 길을 내어 조경식재 허가를 내주었다.
저 '벼랑길'을 어떻게 산불끄러 다니라고 임도라는 이름의 길을 놓았을까? 아래쪽에 완만하고 넓은 길이 있는데도 특정 산주의 임야를 관통하도록 길을 내어 조경식재 허가를 내주었다. ⓒ 최성민

전남 곡성군 석곡면 월계리에는 '고장골'이라고 하는 송림과 편백숲 울창한 골짜기가 있다. 50년 이상 된 육송과 편백이 숲을 이루고 사시사철 맑은 물이 흘러내리는, 국내 여느 산골보다 경관이 잘 보존된 곳이다. 그런데 지금 필자를 비롯한 월계리 주민들과 출향민들은 생업을 포기하고 '고장골 지키기'에 나섰다.

사태의 발단은 2008~2009년 동안 고장골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임도가 뚫리면서부터다. 마을 주민들은 조상대대로 전해 내려왔고 후손에게 전해주어야 할 아름다운 고장골이 파괴된 데 분노했다. 평소 주민들은 고장골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식수로 사용하고 있었다. 때문에 임도 건설로 비가 오면 흙탕물을 마시고 흙밥을 지어먹게 됐다며 우려하고 있다. 결국 주민들은 출향민들과 함께 주민대책위원회를 만들어 군청에 나가 시위를 하고 각종 환경단체 등에 호소하고 나섰다.

임도를 뚫은 곡성군의 대처는 주민들을 더욱 자극하고 있다.  곡성군은 주민들에게 생수를 공급하고 건강검진을 실시하는 등 급한 불끄기에 나섰다. 하지만 주민들은 곡성군 산림과가 임도 구간에 있는 임야의 산주인인 특정 조경업체와 주민들의 협상을 주선하는 등 군으로서는 어울리지 않는 업무에 매달리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물 좋고 산 좋은 고장골, 어떻게 망가졌나

 완만하고 폭이 넓어서 주민들이 수십년 동안 유용하게 써온 기존 임도가 있는데도 곡성군은 3억5천만원의 예산을 들여 '벼랑길' 임도를 새로 냈다.
완만하고 폭이 넓어서 주민들이 수십년 동안 유용하게 써온 기존 임도가 있는데도 곡성군은 3억5천만원의 예산을 들여 '벼랑길' 임도를 새로 냈다. ⓒ 최성민

문제의 임도가 뚫린 고장골로 가보자.

곡성군 산림교통과가 임도를 개설한 구간에는 이미 폭 4~5m의 기존 임도가 있다. 30년 전 울창한 숲을 비켜 개천 옆에 낸 완만하고 넓은 임도다. 주민들은 "곡성군이 쓰기에 좋은 기존 임도를 무시하고 그 위쪽 숲 한가운데를 뚫어 경사지를 헐어내는 방법으로 임도를 냈다, 이는 임도개설 준칙에도 맞지 않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주민들은 새로 낸 임도 중간 부분의 경사가 30도 이상 되는 비탈길로 되어 있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임도의 경사도가 15도 이상이면 차가 올라가기 어려워 임도로서 역할을 할 수 없다. 특히 이 길은 위쪽과 90도 각도를 이루고 있어 만에 하나 산불이 나도 진화용 소방차가 다닐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편 새로난 임도가 지나가는 임야는 특정 조경업체의 소유인데 이 업체는 임도가 뚫린 후 조경용 소나무를 식재할 수 있는 허가를 취득했다. 이 조경업체에게 임도가 지나가는 구간의 조경용 소나무를 이식해 가도록 하기 위해 곡성군에서 2억여 원의 예산을 들여 무리하게 임도를 내줬다는 게 일부 주민들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서주섭 곡성군 산림과장은 "임도 개설을 기회로 조경업체에 조경수 식재허가를 내줬다"고 반박했다.

또 주민들은 곡성군이 새 임도 끝부분에 해당 조경업체에게 헛개나무 농장 개발 허가를 내 준 것에 대해서도 문제삼고 있다. 주민들의 식수가 흐르는 곳인데 농약 살포 우려가 있는 헛개농장이 들어서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게다가 문제의 헛개나무 농장으로부터는 새로 뚫린 임도를 놔두고 기존의 임도와 연결되는 300m 가량의 도로를 냈다. 이에 대해 주민들은 새 임도가 무용지물임을 입증해주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새 임도를 낸 목적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새 임도가 '벼랑길'이어서 완만한 기존 임도를 쓰기 위해 불법으로 낸 이음길
새 임도가 '벼랑길'이어서 완만한 기존 임도를 쓰기 위해 불법으로 낸 이음길 ⓒ 최성민

 곳곳에는 산림파괴의 잔해인 소나무 등걸이 나뒹굴고 파내가기 위한 자연석도 쌓여있다.
곳곳에는 산림파괴의 잔해인 소나무 등걸이 나뒹굴고 파내가기 위한 자연석도 쌓여있다. ⓒ 최성민

이러한 주민들의 지적에 대해 곡성군은 별 문제 없다는 입장이다. 군은 "새로운 임도 건설이 당초 산불 끄기와 산림 경영을 위한 5개년 계획에 포함되어 있었"으며 새 임도를 낸 것에 대해서는 기존 임도가 효용성이 적어서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새 임도가 개설 기준에 맞지 않다는 것과, 헛개나무 농장이 낸 불법 이음도로에 대해서는 '불법'은 인정하나 그 도로를 낸 이유 등에 대해서는 별 다른 해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이에 주민들은 오랜 세월 아무 탈 없이 잘 유지돼 온 숲을 뚫어 임도를 놓는 이른바 '5개년 계획'이 과연 필요한 것이냐는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멀쩡한 소나무 옮겨심는 게 산림정책인가요

 곡성군의 또 다른 산림파괴 현장인 석곡면 쪽박골. 소나무 파내기에 이어 소나무 이식에 필요한 마사토를 퍼가기 위해 1만평 안팎의 산 전체를 파내버렸다. 모양이 좋은 자연석은 누군가 가져가기 위해 따로 추려 놓았다. 토사가 흘러내리는 곳에는 목백일홍나무를 심었다.
곡성군의 또 다른 산림파괴 현장인 석곡면 쪽박골. 소나무 파내기에 이어 소나무 이식에 필요한 마사토를 퍼가기 위해 1만평 안팎의 산 전체를 파내버렸다. 모양이 좋은 자연석은 누군가 가져가기 위해 따로 추려 놓았다. 토사가 흘러내리는 곳에는 목백일홍나무를 심었다. ⓒ 최성민

이와 함께 주민들은 곡성군의 산림정책 문제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라고 지적하고 있다.

곡성군은 지난 지난 2007년부터 예산 10억 원을 들여 군내 육송 소나무 상당량을 파내 곡성 읍내 길가에 심어왔다. 곡성군은 산림 수종갱신과 읍내 조경을 위한 조치라고 밝혔다. 그 결과 "10억 원이라는 적은 돈으로 곡성 읍내를 확 바꿔놨다"는 게 곡성군의 주장이다. 하지만 주민들은 "눈만 뜨면 소나무가 보이는 곡성에서 굳이 예산을 투입해 좋은 소나무숲을 훼손하면서까지 소나무를 옮겨 심을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하고 있다.

또 곡성군은 수종갱신을 위해 일부 산지의 소나무를 파내고 목백일홍나무를 심었다고 밝혔다. 주민들은 이 같은 조치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목백일홍나무는 목재나 약재, 유실수로 쓸 수 있는 나무가 아니기 때문에 수종갱신 수목으로 적합하지 않으며, 곡성 기후와 토질에 잘 적응하지도 못하는 수종이라는 것이다.

 표시를 해놓고 채 파내지 못한 소나무들도 숱하게 보인다.
표시를 해놓고 채 파내지 못한 소나무들도 숱하게 보인다. ⓒ 최성민

 임도 들머리는 무슨 이유인지 사람들과 차량 통행을 돌로 막아 놓았다.
임도 들머리는 무슨 이유인지 사람들과 차량 통행을 돌로 막아 놓았다. ⓒ 최성민

월계리 주민들이 이같은 문제를 언론사나 사회단체에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쉽지가 않다. 주민들은 군 행정을 감시 비판하는 제대로된 언론이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얼마전 한 지방 방송사에서 취재를 해갔지만 전파를 타지는 못했다. "흙탕물의 근거가 없다"는 해당 취재기자의 설명을 주민들은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 산림파괴가 문제의 본질로서, 기자가 왔을 때는 맑은 날씨였고 산림파괴로 인한 흙탕물은 비가 올 때 생기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곡성 월계리 산림파괴 사태는 비단 곡성군만의 문제는 아니다. 곡성군은 경북 봉화군 등 다른 지자체에서도 곡성군의 소나무 이식 사업을 벤치마킹해 갔다고 밝히고 있다. 따라서 산지가 많은 다른 지자체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들다.

결국 주민들은 고장골을 지켜내기 위해 스스로 나섰다. '곡성군정 감시 주민모임'을 결성하기로 한 것. 주민들은 곡성군정을 감시하고 잘못된 점 등을 여론화하는 것뿐만 아니라 토론회 개최 등을 계획하고 있다. 자연을 지키기 위한 곡성 월계리 주민들의 행동이 어떤 성과를 낳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곡성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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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창간발의인, 문화부 기자, 여론매체부장, 논설위원 역임. 곡성 산절로야생다원 대표. (사)남도정통제다다도보존연구소 소장. 철학박사(서울대 교육학과, 성균관대 대학원 동양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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