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3월 15일, 마산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올해는 1960년 마산 시민들이 독재정권의 부정선거에 항의하여 떨쳐 일어났던 '3·15의거' 5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민주화운동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3·15의거가 50년 만에 국가기념일로 제정된 뜻깊은 해이기도 합니다.
'3·15의거 5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마산MBC에서는 2년여의 작업 끝에 마산 3·15의거를 직접 조명한 특집 드라마 <누나의 3월>을 제작했습니다. 마산MBC는 이 드라마를 지난 3월 26일 오후 9시 55분부터 140분간 마산경남 지역 일원에서 2부작으로 연속 방영했습니다.
한편, 지역 방송에 앞서 3월 10일에는 국회 시사회가 열렸고, 25일에는 마산MBC 홀에서 3·15의거 기념사업회 회원들과 유가족, 그리고 언론사 기자들과 블로거들이 참석한 가운데 지역 시사회가 열렸습니다. 저는 3월 25일 마산MBC홀에서 개최된 지역 시사회에서 대형스크린을 통해 <누나의 3월>을 관람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승만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4·19는 알지만 3·15는 잘 모릅니다. 어쩌면 3·15는 한반도 남쪽 자그마한 도시에서 일어났고, 4·19는 명문대학생들이 주동하였을 뿐만 아니라 서울에서 일어났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마산에서 태어나 마산에서 학생운동에 참가하며 학창시절을 보낸 저는 3·15의거를 자랑스런 민주화운동의 역사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혈기 왕성하던 대학시절엔 학교 안팎에서 민주화 시위가 있을 때마다 '3·15의거'와 '10·18 부마민주항쟁'의 후예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1960년 3월, 이승만 독재정권 무너뜨린 '마산'
사람들은 '3·15의거'하면 가장 먼저 이마에 최루탄이 박힌 채 마산 앞바다에 시신으로 떠 오른 김주열 열사를 떠올립니다. 저 역시 다르지 않았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3·15 역시 부정선거에 맞선 시위, 그리고 시위 도중 행방불명된 김주열 열사의 시신이 마산 앞바다에 떠오르면서 이승만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4·19가 시작되었다는 정도입니다.
그러나, 드라마 <누나의 3월>의 주인공은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는 '김주열 열사'가 아닙니다. <누나의 3월>은 소녀가장인 다방 종업원 허양미(가상인물)가 3·15의거에 참여한 동생 양철과 그 친구들, 그리고 실제 인물인 민주당원 이한수, 구두닦이 오성원, 김주열 열사의 어머니 권찬주 여사 등을 만나면서 권력에 굴종하던 삶을 버리고 불의와 독재에 당당하게 항거하며 민주주의를 깨닫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동생이 시위에 참가하는 것을 가로막던 누나가 시위 도중 경찰에 체포된 동생을 석방시키기 위하여, 일제 시대 친일 형사로 악명이 높았던 박종표(아라이 겐베이)에게 몸을 빼앗기는 가슴 아픈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연약하고 무기력해 보이던 주인공 '누나'가 구두닦이 오성원과 그 친구들, 연인이자 민주당원 이한수 그리고 행방불명된 아들을 찾아나선 김주열 열사 어머니 권찬주 여사의 당당한 모습을 본 뒤, 부패한 권력·불의와 맞서 싸우는 삶을 선택하는 과정을 가슴 뭉클하게 보여줍니다.
드라마는 1960년 3월 15일부터 4·19일까지, 실제 3·15의거 당시의 생생한 현장을 영상을 통해 그려내고 있습니다. 드라마를 보면서 대학시절 이후 지금까지 늘 3·15와 10·18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마산에서 살아온 제가 사실은 '3·15의거'의 실상을 잘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드라마는 시작되고 난 후 단 몇 분 만에 마치 타임머신을 태운 듯이 관객 모두를 1960년 3월 15일, 그 역사의 현장으로 이동시켰습니다. 함께 시사회에 참여하였던 블로거 '파비'는 "카메라가 스르르 돌아가면서 비치는 마산극장, 시가지, 구두닦이들을 보면서 반가움에 가슴이 두근거렸다"고 했습니다.
블로그 '파비의 하이테레비'를 운영하는 파비는 드라마 본 이야기를 주로 포스팅 하는 파워블로그입니다. 그는 아울러 자신이 경상도 사람이면서 늘 듣는 경상도 사투리가 "너무나 사실적이고 정겨운" 탓에 (드라마를 보면서)웃음 짓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너무 감동적인 영상과 재미 덕분에 2시간 20분 내내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그는 정상급 배우들이 출연하여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 <화려한 휴가>보다 훨씬 재미있고 감동적이었다며 "영화보다 재미있는 드라마"라고 평가했습니다.
영화보다 재미있는 '드라마' <누나의 3월>
드라마 <누나의 3월>은... |
기획기간 2년에 제작비 7억 원이 투입된 <누나의 3월>은 <한지붕 세가족>, <서울의 달>, <서울뚝배기> 등을 집필한 김운경 작가가 극본을 썼고, 마산MBC 전우석·허성진 PD가 연출을 맡았습니다.
아울러 2009 KBS 연기 대상 남자 최우수 연기상을 수상한 배우 손현주가 친일 헌병 출신 형사 역을, 영화와 뮤지컬 배우인 김지현이 허양미 역을 그리고 배우 오지혜가 김주열 열사의 어머니인 권찬주 역을 맡아 열연하였습니다. 이밖에도 정찬, 김애경, 이주실 등의 연기자들이 출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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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비는 <누나의 3월>에서 가장 큰 불만은, 연기력 뛰어난 배우 손현주가 일제시대 부산에서 독립운동가를 때려잡던 친일 형사이자, 3·15 당시 발포를 명령한 악질 형사 박종표 역을 맡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박종표(아라이 겐베이)로 분한 배우 손현주가 너무 멋있게 나온 것이 불만이라고 하더군요.
시사회에 함께 참여했던 많은 사람들이 이 드라마와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 <화려한 휴가>를 비교했습니다. "제작비 7억 원으로 만든 드라마지만 영화 <화려한 휴가>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후한 평가가 많았습니다.
아울러 이미 3·15에 관하여 어느 정도 알고 있었던 시사회 참석자들이지만 "1960년 3월에 마산에서 저런 굉장한 사건이 있었다는 것을 화면으로 생생하게 재연한 것을 보면서 가슴 뜨거운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누나의 3월>은 다큐 같은 드라마입니다. 물론 드라마에 나오는 모든 내용이 사실만을 다루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1960년 3월 15일부터 4월 11일까지 마산에서 일어난 역사의 현장을 사실감 있게 다루기 위하여 노력한 드라마입니다.
드라마 마지막 장면은 마치 압축된 다큐멘터리처럼 3·15 의거에 참여했던 민주 열사들과 반동의 삶을 살았던 부패한 경찰, 관리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저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사람은 <누나의 3월> 주인공 '허양미'와 김주열 열사의 어머니 '권찬주'(오지혜 분) 여사입니다. "짖지 않는 개는 아무도 돌아보지도 않는다"는 대사와 자식의 생사를 확인하기 위하여 권력의 하수인들에게 당당하게 맞서 싸우는 모습이 긴 여운으로 남습니다.
"짖지 않는 개는 아무도 돌아보지도 않는다"
아울러 "세상은 우리가 바꿀 수 없기 때문에 세상에 맞춰 살아야 한다"던 누나 허양미가 '가마떼기' 취급을 거부하고 부정부패한 권력에 당차게 맞서는 사람으로 변하는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러나, 1960년 3·15의거가 일어났던 마산은 1979년 10·18부마항쟁 그리고 전두환 독재정권에 맞서 싸우던 1987년 6월 항쟁에 이르기까지 대표적인 야당 도시로 명성을 이어왔지만 50년이 지난 지금은 보수정당의 공천만 받으면 '막대기'를 꽂아도 당선되는 지역이 되어버렸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시사회에 함께 참여했던 블로거 '달그리메'는 자신의 블로그에 "학생들이 3·15의거의 주역처럼은 아니지만 선거에 조금만 더 관심을 가진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겠지요"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했더군요.
인권과 민주주의의 역사를 거꾸로 되돌리고 있는 MB 정권을 심판하기 위한 6·2 지방 선거를 앞두고 있어 선거를 통해 민주주의를 회복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의미있는 드라마입니다. 시위에 참여한 학생들을 이끌던 여리고 당찬 여학생(마산제일여고 총학생회장 노원자)의 모습과 거리에 넘쳐나는 학생 시위대의 흐릿한 흑백 화면이 오랫동안 여운으로 남아있습니다.
50년 만에 3·15의거를 재조명하는 <누나의 3월>은 4월 18일(일) 밤 10시 45분부터 80분
간 MBC를 통해 전국에 방송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제 블로그에도 포스팅 할 예정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