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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최고'라는 고등학교에서 '최대' 불법찬조금이 발각돼 '최다' 교사들이 징계를 받아야 하는, '최초'의 사태가 발생했다.

 

최근 들어 연일 터져 나오는 교육비리로 교육계가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대원외고가 3년간 21억여 원의 불법찬조금을 학부모들로부터 거둬들인 것으로 드러나 교육계가 발칵 뒤집혔다. 대원외고의 불법찬조금 모금 논란은 대원외고 학부모로부터 제보를 받은 전교조가 이를 폭로했고, 서울시교육청(교육감 권한대행 이성희)이 특별감사를 벌이면서 그 모습이 드러났다.

 

특별감사를 벌인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2일, "대원외고가 2007년부터 2009년까지 3년간 총 21억2800만 원의 불법찬조금을 받아 사용했다"고 밝혔다. 서울시교육청은 교장과 교감, 1천만 원 이상 받은 교사 5명, 행정실장 등은 중징계, 3백만 원 이상 받은 교사 30명은 경징계, 그리고 300만 원 이하 금액을 받은 교직원에 대해서는 주의·경고를 요구하고, 이사장에겐 법인 대표의 책임을 물어 해임을 요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서울시교육청은 "앞으로 불법찬조금에 대해 계속적으로 특별점검 등을 실시하고 학교현장에서 이러한 일이 발생되지 않도록 예방에 철저를 기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울시교육청의 이런 선언에도 '불안'한 마음과 의구심은 쉽게 가시질 않는다. 대원학원은 대원외고와 대원중, 대원고, 대원여고 등을 운영하는 학교법인이다. 대원외고라는 특목고 외에 2008년부터 국제중(서울에 2개밖에 없음)인 대원중을 인가받아 운영하고 있다. 문제는, 대원학원이 불법찬조금으로 적발된 게 처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대원학원 불법찬조금, 이번이 처음 아니다

 

지난 2006년 서울시교육청 '감사결과 처분서'에 의하면 대원외고는 2004년부터 2006년까지 청소용역비 명목으로 총 8835만7930원의 불법찬조금을 받아서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초중등교육법'과 '서울특별시학교발전기금의조성운영및회계관리유령', '사립학교법'에 의하면 청소용역비는 학부모 찬조금이 아니라 학교회계에서 지급돼야 한다. 따라서 청소용역비 명목으로 찬조금을 받는 것 자체가 불법이다.

 

그때도 학교 측은 학부모들이 자발적으로 찬조금을 냈다고 주장했고, 서울시교육청은 경징계와 행정처분 요구만 하고 넘어갔다. 당시 '청소용역비가 이 정도라면, 다른 불법찬조금은 훨씬 더 많았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아무 조치가 없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대원외고뿐만 아니라 대원학원 산하 거의 모든 학교에서 불법찬조금을 걷어서 사용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대원중의 국제중 설립이 한창 추진되고 있던 지난 2008년 10월 24일, <한겨레신문>은 학부모 제보를 받아 '"대원중, 해마다 수천만 원씩 불법 찬조금"'이란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당시 이 학부모가 제보한 자료에는 통장 계좌와 사용내역, 영수증까지 첨부되어 있었다. 학년 회장은 100만 원, 부회장은 70만 원, 일반회원은 50만 원 등 금액까지 할당돼 있었으며 월마다 특별회비를 걷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었다. 당시 제보를 한 학부모는 이렇게 한해 학년 당 1000만 원~1300만 원으로 3개 학년을 합하면 3000만 원이 넘는다고 폭로했다.

 

그런데 당시 김아무개 교장은 "일반 중학교에서 그런 일이 가당키나 하냐"며 "학부모들이 한 일에 대해 알지도 못하고,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사실을 확인해 볼 필요도 없다"고 일축했다. 

 

불법, 불법, 불법으로 얼룩진 대원학원

 

이것이 끝이 아니다. 대원고에 대한 2006년 서울시교육청 감사처분서를 보면, 대원고는 2002년부터 2006년까지 학교발전기금회계를 학교운영위원장이 아닌 대원고등학교 명의 의 통장으로 (학교행정실장 사인으로 등록해) 사용하고 있음을 지적받았다. 정확한 금액과 조성 방법 등에 관한 것이 밝혀지지 않아 파악할 수 없지만, 이 자체가 불법이다.

 

이런 상황으로 볼 때 최근 학부모 제보로 밝혀진 대원외고의 21억 원 불법찬조금은 새삼스러울 게 없다. 이전에도 있었던 불법을 서울시교육청이 눈감아 준 것이거나, 솜방망이 처분을 함으로써 규모가 더 커지고, 수법도 대범해진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서울시교육청이 대원외고의 간을 키운 것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는 이유다.

 

지난 2008년 12월 참교육학부모회, 전교조, 대원중주민대책위 등은 대원외고 교장과 대원중 교장 등을 횡령·배임 혐의로 고발하고, 이들 학교의 불법을 눈감아준 혐의가 있는 당시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을 직무유기로 검찰에 수사의뢰했다.

 

이 사건은 종로경찰서 지능범죄팀으로 배당되어 진정인 조사가 진행됐다. 당시 수사 담당관은 "수사 대상자가 많고 학교라는 특수성이 있어서 시간이 걸릴 수도 있으니 조금만 기다리면 연락이 갈 것"이라며 "학교측에서 증거를 순순히 내놓을 리는 없고 그렇다고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하기도 부담되기 때문에 수사가 쉽지 않을 수 있다"고 밝혔다.

 

당시 수사의뢰자 대표로 진정인 조사를 받았던 조연희 사학개혁국민운동본부 집행위원장은 "이후 검찰과 경찰은 아무런 연락이 없었고 지금껏 수사를 어떻게 진행했는지 통보조차 없었다"며 "불법찬조금과 횡령 혐의 등을 제대로 수사도 안 하고 자체 종결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학교장이 학부모들에게 불법으로 찬조금을 받는 것 자체가 '형법 제355조' 내지 '356조'의 (업무상) 배임 또는 횡령에 해당할 수 있다. 그러나 1년 반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건이 어떻게 처리됐는지 알 수 없다. 그때 검경이 제대로 수사만 했어도 바로 드러날 일이었고, 대원외고는 불법찬조금 모금을 중단했을 것이다.

 

'계좌추적' 할 수 없다며 발 빼는 서울시교육청

 

최근 드러난 21억여 원이라는 사상 최대의 불법찬조금에 대해 서울시교육청은 비리를 저지른 이사장과 교장 등에 해임과 중징계를 내렸다며 강력하게 처분한 것처럼 밝히고 있지만 이는 진실과 거리가 있다.

 

먼저, 이 모든 것에 대한 최고 책임을 물어 이사장에게 해임을 '요구'한 것은 사실상 눈속임에 다름없다. 서울시교육청은 현행 사립학교법 제20조의2에 의해 직접 임원 취임 승인 취소를 내리면 된다. 하지만 서울시교육청은 이사장을 해임할 것을 이사회에 요구했다. 이를 이행하려면 이사회를 열어 이사장 해임 건을 논의해야 하는데, 이는 상식적으로 봐도 이해가 가지 않는 그림이다. 이사장이 참여하는 이사회에서 이사장 해임을 논하라는 것이 말이 되는 것인가.

 

특히 교육청은 횡령 부분에서 이사장에 대한 명백한 봐주기를 한 것으로 보인다. 학부모들이 모금한 21억여 원에는 학교발전기금 1억9200만 원도 포함돼 있는데, 이 중 1억5000만 원은 임의로 법인회계로 처리하거나 회계 자체에 편입하지 않았다. 서울시교육청은 이 1억5000만 원을 학부모에게 돌려주라고 지시했지만 이는 명백한 봐주기이다.

 

초중등교육법 제32조와 시행령 제64조는 학교발전기금을 함부로 법인회계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고, 사립학교법 제29조는 학교회계에 속하는 회계를 법인회계로 전용하는 것 자체를 횡령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이는 형법 제355조 내지 356조의 (업무상) 횡령에도 해당할 것이다.

 

이미 갚았거나 갚으려고 했더라도 범의(犯意)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대법원 판례로 명확하다. 그런데 이런 명백한 횡령에도 서울시교육청은 이를 그냥 학부모들에게 돌려주기만 하면 처벌하지 않겠다고 한다.

 

 

이사장뿐 아니라 학교장과 교감, 행정실장 등에 대해서 형사고발하지 않은 것 역시 봐주기 감사와 직무유기라는 비난을 면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형사소송법 제234조(고발) "②공무원은 그 직무를 행함에 있어 범죄가 있다고 사료하는 때에는 고발하여야 한다"와 국무총리훈령 '공무원의 직무관련 범죄고발 규정', '교육과학기술부 공무원의 직무관련 범죄고발지침', '서울특별시교육감 소속 공무원의 직무관련 범죄고발 규정'은 200만 원 이상 횡령, 뇌물수수, 유용, 유사한 범죄 혐의 교원을 반드시 고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즉, 공무원의 금전 관련 비리 고발 기준이 200만 원이라는 것인데 서울시교육청은 최대 21억 원, 개인별로는 수천, 수백만 원을 받은 이사장, 교장, 교감, 교사 등을 단 한 명도 형사고발하지 않았다. 서울시교육청은 "계좌를 추적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이 없기 때문에 학교 측에서 협조를 거부하면 사실관계를 확인할 길이 없다"며 법적 한계 탓으로 돌렸다. 서울시교육청이 감사를 통해 밝힐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수사기관에 넘겨야 한다. 하지만 서울시교육청은 이 부분을 외면하고 말았다.

 

'부패척결' 외치던 서울시교육청은 어디 있나

 

얼마 전 교육과학기술부(이하 교과부)에서 감사 담당관으로 검사 출신을 임명하고, 명백한 증거가 없더라도 고발하겠다고 밝힌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런데 서울시교육청은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단 한 명도 형사고발하지 않았다.

 

서울시교육청이 이번 '불법찬조금'에 연루된 교장과 교감, 교사들에게 내린 징계도 '기준'에 맞지 않는다. 교과부와 서울시교육청이 정한 '교육공무원 금품․향응 수수 관련 징계 처분 기준'(2007년 10월 기준)에 의하면, 1000만 원 이상이면 무조건 '파면', 300만 원 이상은 '정직' 이상 중징계, 10만 원 이상을 받은 교원은 '경징계' 대상이다. 만약 학교가 먼저 요구한 것이었을 땐 100만 원 이상이면 중징계, 10만 원 이하라도 견책 이상 징계를 받도록 돼 있다. 그런데 서울시교육청은 대원외고 감사에서 300만 원 이상은 경징계, 그 이하는 징계도 하지 않고 주의·경고만 하도록 했다.

 

서울시교육청은 2007년까지 3년 연속 부패지수 1위, 청렴도 꼴찌를 기록해 전국적인 망신을 샀다. 이에 2007년부터 '서울 맑은 교육 추진 계획'이라는 이름으로 부패 척결을 강조하면서 '불법찬조금 근절'을 외쳤다. 2008년에는 이를 더욱 강화시켜 발표했으며 2009년 3월에는 불법찬조금 관련 비위에 대한 인사상 불이익을 강화하겠는 내용의 '2009 반부패·청렴정책 추진계획' 공문을 각 학교에 내려 보냈다. 서울시교육청이 입으로는 '부패척결', '불법찬조금 근절'을 외치는데 청렴도가 바닥인 이유를 이번 대원외고 감사 결과가 잘 보여주고 있다.

 

교사들의 시국선언에 대해서는 전교조 지도부들을 전원 형사고발하고, 파면·해임 등 징계 양정까지 구체적으로 정해서 내려 보낸 당사자인 이성희 현 서울시교육감 권한대행. 그런데 그는 대원외고에 대해서는 21억여 원 불법찬조금과 이사장, 교장 등의 수억 횡령, 수십에서 수천만 원의 금품수수 혐의에 대해서는 법 규정을 어기고 단 한명도 고발하지 않았다.

 

대원외고를 비롯한 대원학원의 불법찬조금 비리가 계속 이어지는 이유는 바로 이런 서울시교육청의 봐주기 감사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이번 대원외고의 21억여 원이라는 사상 최대 불법찬조금 사태는 서울시교육청의 봐주기 감사와 검경의 부실수사, 간 큰 대원외고의 범죄 불감증이 빚은 합작품이자 예고된 사태다. 대원외고는 현재 서울대 합격자수뿐 아니라 법관 임용자와 검사 임용자수, 사법고시 합격자 수 등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있다. 그만큼 사회적 영향력이 막강해 졌다는 것이다.

 

대원외고의 불법찬조금 문제를 처음 제기한 교육시민단체들은 서울시교육청의 감사 결과에 대해 수사기관에 고발할 예정이라고 한다. 서울시교육청이 하지 못한 대원외고 비리 척결을 수사기관은 제대로 할 수 있을까. 


태그:#대원외고, #서울교육청, #불법찬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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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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