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헤이리 9번 게이트로 들어오자마자 좌회전을 해서 반비알진 길을 50m쯤 오르면 산의 능선과 같은 각도로 경사진 지붕 실루엣을 가진 '하늘틈'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 집의 주인은 배재대학에서 건축을 가르치는 이정규 교수입니다. 하늘틈은 이교수님이 설계했고, 그 맨 아래층을 사진을 전공한 첫째따님을 위해 사진 스튜디오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을 염두에 둔 공간을 할애했습니다. 하지만 따님은 헤이리를 떠나있으므로 그 공간은 그간 이 교수님의 의도대로 활용되지 못했습니다.

 

어제(4월3일) 하늘틈 옆집, 리오갤러리에 다녀오는 길에 그 공간에 'Han.Gallery'라는 간판이 걸린 것을 보았습니다.

 

 

호기심 어린 마음을 삭힐 수가 없었습니다. 마침 주저하는 저를 안에서 지켜보고 계시던 분이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전 선생님을 잘 압니다."

 

송구스럽게도 저의 우둔한 뇌는 전혀 데이터를 불러오지 못했습니다.

 

"선생님의 부인도 알고 있어요."

 

기억세포가 전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나마 곤궁에서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는 길은 솔직해지는 것입니다.

 

"죄송하지만 전……."

 

저의 항복을 받고서야 그분은 저와의 인연 몇 가지를 들려주셨습니다.

 

"2년전에 미술사 강의를 함께 들었습니다. 사모님도 함께요. 그리고 세계민속악기박물관에서 얼후 공연을 했었고 그 모습이 선생님께 찍혀서 2009년 5월호 월간미술에 실리기도 했습니다. 한태경입니다."

 

그 외에도 두어 가지 더 인연이 있었음에도 제가 기억하지 못한 송구함을 면피하기위해 한태경 대표님께 다른 질문들을 드렸습니다.

 

 

이안수 | 언제 오픈 하셨나요?

한태경 | 20100210입니다.

이안수 | 갤러리외의 기능도 염두에 두신 것 같아요?

한태경 | 갤러리 속에 이야기가 있는 공간을 염두에 두었습니다. 갤러리의 벽에 걸린 각각의 그림들은 작가의 상상과 사고에 따라 작가의 손으로 작업된 결과물이지요. 하지만 이것이 다른 감상자를 만나면 각기 다른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그림이 각기 다른 이야기를 걸어오게 되고 감상자는 그 그림의 이야기에 답하게 되지요. 그림이 그림만으로 존재할 때는 단지 어떤 정보를 담고 있는 데이터에 불과하지만 감상자를 만나게 됨으로써 말을 하게 되고 감상자는 그 그림의 청자聽者가 되고 또다시 화자話者가 되는 것입니다. 이 공간에서는 각각의 데이터가 상호반응해서 새로운 이야기가 되는 스토리텔링storytelling공간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그 이야기들 속에서 커피를 마실 수도 있습니다.

 

이안수 | 한 공간내에 마치 2개의 공간처럼 전혀 다른 분위기로 구별되어있습니다.

한태경 | 흑과 백을 병치시켰습니다. 세상에는 양면이 존재합니다. '흑과 백'은 '남과 여'일 수 있고 '빛과 그림자'이기도 하며 '산과 물'이며 '하늘과 땅'이기도 합니다. 야누스Janus이지요.

 

이안수 | 말씀을 듣고 보니, 그것이 우리의 속에 늘 대척으로 존재하며 대립하거나 융화된 듯 표출되는 인간의 대표적인 속성이군요. 저는 하나의 현상 앞에서 늘 어물어물함을 멈출 수 없습니다. 저의 본성은 'go!'를 명령하고 이성은 'stop!'을 지령합니다. 달뜬 가슴은 불을 지피고, 식은 머리는 그 불길을 잡습니다. '한.갤러리'에서 저의 우유부단함을 종식시킬 수 있을까요?

한태경 | 어쩌면 더 혼란스러워질지도 몰라요. 하지만 '질서cosmos'는 '혼돈chaos'을 어머니로 합니다.

이안수 | 이 갤러리의 오픈 날짜도 20100210이라는 시각적 효과를 염두에 두고 날을 정하시는 것으로 보아 갤러리의 개별적인 디자인 요소에도 신경을 무척 쓰신 것 같습니다.

한태경 | 아직 미완성이에요. 하나하나 준비해왔고 하나하나 덧붙여질 것입니다. 입구는 화초들로 구성할 생각인데 아직 날씨 때문에 기다리고 있어요. 'H'라는 엠블럼도 오방색을 넣어서 디자인 했으며 에스프레소잔도 로고를 하나하나 직접 새겨서 구웠습니다. 저는 '마야문명'의 분위기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특별히 커피를 그 분위기에 맞추어서 제가 직접 브랜딩 했습니다. 기다릴 수 있다면 한잔 내려오겠습니다.

 

이안수 | 커피를 자신의 분위기에 맞추기 위해 직접 브랜딩하시는 정성이라면 이 갤러리를 찾는 사람 모두에게 각기 다른 스토리텔링을 선물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주 특별한 공간과 감성으로 헤이리를 더욱 풍성하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그곳에는 현재 '예술을 말하다' 두 번째 기획으로 '사월의 바다'전이 열리고 있습니다. 박일용의 동해와 제주 차귀도, 윤경님의 이탈리아바다, 오병욱의 상상의 바다가 그것입니다. 이 바다들은 실재의 곳에서 떼어낸 것이든 존재하지 않은 심상의 것이든 그 앞에 선 사람에게는 모두가 각자 마음속의 바다로 말을 걸어올 것입니다.

 

영어마을 쪽으로 헤이리마을의 중심과 등을 돌리고 앉은 외진 이곳이 본디부터 구석진 곳을 좋아하는 그녀에게는 오히려 장점으로 여겨졌습니다. 갤러리를 나와 어둑해진 하늘틈을 되돌아보니 한 대표에 의해 헤이리가 한걸음 더 다양해지고 개성 있어졌음이 참 흡족했습니다.

 

●관련정보

한.갤러리

-주소 |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헤이리 485번지, 하늘틈1층

-전화 | 031-941-0325, 010-5309-0057

-블로그 | http://blog.naver.com/colorist61

-오프닝 | 오전 11시 _ 오후 7시(매주 월요일 휴무)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홈페이지 www.motif.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한.갤러리#한태경#헤이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