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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시티 골목길에서 만난 집 대문의 문고리. 작은 애가 잡고 있는 둥근 문고리는 여성 전용이고, 왼쪽의 길쭉한 문고리는 남성전용이라고 한다.
 올드시티 골목길에서 만난 집 대문의 문고리. 작은 애가 잡고 있는 둥근 문고리는 여성 전용이고, 왼쪽의 길쭉한 문고리는 남성전용이라고 한다.
ⓒ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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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앞 놀이터에서 만난 아이들. 하얀 색 마그넷을 한 모습이 참 귀여웠다.
 학교 앞 놀이터에서 만난 아이들. 하얀 색 마그넷을 한 모습이 참 귀여웠다.
ⓒ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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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즈드 시내에서 환전을 했습니다. 환율이 아주 좋았습니다. 이렇게 좋은 환율을 또 언제 만나랴 싶어서 꽤 많은 달러를 이란의 화폐로 바꿨습니다. 이란의 화폐단위는 리알인데 1달러가 대충 만 리알에 해당한다고 보면 됩니다. 거기다 100리알에 해당하는 잔돈까지 지폐로 나옵니다. 그러니 갑자기 몇 다발의 지폐가 생겼습니다. 엄청난 부자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환전소에서 열심히 돈을 세다가 밖으로 나왔더니 벌써 어둠이 내려 있습니다. 날은 어두워졌고 얼른 숙소를 찾아들어가야 하지만 참새가 방앗간 앞을 못 지나간다고 마침 환전소 옆에는 채소 가게가 있었습니다. 향긋한 채소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었습니다. 채소 이름은 모르겠는데 난 무언가를 찾으며 두리번거렸습니다. 그때 우리 일행 중 어떤 선생님이 빨간 무가 달린 열무처럼 생긴 채소를 가리켰습니다.

"이게 달고 맛있어요."

그 선생님은 어떻게 알았는지 내가 페르세폴리스 가기 전 들른 식당에서 먹었던 채소를 찾고 있는 걸 알고 가르쳐주었던 것입니다. 그 채소를 호텔로 가져가 밥만 두 접시 주문해서 고추장으로 비벼서 저녁을 해결하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밖에도 오이와 토마토를 샀습니다. 우리나라 과일보다 자그마한 오이는 단단하면서도 달고 맛있어서 고추장에 찍어먹으면 피로가 다 풀리는 기분이라 비타민처럼 늘 씻어서 들고 다니며 먹었습니다. 이것저것 사다보니 또 한 보따리나 사게 됐습니다.

채소 가게를 나왔을 때는 다른 일행은 다 돌아가고 우리 가족과 두 명의 선생님이 남았습니다. 대로변을 지나 우리 숙소가 있는 올드시티로 접어들었습니다. 야즈드 구시가지는 좁은 골목이 꼬불꼬불하게 이어져있습니다. 그리스 신화에서 다이달로스가 만든 미로 궁전의 모양새입니다.

그런데 우린 참 태평이었습니다. 한국인 특유의 낙천성 때문인지 길을 잃을 거라고는 조금도 걱정하지 않은 채 무작정 올드시티 안으로 들어갔던 것입니다. 미로 속으로 들어오자 드문드문 가로등이 켜져 있을 뿐 사람은 다니지 않았습니다.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습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 공간에 있는데도 마치 도시는 무덤 속처럼 조용했습니다. 정적을 깨는 것은 난데없이 시끄러운 엔진소리를 일으키는 오토바이 정도였습니다.

거의 한 시간을 미로 속을 헤맸을 것 같습니다. 같은 모양의 집과 같은 모습의 거리에서 길을 찾는 일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몇 번 제자리걸음을 하자 두 선생님 사이에는 분열이 생겼습니다. 한 선생님은 이 길이 맞다고 하고 다른 선생님은 저 길이 맞다고 우기고, 그런데 어느 길을 가더라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다가 정말 우연히 숙소를 찾아냈습니다. 우리가 숙소를 찾아냈다는 표현 보다는 숙소가 우리를 찾아냈다는 표현이 알맞을 정도로 우린 미로에 갇힌 생쥐마냥 우왕좌왕했었는데 갑자기 숙소가 보였기 때문입니다.

꼬불꼬불하고 조용하고 정겨운 골목길. 차도 안 다니고 사람도 별로 없어서 말없이 걷기만 해도 명상이 될 것 같은 골목이었다.
 꼬불꼬불하고 조용하고 정겨운 골목길. 차도 안 다니고 사람도 별로 없어서 말없이 걷기만 해도 명상이 될 것 같은 골목이었다.
ⓒ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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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시티의 스카이. 파랗고 맑은 하늘과 황토빛 흙집이 이루는 조화가 예술품 못잖게 아름다웠다.
 올드시티의 스카이. 파랗고 맑은 하늘과 황토빛 흙집이 이루는 조화가 예술품 못잖게 아름다웠다.
ⓒ 김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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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시티는 야즈드에 위치한 구시가지로 2천년이나 된 마을입니다. 유네스코에 의하면 야즈드의 구시가지는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마을이라고 합니다. 햇빛에 잘 말린 진흙과 벽돌로 만든 집과 골목이 미로처럼 연결돼 있는데 오래된 마을이지만 그동안 사람이 계속 살아왔기에 세월이 가져온 기품과 운치가 있는 마을이었습니다.

올드시티를 거니는 것, 즉 미로 속을 헤매는 게 야즈드 여행의 하이라이트입니다. 어젯밤엔 미로 속에 갇힌 생쥐마냥 우왕좌왕했는데 그건 밤이었기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낮에는 길 잃을 걱정일랑 접어두고 무작정 천천히 흙 담 사이로 난 길을 걸으면서 강렬한 사막도시의 햇빛을 느끼는 게 야즈드 여행을 제대로 즐기는 방법이라고 안내 책자에서 본 바 있습니다. 늦은 아침을 먹고 햇빛이 쨍쨍한 시간을 기다려 아이들과 함께 다시 올드시티의 미로 속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꼬불꼬불한고 조용하고 정겨운 골목을 걷다가 우리가 가장 먼저 만난 것은 초등학교입니다. 이곳은 남녀가 유별해서 버스나 지하철 등 모든 곳에서 남녀를 구별하는데 초등학교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간 곳은 여자 애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였습니다.

학교 앞을 기웃거리고 있을 때 마침 수업을 마친 여학생들이 나왔습니다. 학교라고는 하지만 작은 읍사무소나 동사무소 크기 만한 학교에서 작고 귀여운 여자 애들이 몰려나왔습니다. 모두들 너무 귀엽고 예쁘게 생겼습니다. 아이들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다 예쁘지만 이 아이들은 정말 어린이 잡지 모델이라도 되는 것처럼 예쁘게 생겼습니다.

아이들은 학교 앞에 있는 놀이터로 달려갔습니다. 낡은 그네와 미끄럼틀과 시소가 전부인 조그마한 놀이터였습니다. 사교성 좋은 우리 집 작은 애는 아이들 곁으로 다가가서 '살롬'이라고 인사하고 애들과 어울려서 그네도 타고 미끄럼도 탔습니다. 작은 애는 애들과 더 친하고 싶었지만 대화가 안 되니 말없이 어울려 미끄럼틀을 타고 그네 타는 애를 밀어주면서 놀았습니다. 그러다가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가고 우리도 우리 갈 길을 갔습니다.

골목을 거닐면서 굳게 닫힌 집 대문을 감상했는데 대문 모양이 집집마다 다 다른 것도 특별했지만 더 인상적인 것은, 길쭉한 모양과 동그란 모양의 문고리입니다. 길쭉한 모양은 남자들이 두드리는 것이고, 동그란 문고리는 여자 전용이라고 했습니다. 장난기 많은 둘째가 여자 문고리를 잡고 두드리는 시늉을 해서 난 얼른 말렸습니다.

그런데 우려하던 일이 또 일어났습니다. 열심히 사진을 찍다가 뒤처지는 바람에 아이들을 놓쳤습니다. 어젯밤에 호된 신고식을 치렀음에도 불구하고 환한 대낮에 또 길을 잃어버리고 거기다 아이들까지 놓쳤습니다. 심장이 쿵 하면서 내려앉는 기분이었습니다. 정말 걱정됐습니다. 한낮에는 걱정하지 않고 어슬렁거려도 된다고 했지만 미로는 미로인 모양입니다.

갑자기 마음이 급해지면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우선 애들부터 만나야겠다 싶어서 큰 소리로 애들을 불렀습니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찾다가는 오히려 더 길을 잃게 된다는 말을 들었기에 애들을 놓친 그 자리에서 목이 터져라 계속 애들을 불렀습니다. 한참동안 다급하게 불렀더니 애들이 나타났습니다. 놀란 건 애들도 마찬가지인 모양입니다. 우린 한낮이라고 너무 방심했었다며 스스로를 자책했습니다.

야즈드, 올드시티의 미로는 그리 만만한 골목은 아니었습니다. 정말 길을 잃기 쉬웠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길을 잃는 것, 그게 추억이 되는 것 같기에 올드시티에 들어섰다면 길을 잃어보는 것도 의미 있는 경험이 될 것 같습니다.


태그:#야즈드, #올드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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