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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여사는 킬러>겉표지
 <심여사는 킬러>겉표지
ⓒ 씨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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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영의 소설에서 '이야기꾼'의 기질이 보인다. <신문물검역소> 등에서 나타났듯 그녀의 소설은 세상 속을 자유자재로 횡단하고 또한 가로지르며 또한 질주한다. 그녀의 소설은 추측을 거부한다. 서사로써의 필연성이 결여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소설이 말도 안 된다는 건 아니다. 말도 안 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들을, 강지영은 잘 묶어 한편의 그럴듯한 이야기로 만들어낸다. 이야기꾼의 기질이 농후한 것이다.

최근에 나온 <심여사는 킬러>는 그러한 모습이 유난히 돋보인다. 소설의 주인공은 올해 쉰한 살 된 아줌마 심은옥이다. 그녀는 두 명의 자식을 데리고 있는 과부다. 그녀가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정육점을 운영하던 시절에 뽐냈던 칼질뿐이다. 그 외에는 딱히 잘 하는 것이 없다. 정육점을 정리한 후, 심은옥은 마트의 정육 코너에서 일하고 있다. 그런데 사장이 도박으로 구속되는 바람에 졸지에 실업자가 된다. 쉰한 살의 그녀는, 어느 날 과부에 실업자가 된 것이다.

그녀는 구인정보지를 살펴본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딱히 없어 보인다. 그나마 보이는 것이 '40세 이상 주부사원 모집, 월 300보장, 비밀유지상여금 500% 지급, 스마일'이라는 문구다. 누가 봐도 사기성이 짙다. 그러나 절박한 그녀는 그곳에 전화를 하고 면접을 보러 간다. 면접에서 그녀는 칼질을 선보인다. 스마일의 사장은 그녀를 채용한다. 심여사라고 부르면서 '킬러'로 고용한 것이다.

부처님 같은 파마머리에 펑퍼짐한 몸매인, 어딜 봐도 평범할 대로 평범한 아줌마가 킬러가 된다는 것이 실감이 나는가. 얼토당토하지 않은 이야기 같지만 소설 속의 그들이 느꼈듯 요지경 세상은 얼토당토하지 않은 일로 가득하다. 생각해보면 아줌마가 킬러가 된 것도 그런 일 중에 하나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또 생각해보면 아줌마는 킬러로써 여러모로 유리했다. 보통의 킬러라면 영화 '레옹'의 그 남자를 떠올린다. 평범한 아줌마를 킬러로 의심할 리가 없다.

그래서였을까. 아줌마 킬러의 활약은 멈출 줄 모른다. 연쇄적으로 성폭행을 저지르고도 풀려나는 악질 변태, 점을 빙자해 남의 집 귀한 돈 떼어먹은 사기꾼 여자 등 누가 봐도 나쁘다고 말할 법한 사람들은 심여사의 칼질 앞에서 맥을 못 춘다. 방심했다가 덜컥 당한 것이다. 어쨌든 심여사의 활약 덕분에 흥신소 스마일의 명성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간다.

그러자 문제가 생긴다. 말할 수 없는 욕망들을 해결해주는 흥신소 주변에 이상한 인간들이 꼬이기 시작한 것이다. 심여사의 아들이나 옛사랑, 그리고 킬러를 동경하는 킬러와 철없는 형사 아내 등이 무슨 냄새를 맡았는지 그곳을 향해 모여든다. 그리하여 이야기는 다채로워진다. 강지영의 본격적인 입담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심여사는 킬러>는 기존의 문학적인 구도로 보자면 많은 말들이 나올 법한 소설이다. 하지만 소설은 애초부터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보다는 이야기에 충실하다. 욕망을 해결해주는, 특히 청부살인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취하는 흥신소에 모여든 사람들의 갖가지 이야기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데 그 솜씨가 제법이다. 글이 결코 녹록치 않다.

아줌마 킬러라는 독특한 캐릭터와 흥신소라는 상징적인 곳을 통해 인간군상의 다양한 욕망을 다채롭게 보여주며 이야기의 흥을 놓치지 않는 <심여사는 킬러>, 코믹하면서도 잔혹한 그 맛이 가슴 속을 강렬하게 데워준다.


심여사는 킬러

강지영 지음, 씨네21북스(2010)


태그:#강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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