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이강국 헌법재판소 소장은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에서 열린 특강에서 "튀는 판결이라고 모두 '불량판결'은 아니다"라며 "튀는 판결일수록 국민을 이해시키고, 최소한 상급심을 설득하는 탄탄한 논증구조와 이론적 깊이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법관의 양심은 개인적 소신이나 신념을 배제하고 오로지 헌법과 법률의 법리에 따라 불편부당하게 재판해야 한다는 직업적 양심"이라며 "법관이 정치적·이념적 편향성에 따라 재판한다면 결국 현대판 '원님 재판'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이 헌재소장은 "대법원은 정책법원으로 남고 싶어 하지만 '삼세판'을 좋아하는 국민들은 비용과 시간이 들더라도 대법원까지 (소송을 가져) 가겠다는 정서가 강하다"며 "대법원이 정책법원이 될 것인지, 세 번째(3심) 재판기관으로 갈 것인지 국민들의 합의에 달려 있다"고 발언했다. 이번 발언은 한나라당의 대법관 수 증원 방안에 대응해 대법원이 내놓은 상고심사부 도입 방안을 우회적으로 견제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한편, 헌법재판소는 '최고 법원'의 성격과 기능을 두고 대법원과 신경전을 벌여왔다.
7일 일제히 관련 사설을 내보낸 조중동은 이 소장의 발언 중 '법관 양심론'에만 초점을 맞춰 힘을 실으며 전향적 판결들을 '원님 재판'으로 몰아 비난했다.
<헌법재판소장까지 비판한 '현대판 원님 재판'>(중앙, 사설)
중앙일보는 사설에서 이 소장의 '법관 양심론'을 거론한 뒤 "일부 법관들이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한 헌법 조항을 아전인수 격으로 들먹이며 '독단적 판결'을 하는 데 대해 '헌법'의 보루로서 준열하게 꾸짖은 것"이라고 풀이했다. 또 "국민을 법적 실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된다고 못박은 것은 '튀는 판결'을 겨냥한 것"이라고 해석하면서, "3심제를 들먹이며 '판결에 납득할 수 없으면 항소하면 되지 않느냐'는 식의 자유심증(自由心證)에 따른 재판을 경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사법부의 개혁은 국민적 요청"이라며 대법원도 개선안을 내놓고, 정당들도 개혁안을 잇따라 발표했지만 "그저 기득권 보호나 영향력 확대 차원의 미봉책들 뿐"이라고 비난했다.
나아가 "법원 내 사조직도 건재하다"며 우리법연구회를 겨냥한 뒤, "대법원장에 이어 헌재소장까지 나서 '말씀'만 하면 뭐하나. 사회를 뒤흔든 사법 사태 이후 결과적으로 말만 무성했을 뿐 해결책은 지지부진인 상황"이라고 사실상 '우리법연구회 해체'를 촉구했다.
<법관 양심론>(조선, 사설)
조선일보도 사설에서 이 소장의 '법관 양심론'을 언급한 뒤 "일부 젊은 판사들은 최근 사회적 관심이 큰 사건들에 잇달아 무죄 판결을 내리면서 국민 상식과 동떨어진 이유들을 댔다"며 시국선언에 참여한 전교조 교사 무죄 판결 등을 비난했다. 이어 "판사 개인의 상식과 신념을 보편적인 것처럼 내세워 사회를 바꾸려 한다면 그게 바로 '국민을 실험 대상으로' 사는 현대판 '원님 재판'"이라며 거듭 전향적 판결을 낸 판사들을 비난했다.
<현역 법관들, 헌재소장의 '법관 양심론' 곱씹어보길>(동아, 사설)
동아일보는 사설에서 이 소장의 발언을 두고 "대법관을 지냈고 헌법에 관한 최고·최종 유권 해석을 하는 헌법기관 수장의 헌법이라는 점에서 후배 법관들에게 주는 무게와 권위가 남다르다"며 힘을 실었다.
사설은 "최근 사법개혁 논란은 법관의 양심을 주관적·개인적 양심으로 혼동한 일부 법관의 '튀는 판결' 때문에 시작됐다"며 "MBC PD수첩의 광우병 프로그램,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의 국회 활극, 전교조 시국선언, 빨치산 추모집회에 대한 무죄 판결은 법관의 직업윤리에 대한 의구심을 불러일으켰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법원도 개인적 신념을 앞세운 일부 하급심 법관의 판결들에 대해 무엇이 법의 정신이고, 법관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지를 명징한 판결을 통해 보여줄 책임이 있다"며 대법원을 압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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