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하하고 즐거워해야 할 날이지만 작금의 신문 현실이 선뜻 자축하기 힘든 상황이다. 특히 생존의 문제에 직면해 있는 지역신문은 오히려 이 날이 축하의 의미보다 각오의 날로 여겨지고 있어 가슴 아프다. 그러나 기자들이여 한 번 웃자."
7일, 다시 맞는 신문의 날이다. 하지만 신문종사자들의 마음은 착잡하기만 하다. 힘든 상황을 지면에 토로한 글들이 무겁다. 우선 <경북일보> 이동욱 편집국부국장이 자사에 실은 '신문의 날, 지역신문을 생각한다'란 제목의 글은 지역신문의 존재와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이 부국장은 "신문의 위기는 내부와 외부적인 요인뿐만 아니라 전방위적 요인에 의해 비롯되고 있다"며 "특히 지역 신문은 더욱 심각한 위기 국면에 놓여 있다"고 운을 뗀 뒤 그 이유를 이렇게 적지했다.
"인터넷과 모바일 등 뉴미디어의 혁신적 발달과 미디어 간 융합 추세는 종이 신문의 위기를 부추기고 있다. 이 같은 미디어 환경 변화는 젊은 층의 전통적 종이신문과의 거리를 멀어지게 했고, 신문 독자의 평균연령이 지속적으로 높아지는 원인이 되고 있다."
"신문구독률 30%대 근근이 턱걸이...신문의 날 위기감 더해"
지난 1896년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지인 <독립신문> 창간일을 기념해 제정된 신문의 날이 벌써 54회째를 맞고 있지만 "신문이 어렵다", "신문이 위기다"라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어느 해보다 높다.
비단 지역신문의 문제만이 아니다.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사회적 네트워크를 타고 날로 진화되는 뉴미디어 시대에 종이신문은 더 이상 뉴미디어가 아닌 올드미디어 취급을 받고 있다. 구독률에서도 나타난다. "1996년 69.3%였던 신문구독률은 지난해 30%대에 근근이 턱걸이한 지경"이라고 역설한 이 부국장의 글에서 잘 읽힌다.
그래서 그런지 신문의 날을 맞아 신문사들이 연례행사처럼 지면에 실어왔던 자축성 기획기사들이 눈에 띄지 않는다. 6일 한국신문협회가 주최한 '모바일 시대, 신문의 가치와 미래 전략'이란 주제의 토론회를 부각시키는 행사기사들만이 간간히 눈에 들어올 정도다.
한국신문협회는 신문의 날을 기념해 6일 오후 2시 대전 유성호텔 8층 스타볼룸에서 회원사 발행인과 협회 임직원 등이 참가한 가운데 모바일 시대, 신문의 가치와 미래 전략을 모색하기 위한 세미나를 개최했다. 신문도 이젠 달라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비등했다.
지역신문 종사자들에게 우울한 소식이 한 가지 더 있다. 우리나라 지방일간지의 효시로 100년의 역사를 이어온 <경남일보>가 직장폐쇄를 단행했다는 충격적인 보도가 경남지역 주요 일간지에 실린 것. 하필 신문의 날 큼지막한 사진과 함께 실렸다. <경남일보>사측이 노조원들의 파업에 맞서 6일 오전 직장폐쇄를 단행해 노사가 극한 대립양상을 보이면서 지역사회에 파장이 일고 있다.
100년 역사 이어온 <경남일보>, 신문의 날 직장폐쇄라니 '충격'
<경남일보>사측은 지난 5일 진주시내 한 호텔에서 긴급 임시이사회를 열고 현 사태수습과 경영정상화 및 향후 경영안정을 위해 비상대책위를 구성하고 전 사장인 황인태 이사를 위원장으로, 부위원장 및 대변인에는 남병희 이사를 선임했다. 또 사측은 6일 오전 노동부 진주지청에 직장폐쇄 신고를 하고 나서 회사 게시판을 통해 '직장폐쇄', '비대위 구성' 등의 내용이 담긴 제68차 이사회 결의사항을 공고했다.
이에 대해 전국언론노동조합 <경남일보>지부는 "사측의 일방적인 직장폐쇄에 분노한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노조측은 "회사를 추락하게 한 장본인을 비대위원장으로 선임한 것은 독자와 시민들을 모욕하는 행위"라며 "어제 열린 긴급 임시이사회는 김흥치 회장이 사퇴를 해야 하는 자리인데 직장폐쇄를 의결했다"고 비난했다.
임시이사회를 열기 위해서는 규정상 7일 전에 이사들에게 통보를 하도록 돼 있는데 이 규정을 어겼다는 주장도 나왔다. 노조는 사측과의 임ㆍ단협 결렬로 지난달 29일 오후 전면 파업에 들어갔다.
노조측은 체불 상여금 150% 지급, 비현실적인 임금 수준 개선, 대표이사 사퇴 등을 요구하며 지난해 2월부터 임ㆍ단협을 벌였으나 사측의 거부로 난항을 거듭해 왔다. 그러다 최근 열린 주총에서 현 대표이사가 유임됐으나 체불 보너스 지급과 회사 경영 정상화 등에 대한 방안을 내놓지 않아 파업에 들어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사측은 사태의 수습과 경영정상화를 위한 모든 사항을 비상대책위에 일임키로 했으며 파업을 주도하고 있는 노동조합과 노조원 개인에게 회사의 손해를 끼친 책임을 물어 형사상 고발과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하기로 해 파문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새로운 100년을 향해 나아간다더니...<경남일보>가 살아갈 길은?"
이와 관련, 경남민언련은 신문의 날 전인 6일 '우리는 결코 황인태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제목의 성명을 내고 "지금 <경남일보>가 살아갈 길은 오직 김흥치 회장의 전면 퇴진과 황인태의 전 사장의 경영복귀를 막는 것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21년간의 경영실패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을 지겠다는 마음이 있다면 하루 빨리 <경남일보>를 떠나는 것이 <경남일보>를 위한 최소한의 배려"라고 주장한 성명은 "황인태 전 사장이 경영에 복귀한다면 경남민언련은 퇴진을 위해 최 일선에서 온몸으로 끌어내릴 각오로 투쟁할 것임을 밝혀둔다"고 경고했다.
1909년 10월 15일 최초의 지방지로 경남 진주에서 창간한 <경남일보>의 이러한 소식에 많은 지역신문 종사자들의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올 연초만 해도 <경남일보>는 사고를 통해 다짐하고 또 다짐했었다.
"지난해 한국 언론역사상 기념비적인 창간 100주년을 맞았던 <경남일보>가 새해부터 새로운 100년을 향해 나아간다"며 "한국 최고의 지방지로서의 위상을 굳힌 <경남일보>는 지방언론의 새로운 역사를 개척해 나가기 위해 전 종사원들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일 것을 다짐한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의 사태를 바라보는 지역 언론인들의 아쉬움과 실망은 크고 무겁다.
신문업계가 안고 있는 위기감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를 읽게 한다. 한국신문협회가 올 신문의 날 표어로 '당신은 지금, 세상을 읽고 있습니다'란 문구를 선정한 데서도 이러한 위기감은 묻어난다. 읽히지 않는 신문은 신문으로서의 가치가 없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런데 '언론의 제왕', 또는 '언론의 역사'라며 그동안 큰 소리 치며 스스로 위상을 치켜세워왔던 신문사들이 더 이상 '제왕'이나 '역사'의 위치에 설 자신이 없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신문사 종사자들, '프린트 퍼스트'라는 생각 버려야"
이완수 동서대학교 영상매스컴학부 교수가 신문의 날을 맞아 <한국일보>에 기고한 "신문은 황제 매체"란 제목의 글이 가슴에 와 닿는다. 그는 "자축하고 축하해야 마땅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며 "독자는 갈수록 줄고 있고 광고 사정도 좋지 않다. 최고의 엘리트로 선망 받던 기자들이 줄줄이 떠나고 있다"고 표현했다.
그의 글을 보는 신문인들의 어깨는 더욱 무겁고 마음은 착잡했을 것이다. '신문이 죽으면 민주주의가 죽는다'는 신문의 사회적 역할론, '신문의 미래는 결코 어둡지 않다' 는 격려도 공허하게 들릴 것이다. 그동안 신문의 위기를 일깨워주는 암울한 이야기를 귀가 따갑도록 들어왔기 때문이다.
다소 자존심이 상할지는 몰라도 이 교수가 내놓은 몇 가지 따가운 지적과 제안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신문을 포기하기 바란다"고 첫 번째 주문 카드를 꺼내 들었다.
"지금까지 여러분은 종이신문을 신문의 전부로 여겨왔다. 이제 여러분은 '프린트 퍼스트(print first)'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활자를 중심에 두는 종이신문에 운명을 맡겨서는 안 된다. 인터넷, 모바일을 앞세우고 종이는 맨 뒤에 두는 '프린트 라스트(print last)' 전략을 주저 없이 실천에 옮겨야 한다."
이 교수는 이어 "기자에 집착하지 말기 바란다"고 충고한다. 이제는 뉴스를 만드는 기자가 중심인 시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야기를 만드는 '콘텐츠 퍼스트(contents first)' 시대이다. 딱딱한 뉴스만을 만드는 저널리스트는 살아남을 수 없다. 대신 '콘텐츠 개발자(contents creative)'로, '스토리 텔러(story-teller)'로 거듭나야 한다."
"지금 신문업계는 너도나도 방송에 진출하기 위해 안달이다"고 한 이 교수는 "방송진출이 마치 신문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요술방망이처럼 여기고 있지만, 잘못된 판단이고 착각이다"고 꼬집었다. 방송의 위상이 신문에 비해 큰 것은 맞지만, 모바일에는 못 미친다는 논리로 해석된다.
"슈퍼마켓식 흥미위주 기사나열 지양...제대로 된 기사 담아내야"
포털을 뛰어 넘고 방송을 건너뛰어야 하는데 거기에다 모바일까지 담을 수 있어야 한다니 여간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신문은 이제까지 가장 강력한 정보제공 매체였다. 그러나 정보가 폭주하는 뉴미디어 시대에 속보성 정보는 온라인이나 포털에 비해 뒤떨어진다.
신문이 이제 '지식을 가공하는 발전소'로 만들고, 세상을 읽어주는 '정보의 인덱서(indexer)'가 되어야 한다는 지적은 바로 이 때문이다. 문제는 실천이다. 이효성 청주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이날 <충북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독자와 쌍방향 소통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각 신문사들의 구조조정이나 동일 시장권역 내에서의 인수·합병문제에 대해서도 허심탄회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그는 "특히 지역 신문들의 경우 당장 사활이 걸린 문제로 인식하면서도 자사 이기주의와 기득권 때문에 쉽사리 나서지 못하고 있는데 이는 정말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고 지적한다.
그는 또한 "신문 종사들은 미디어 환경 변화에서 오는 외부적 위기를 논하기 전에 내부적 위기는 없는지를 먼저 반성해야 한다"며 "슈퍼마켓식의 흥미위주 기사 나열을 지양하고 제대로 된 정책보도나 기획기사를 담아내려는 진지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독자들은 이미 쌍방향적이고 상호작용적이며 참여적 소통을 원하고 있는데, 여전히 일방적이고 독선적이지는 않은지 스스로 돌이켜 보아야 한다. 독자들에게 먼저 다가가 그들을 참여시키고 그들의 목소리를 담아내려는 적극적인 노력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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