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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노는 토요일(놀토)을 가장 좋아합니다. 이유는 늦잠을 잘 수 있기 때문입니다. '놀토'만 되면 스스로 일어날 때까지 깨우지 말라고 합니다. 당연히 나와 아이들은 아내와 엄마 말에 순종합니다. 그런데 지난 10일은 아니었습니다. 경남 진주에 있는 경남문화예술회관 앞 남강 둔치에서 열리는 '좋은 그림 그리기 대회'에 가야 했기 때문입니다. 지난해에도 참여했는데 둘째 아이가 3등상을 받았습니다.

 

오전 9시 30분부터 시작하지만 큰 아이 병원 때문에 조금 일찍 나서 8시 40분쯤 도착하니 벌써 엄마와 아빠 손을 잡은 아이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었습니다. 아내와 둘째 아이, 막둥이를 내려주고 큰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갔다가 다시 돌아와 보니 천진초등학교와 예술회관 앞, 남강 둔치까지 아이들이 그림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우리 집에는 휴대전화가 1대뿐입니다. 이럴 때 사람 찾는 일이 참 어렵습니다. 정말 모래알에 떨어진 바늘 찾기가 따로 없었습니다. 이곳저곳을 찾아다니고 있는데 딸아이가 "아빠"라고 불러 2시간 이산가족은 이렇게 끝났습니다.

 

"막둥이, 무슨 그림 그렸어?"

"운동회 하는 날 줄넘기 하는 그림 그렸어요."

"줄넘기? 동무들이 줄넘기 몇 번 넘었어?"

"모르겠어요."

"아니, 네가 줄넘기 그림을 그려놓고 몇 번 넘었는지도 몰라?"

"내가 그림을 그려도 몇 번 넘었는지 어떻게 알아요? 아빠는 차가 다니는 그림을 그리면 차가 몇 대 지나 갔는지 알아요?"

"야, 막둥이 말에 아빠가 할 말이 없다. 그런데 우리 막둥이 그림 잘 그렸다. 네가 정말 그린 것 맞아?"

"예, 내가 그렸어요."

"아무리 봐도 엄마가 그린 것 같은데?"

"…"

"엄마가 그렸지?"

"아니에요. 엄마는 조금만 도와주었어요."

"엄마가 조금만 도와주었는데 잘 그렸다. 우리 막둥이 그림 솜씨가 점점 좋아진다. 아빠 초등학교 3학년 때보다 훨씬 더 잘 그린다. 막둥이가 아빠보다 너 낫다."

 

막둥이는 세상에서 아빠보다 훌륭한 사람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빠보다 자기가 그림을 더 잘 그렸다는 말에 웃음을 감추지 못합니다. 지난해 3등상을 받은 딸 서헌이도 열심히 그리고 있었습니다.

 

"서헌이는?"

"나는 진주 '남강의 봄'이에요."

"남강의 봄. 그림보다 제목이 더 멋지다."

"남강, 뒤벼리를 지나가는 차, 산과 나무를 그렸어요."

"서헌아, 뒤벼리가 무슨 말인지 알아?"

"잘 모르겠어요."

"뒤벼리에서 벼리는 '벼랑'이야. 벼랑은 '낭떠러지'이고, 그러니까 뒤벼리는 뒤쪽에 있는 '벼랑'이라는 뜻이야. 뒤벼리를 보면 낭떠러지가 굉장히 높지. 남강과 어우러진 뒤벼리는 진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8곳 중 하나이다."

 

그림 그리기 대회만 아니라 장애인 체험, 응급구조체험 등등 다양한 체험학습까지 했습니다. 눈가리개로 눈을 가리거나 휠체어를 타는 체험이었습니다.

 

"서헌이 휠체어 타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어?"

"굉장히 힘들었어요. 뒤에서 밀어주지 않으면 앞으로 갈 수가 없었어요."

"여기는 평평한 바닥이라 턱이 없잖아. 그런데 학교 가는 길에 보면 턱이 있지. 휠체어를 타고 가다가 턱을 만나면 어떻게 될 것 같아?"

"턱에 걸려 넘어질 수도 있고, 앞으로 나갈 수 없을 것 같아요."

"맞다. 턱이 높으면 가고 싶어도 지나갈 수가 없다. 너는 평평한 곳도 힘들어 하는데 장애인들은 얼마나 힘들겠니. 턱이 힘들면 계단은 더 힘들거다. 우리들은 아무 불편없이 다니는 길과 계단이지만 장애인들은 굉장히 힘들다. 휠체어를 재미 삼아 타지만 장애인들도 불편 없이 다닐 수 있도록 사람들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

 

아이들은 휠체어를 재미있고 신기해서 탓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작은 경험을 통해 우리 아이들은 장애인과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어가기를 바랍니다. 길가에 턱이 없는 세상은 정말 좋은 세상입니다. 장애인 체험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막둥이가 119대원들이 응급구조 실험을 보여주는 모습을 보고 자기도 하고 싶다고 조르기 시작했습니다.

 

"아빠, 119 아저씨들 응급구조해요. 나도 보고 싶어요."
"힘들다. 그냥 가자. 점심 시간이 넘었잖아. 배도 고프고."
"내 꿈이 119잖아요. 보고 싶어요."

 

막둥이가 되고 싶은 119대원.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갈 수 없는 일이기에 체험을 하기로 했습니다. 쓰러진 아저씨를 어깨를 흔들어 깨우고, 숨은 쉬는지, 코로 바람을 불어넣고, 가슴을 30번 눌러주는 시범을 보여주는 119대원 모습을 보는 막둥이의 눈에 빛이 났습니다.

 

막둥이가 배우고, 공부하는 일에 이렇게 진지한 모습을 보인 적이 거의 없었는데 자기가 꿈꾸는 119대원을 보니 눈에 빛이 날 수밖에 없습니다. 막둥이에게 왜 119대원이 되려고 하는지 물었더니 '사람을 살리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119대원, 막둥이 꿈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림대회#장애체험#응급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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