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천규석의 윤리적 소비> 겉그림.
 <천규석의 윤리적 소비> 겉그림.
ⓒ 실천문학사

관련사진보기

살집 넉넉한 사람들이 주눅 들어 사는 세상이다. 겉보기엔 멀쩡한 애들조차 살을 빼야 한다고 조바심을 내는 세상, 덕분에 다이어트 식품 광고는 갈수록 늘고, 살을 빼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땀 흘리는 사람들 또한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살 찐 것이 큰 죄라도 되는 것처럼 사람들은 온통 허위의식의 포로가 되어 살고 있다.

가난 또한 죄가 되는 세상이다. '부자 되세요'란 광고가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고, '돈 많이 벌라'는 인사에 마음 상할 이 없다. 사교육비 감당하기 힘들어도 이 악물고 자식들 그곳으로 밀어 넣는 것도 따지고 보면 돈 많이 벌어 사람 노릇 하면서 살길 바라는 부모의 바람에서 비롯된다. 가난하면 사람 노릇 하기 어려운 세상, 돈 많이 벌어야 사람대접 받고 사는 세상이 빚어낸 우리들의 자화상.

"세상에 부자가 없다면, 오늘날처럼 시장을 통한 경쟁과 욕망의 무한대적 확장이 없다면 인간이 이처럼 가난을 실감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가난은  사회적으로 조작된 허위의식(선입견)인 것이다." - 책 속에서

<윤리적 소비>의 저자 천규석은 가난 또한 비만과 같은 허위의식의 산물로 규정한다. 가난한 삶 자체보다 부자들의 삶과 비교되는 상대적 가난으로 인한 박탈감이 더 큰 문제라는 것이다. 이 박탈감을 벗어나기 위해 사람들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지금보다 더 부자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매달린다. 가난을 두려워하는 허위의식의 포로가 되어서.  

만들어진 가난, 공정무역이란 허위의식

역사를 돌아보면 가난은 게으름과 무지의 대가로 얻는 불행이 아니라, 외세에 의해 자본에 의해, 국가에 의해 만들어졌다. 특히 자본주의와 식민지 지배로 상징되는 근대 이후 세계 도처에서 끊임없이 가난이 확대 재생산되었다.

인클로저란 이름으로 토지에 울타리를 치고 법령을 만들어 토지 사유를 확대하면서 토지에서 밀려난 다수 농민들이 몰락했다. 유럽인들은 드넓은 식민지 땅에서 돈벌이를 위한 커피, 사탕수수를 대량생산하기 위해 열대림을 불태우고 커피, 설탕의 단작 플랜테이션 재배를 강요했다. 당연히 열대림에 의존해 삶을 유지하던 원주민들의 삶이 철저히 파괴되어 가난으로 내몰렸다.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커피, 설탕 단작 재배의 수탈적 노예노동으로 내몰렸다.

공정무역은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등장했다. 커피 수입의 경우 최저 가격의 보장, 선불 실시, 공정무역 장려금 지불, 유기재배품에 대한 장려금 지불, 장기 안정계약 등을 조건으로 하는 무역이라고 한다. 이를 통해 수탈적 노예노동에 시달리는 주민들이 경제적 안정을 되찾도록 도와주고, 농약과 비료 등을 적게 사용하도록 해서 소비자들의 건강도 지킬 수 있어 일거양득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저자는 공정무역이란 그럴듯한 포장지를 두른 허상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국제분업적 단작 농업에 예속된 농민들이 공정무역의 덕을 보아 처지가 약간은 나아질지 모르지만, 스스로 자급할 수 있는 식량도 아닌 커피나 설탕 생산에 매달리는 한 국제무역에 예속된 농업 노동자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고 단언한다.

노예적 수탈 농업에 시달리는 단작 플랜테이션 농업 노동자들의 처지를 개선해주는 근본적인 해결책은 단작 플랜테이션 농업을 강요하는 국제 분업의 굴레에서 벗어나 다양한 작물 재배를 통한 자급 농업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자급, 자치, 지역 공동체의 길

외세의 끊임없는 이윤 추구의 희생양이 되어 만들어진 가난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자급, 자치, 지역 공동체의 길에 있다고 설명하는 저자는 시장도, 국제무역도, 국가도 국가에 의해 주도되는 복지도 가난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본다.

자급, 자치, 지역 공동체는 저자가 평생 농사를 지으며 이루고자 했던 꿈이었다. 이 책은 농촌에서 도시로의 이농 현상이 주를 이루던 1960년대, 서울대 미학과를 졸업한 후 농촌 공동체 건설의 꿈을 안고 귀농해서 평생 농사를 짓고 있는 옹골진 농사꾼의 체험의 산물이다. 저자는 유기농 농사를 통해 자연과 인간이 함께 살아갈 길을 모색했고, '한살림운동 대구공동체'를 만들고 '공생농 두레농장'을 열어 꿈을 일구며 살아오고 있다.

이윤 추구가 최선인 시장, 세계화란 이름으로 무한 팽창의 정당성을 부여받은 국제 무역, 국가 경쟁력 강화란 명분을 앞세운 국가에 의해 만들어진 주술에 사로잡혀, 돈 많이 벌고 부자가 되기 위해, 끝 모를 경쟁에 매달리는 현실을 되돌아보고 어떤 사회가 바람직한 삶인지를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다.

"불로장생하는 신선이 이슬만 먹고, 산다는 전설은 개인적 장수조차 결코 아무나 살 수 있는 만만한 삶이 아니라는 진실을 상징한다. 그것은 남을 재물 삼아 내가 길게 사는 삶이 아니고 자기 생명의 기본 욕망인 먹는 것조차 억제하고(모든 것을 철저하게 비우고 심지어 자기 배 속까지 비우고) 자연과 하나가 되는 무욕지경임을 역설한다.

인간 지상에서 그와 똑같은 삶은 있을 수 없지만 그것과 근접한 삶은 있었다. '나물 먹고 물 마시는' 가난  속에서 그래도 나눔의 축제가 있는 국풍 이전의 자급농촌마을 공동체의 삶이 그것이다." -  책 속에서


천규석의 윤리적 소비

천규석 지음, 실천문학사(2010)


태그:#공정무역, #착한 초콜릿, #착한 여행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3,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