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초 부산지검(검사장 박기준)에 '진정서'가 접수됐다. 진정인은 20여 년간 부산·경남(PK)지역에서 건설업을 해온 50대의 J씨였다. 그는 "진정한 검찰개혁을 위해 진정서를 제출한다"며 이렇게 요청했다.
"그동안의 뇌물·촌지·향응·성접대 등에 대하여 공직자윤리법, 성매매특별법 공소시효가 남아 있는 근래의 것은 형사적 책임(을), 시효가 지난 것은 도덕적 책임을 물어 엄격히 조사하시어 처벌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J씨가 적시한 '피진정인'은 "00지방검찰청 현직검사님 10여분외 전국 각 검찰청에 재직 중이신 90여 분"이다. 그는 진정서에서 검사님들의 명단과 수표번호, 향응접대 장소 일시 등의 관련 자료(수기)들을 진정인 조사시 모두 제출하겠다"면서 "명단에 적시된 전 검사님들과의 대질을 부탁드린다"고 적었다.
<오마이뉴스>는 최근 그의 진정서와 그가 진정서에 적시한 '관련자료'를 수기로 정리한 문서를 입수해 그를 세 차례 심층 면담했다. 부산지검은 2달 전에 이 진정서를 접수한 뒤 사건을 배당했지만, 아직까지 진정인 조사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또 J씨가 거명한 일부 검사들을 기자가 접촉했으나, 대부분 "접대 받은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
충격적인 그의 '검찰 접대 리스트'는 아직 사실로 확인되지 않았다. 하지만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J씨의 진정서와 관련 자료에 적시된 내용은 검찰의 도덕성에 치명상을 입힐 정도로 '핵폭탄급'이다.
"체육대회, 검사 회식, 환영식, 송별식 비용 대고 촌지까지 줘" J씨는 부친부터 2대에 걸쳐 건설업을 하면서 검사들과 친분관계가 상당히 두터웠던 인물로 알려졌다. 스스로 20여 년 동안 '검사 스폰서'를 자처했을 정도다. 그는 한나라당의 전신인 민자당 소속 경남도의원을 지내기도 했다.
그런데 J씨의 표현대로 "보수성향에다 부르주아 집안출신"인 그가 왜 '권력기관'인 그들을 향해 칼을 빼들었을까? 도대체 그와 그들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오마이뉴스>는 그를 세 차례에 걸쳐 심층 면담했다. 다음은 그의 주장을 재구성한 것이다.
경남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다닌 J씨는 갓 26살의 젊은 나이에 아버지의 사업(건설업)을 물려받았다.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뜨는 바람에 군에서 제대하자마자 N건설의 대표가 된 것이다. N건설은 관급공사로 수백억 원의 매출을 올릴 정도로 서부경남 지역에서 잘 나가는 건설회사였다.
부친처럼 지역유지였던 J씨는 법무부·검찰에서 위촉하는 갱생보호위원과 소년선도위원으로 10여 년간 활동했다. 이러한 활동을 통해 지역검사들과 인연을 맺었다. 그의 부친이 서울의 한 명문사립대 법대를 졸업한 것도 '검사 인맥 쌓기'에 도움이 됐다고 한다.
"나이가 젊으니까 제가 다른 분(위원)들보다 활동을 많이 했다. 그러다 보니 지역검찰청 출입도 잦았다. 검찰청의 사무과장이 검사들을 소개해주면 제 명함을 주고 안면을 텄다. 저는 평검사들한테도 '영감님'이라고 불렀다." 그렇게 안면을 튼 이후부터 접대, 속칭 '스폰'(sponsorship)이 시작되었고, 그의 사업이 기울기 시작한 2004년까지 계속됐다고 한다. 체육대회, 등반대회 등 공식행사는 물론이고 검사들 회식, 환영식, 송별식 등에 비용을 대는 것은 '스폰의 기본'이었다. 물론 '촌지'도 빼놓을 수 없는 스폰 중 하나였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J씨가 지목했던 검찰 고위 간부 P검사는 <오마이뉴스>가 전화로 접대받은 사실이 있는지 확인 취재에 들어가자 용무를 이유로 전화를 끊었다.
검사실에서 촌지를 직접 건네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J씨의 증언이다.
"촌지를 주는 날에는 어김없이 경리를 시켜 신권으로 바꾼 뒤 봉투에 담았다. 그리고 수행비서와 함께 벤츠를 몰고 검찰로 갔다. 지금은 검사실이 많이 오픈(open)돼 있지만, 당시에는 폐쇄돼 있었다. 촌지를 내놓으면 '이렇게 또 주면 우짜나?' 하면서도 대부분 자연스럽게 받았다." 촌지에 '거부 반응'을 보인 검사들도 있었다고 한다. 현재 법무부 한 고위간부, 로스쿨 교수로 재직 중인 한 검사,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한 B검사가 대표적이었다.
한편 '스폰서 인계'라는 것도 있다. 전임자가 후임자에게 '스폰서'를 소개해주는 일을 가리키는데, 이는 순환근무 속에서도 '검사-지역유지'가 유착할 수 있는 유력한 배경이기도 하다.
"서울에서도 접대... 쥐치포 상자에 현금 30만 원 넣어 전달하기도"
법조비리사건이 터질 때마다 흔하게 등장했던 것이 '전별금'이다. 전별금이란 다른 곳으로 근무지를 옮길 때 남아 있는 사람들이 이별의 정을 나타내기 위해 주는 돈을 말한다. 그런데 '순환근무'가 원칙인 검찰의 세계에서 '전별금'은 '승진해 다시 왔을 때 잘 봐 달라'는 청탁성 뇌물로 작용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특히 전별금을 제3자가 줬을 경우 그럴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검사 스폰서'를 자임했던 J씨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특별한 전별금'을 마련해 떠나는 검사들에게 전달했다.
"진주 중앙동에 '000'이라고 하는 귀금속 가게가 있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그곳에 순금 마고자 단추(5돈짜리 2개)를 50개씩 주문해 놓았다가 떠나는 검사들에게 줬다. 보통 '행운의 열쇠'를 선물하는데 저는 특별한 정표(情表)로 순금 마고자 단추를 준비했다. 그 정도면 평생 기억에 남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전별할 때도 검사들을 이렇게 완벽하게 모셨다." J씨는 더 심각한 것은 '성접대'였다고 주장한다. 검사들과 회식하는 날에는 '2차'를 내보냈다는 것이 J씨의 주장이다. 그에 따르면 반복되는 '성접대'의 경로는 단순했다. 먼저 횟집(혹은 일식집)이나 갈비집에서 1차를 한 뒤 2차로 고급룸살롱을 간다. 이어 룸살롱에서 '양폭'(맥주에 양주를 섞은 폭탄주)을 마신 뒤 근처 모텔 등으로 옮겨 '성접대'를 받는다는 것.
"2000년으로 기억하는데, K검사가 부장으로 진급해 한 지청으로 왔다. 그와 평검사 5~6명이 퇴근 후 부산으로 이동해 광안리의 000횟집에서 1차를 했다. 당시 K검사가 발렌타인21년산을 가지고 와서 그걸로 폭탄주를 만들어 마셨다. 그리고 2차로 000룸살롱에 갔는데 K검사가 갑자기 '정 회장, 오늘은 술값 계산하지 마이소'라고 했다. 제가 그 이유를 물었더니 '스폰서가 있다'고 하더라. 나중에 알고보니 스폰서는 다름 아닌 그 술집 사장이었다." 지역에 근무하던 검사들이 서울로 올라가도 J씨의 '스폰'은 계속됐다. 서울에서는 '금품-향응'이 한 묶음이었다.
"잘 나갈 때는 한 달에 한 두 번 정도 서울에 올라갔다. 서울 역삼동의 '000'이라는 곳에서 검사들을 접대했다. 그들은 다른 검사들과 함께 나왔다. '2차'는 물론이고 30만 원의 현금이 담긴 삼천포 쥐치포 한 상자도 '스폰'했다." 물론 아주 이례적인 경우이긴 하지만, 지역에서든 서울에서든 성접대만은 끝까지 거부했던 검사도 있었다고 한다. M검사가 대표적이다. J씨는 "M검사는 술은 마셔도 2차는 한 번도 안 나갔다"며 "그는 S검사와 함께 제일 젠틀(gentle)한 검사였다"고 회고했다.
"J씨는 모르는 사람... 황당한 사람"
J씨는 20여 년 동안 자신의 '핵심 스폰(향응·금품) 대상'은 수십 명이라고 주장했다. 10년 동안 써온 그의 핸드폰에 저장돼 있는 검사들의 전화번호만도 40개가 넘는다.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J씨의 수기를 검토한 결과, J씨가 향응·금품을 주었다고 기록한 전·현직 검사들은 50~60명에 이른다. 진정서가 접수된 지역에서는 이 명단을 일명 'J리스트'로 불린다. 특히 부산지검은 'J리스트'가 담긴 자료를 입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J씨는 이러한 자료를 국회 법제사법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에게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J씨의 추정에 따르면, 촌지와 행사·회식지원비, 성접대비 등에 들어간 비용은 10억 원에 이른다고 한다. 물가상승률 등을 헤아리면 이는 현재 100억 원에 해당하는 금액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는 진정서에도 "지난 25여 년간 감수한 100억 원"이라고 적었다.
J씨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후원한)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만 돈 쓴 게 아니다"라며 "제가 박 회장보다 검사도 더 많이 알고 돈도 더 많이 썼을 것"이라고 말했다.
"접대 관행은 쉽게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밑에 있는 검사들한테 밥 사주고, 술 사주고, 스폰 받을 수 있어야 윗사람으로서 권위를 인정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J리스트'에 포함된 일부 검사들은 "J씨를 모른다"는 반응을 보였다.
'J리스트'에 올라있는 A검사는 "J씨는 이름이 생소할 정도로 전혀 기억이 안 난다"라며 "J씨가 어떻게 내 명단을 올렸는지 모르겠지만 골프도 못 치는 내가 무슨 접대를 받았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공직자로 근무하다 보면 나는 모르는데 저쪽에서 나를 아는 척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역시 'J리시트'에 올라있는 L검사는 "J씨를 잘 모르고 (접대는) 황당한 얘기"라고 접대 의혹을 부인했고, 검찰 고위 간부인 P검사는 용무를 이유로 전화를 끊었다.
한편 J씨가 지난 2월 부산지검에 제출한 진정서와 관련, 부산지검의 담당검사는 "진정서를 넘겨받아 검토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J 리스트'가 사실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오마이뉴스>가 접촉한 일부 인사들은 향응-접대 내용을 한사코 부인했다.
그러나 J씨는 자신이 각종 명목으로 접대한 비용을 지불한 수표의 일련번호까지 기록해 놓은 근거를 토대로 검찰을 상대로 진정을 했고, 진정인 조사를 하면 모든 관련 자료를 검찰에 제출함과 동시에 검사들과의 대질심문을 통해 입증하겠다는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검찰은 지금 검찰조직을 강타할 '뇌관'을 안고 있는 셈이다.
기자는 최근 20일 동안 J씨를 부산 현지에서 세 차례 만났다. 기자가 가장 먼저 든 의문은 그가 왜 이제야 '폭로'를 하려고 나섰나 하는 점이었다. 원래 그는 4년 전인 2006년 폭로를 처음 결심했다고 한다. '검찰의 실체'를 깨닫게 해준 한 건의 사건 때문이었다.
당시 J씨는 미니골프장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자금난을 겪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술집을 하는 고향 후배를 만나 투자를 권유했고, 그 후배는 우선 1800만 원을 J씨에게 건넸다.
그런데 그 후배가 성매매 사건으로 구속됐다가, 검찰에서 "J씨에게 검찰 로비자금으로 2000만 원을 건넸다"고 진술했다. 결국 J씨는 변호사법 위반으로 긴급 체포됐다. '전직 도의원이 2000만 원의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였다.
J씨는 구속적부심에서 풀려났지만, 불구속기소됐다. 재판부도 애초 그가 받은 1800만 원보다 많은 2000만 원을 뇌물로 인정해 그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하지만 그는 '유죄'를 인정할 수 없었다.
J씨는 "이렇게 검찰에 뒤통수를 맞고 폭로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그는 "제가 '전직 도의원'이니까 한 건 하려고 짜맞추기 수사를 한 것"이라며 "저같은 사람도 이렇게 당하는데 일반 사람들은 어쩌겠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J씨는 바로 '폭로'에 들어가지 못했다. 변호사들도 "집행유예가 나왔으니까 더 이상 시끄럽게 할 필요없다"며 폭로를 만류했다.
J씨는 검찰에 낸 진정서에 "압박수사, 별건수사, 짜맞추기식 수사에 의한 기소편의주의만 생각하는 이기적 집단인 검찰의 행태를 바르게 알리고져" 폭로를 결심했다고 적었다.
그런 진정성을 인정하더라도 최초 '배신감'의 충격으로 폭로를 결심한 것도 사실이다. 20여 년간 '스폰'을 해온 자신에게 검찰이 '짜맞추기식 수사'를 하자 '폭로'를 통해 '분풀이'를 시도했다는 얘기다. 그의 진정성이 조금 의심받을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자신의 수기에서도 심한 배신감을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