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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근리 사건. 이 사건을 어떻게 '다양한 시각'으로 볼 수 있단 말인가? 무슨 '평가'를 한다 말인가? 같은 영화라고 하더라도 이 사건을 영화화한 <작은 연못>을 대중예술을 이해하는 잣대로 평가할 수 있을까?

 

우리는 오직 반성 또 반성해야 한다. 이게 오십년이 지나서 AP통신을 통해서 드러난 것 자체가 국가적 수치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껴야 한다. 이 사건을 세상에 알린 기자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이를 '떠돌아다니는 소문', '음모론' 정도로만 생각했을 것이다.  

 

이 수치를 이겨내기 위한 방법은 '학습'뿐이다. 전쟁은 결국 이런 '실수'가 가능하기 때문에 절대 있어서는 안되는 것이라고. 그래서 다시는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되며, 이런 일이 있더라도 절대 '침묵이 당연시'되어서는 안 된다. 빨갱이? 양키? 그런 이념논쟁이 뭐가 필요하단 말인가? 이렇게 '생뚱맞은' 죽음이 현실화되는 것이 바로 전쟁인데 말이다. 전쟁이 이렇게 비극적이라는 것을 알리는 것이 바로 죽은 영혼들에 대한 우리들의 도리다.

 

그런데 동아일보 황호택 논설실장께서 또 말을 비비 꼰다. 그저 미국의 관계가 서먹해지는 것을 그냥 넘기지 못한다. 북한이 상대적으로 '덜' 악랄해지는 것에 또 민감해지셨다. 죽은 영혼들 보기에 부끄럽지 않을까?  <칼럼 바로가기 : 허트 로커와 작은 연못(동아일보, 2010년 4월 12일자)>

 

 <작은 연못> 포스터
<작은 연못> 포스터 ⓒ 민중의 소리
황호택씨가 영화 <작은 연못>을 보고 어떤 감상을 했는지 몇 구절을 살펴보자.

 

6·25 60주년에 헌정된 영화가 '작은 연못'뿐인 데 대해서는 한쪽이 비어버린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작은 연못' 마지막에 나오는 자막들에는 이 영화가 전달하려는 강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미군이 민간인 500여 명에게 12만 개의 총알을 퍼부었다.' '노근리 외에도 알려지지 않은 양민학살이 무수히 많다.' 영화 종결부에서 노근리 참극의 현장에 인민군 소년병이 나타나 "미국 놈들은 다 도망갔쇼. 산 사람 없쇼"라고 소리치는 장면도 해방자와 침략자의 개념에 혼동을 줄 우려가 있다.

 

전쟁이라는 것이 '전쟁과 전혀 상관없는 공간'에서도 얼마나 큰 문제가 야기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영화를 상대로 과연 '국방부 정훈교재'의 내용이 들어가 있는지 없는지를 따진다는 것이 말이 된다 말인가? 

 

미군이 다 죽이고 도망갔는 것을 도망갔다고 하는데 지금 그 '발화자'가 침략자인가 해방자인가를 따져야 된다 말인가? 이게 인간이 할 소리인가? <웰컴 투 동막골>을 보고도 이런 소리가 나온다 말인가? 해방? 침략? 그런 것이 '일상'과 무슨 상관이냐 말이다.

 

양민학살은 남쪽 군인과 우익이 저지른 것도 있지만 북한 인민군과 좌익이 자행한 것도 부지기수다. 북쪽에서는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한밤중에 끌려 나가 이유도 모르고 죽었다. 인민군대는 미군을 몰아낸 해방자가 아니다. 김일성은 스탈린과 마오쩌둥의 승인과 지원을 받아 남쪽으로 쳐내려온 침략자였다. 유엔군의 참전은 김일성의 군대로부터 한국을 구해냈다. 이것이 6·25의 큰 그림이다.

 

그래서? 물론 인민군과 좌익이 자행한 학살도 있었다.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이유도 모르고 죽기도 했다. 그리고 유엔군이 한국을 구했다. so what? 이것이 '노근리에 12만개의 총알을 쏜' 미군이 면죄부를 받아야하는 이유라도 된다 말인가?

 

그렇다면 영화 <작은연못>은 인민군을 해방자로 묘사한다 말인가? '영문도 모른채' 죽어가는 사람들 이야기하기에도 바빠 죽겠는데 이 영화가 그런 '빨갱이' 기질을 보여준다고? 미치지 않고서야 그럴 일은 없다.

 

단지 '그 순간'에 죽어가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분명한 '적'은 미군 아닌가? 영화 <작은 연못>은 6·25의 작은그림에서는 일반적인 '선과 악'의 정의가 무용지물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왜 큰 그림 이야기를 하는가? 그런 이야기는 동아일보 편집부에 좀 해라. "언론이 큰 그림을 과연 그리고 있는가?"라고.

 

노근리 사건은 피아(彼我)를 구분하기 어려운 전쟁의 혼돈 속에서 일어났다. 미군이 피란민 속에 인민군이 섞여 침투하는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전선에 다가오는 피란민을 무모하게 차단하다 빚어진 사건이다. 실제로 인민군이 피란민들 속에 섞여 있다가 한국군과 미군을 기습하는 일도 있었다. 인민군은 민간인을 총알받이로 이용하는 전술도 썼다.

 

이건 인민군 붙잡아놓고 직접 따질 노릇이다. 결국, 지금 말하고자 하는 바는 "재들도 그랬어~ 우리보고만 뭐라 그러지 마!", 딱 이 수준이다. 실제로 양민들 중에 인민군이 1명이라도 있었다면 마치 노근리는 재평가받아야 된다는 식의 이 뉘앙스는 뭔가?   

 

젊은이들이 6·25의 큰 그림을 파악하지 못하고 이 영화만 보고 나면 전쟁의 의미와 미군의 역할에 대해 '성급한 일반화(Hasty generalization)'의 오류를 범할 수 있으리라는 걱정이 생겼다. 어떤 사람이 한 마을을 지나가다가 주민 10명을 만났는데 모두 어린이였다면 "그 마을에 어른이 살지 않는다"고 성급한 결론을 내리는 것 같은 오류 말이다.

 

겁주기는 이제 그만. 제발 젊은이들이 '영화 한편에', 당신이 걱정하는 것처럼 '친북반미좌파'가 될 것이라는 성급한 일반화 좀 그만 하셨으면 한다. <작은연못>은 마을을 지나가다가 어린이 10명을 보고 "지금 10명의 어린이를 보았다"고 말하는 영화일 뿐이다. 여기에는 일반화 할 것도, 성급하게 따져 볼 것도 없다. 그냥 'FACT'만이 있을 뿐이다. 그걸 확인하는 것만 오십년이었다. 더 이상 영혼들을 슬프게 하지 말자.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http://blog.daum.net/och7896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작은 연못#노근리#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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