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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약탈문화재 환수운동을 하고 있는 문화재제자리찾기(사무총장 혜문스님), 와 조계종 중앙신도회 등 민간단체들은 6일, 조선 시대 임금의 관모인 익선관, 용봉문 투구, 갑옷 등이 도쿄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는 것을 박물관 담당자로부터 확인했다고 밝혔다.

우리나라 전형적인 제식(製式)으로 상첨하광식(上尖下廣式)이다. 즉, 위는 좁고 아래로 퍼지면서 하반부에서 대철(帶鐵)로 마무리하였고, 전면에는 전비(前庇)와 미비(眉庇)로 좌우와 후면에는 목가리개를 드리운 형태이다.정개부(頂蓋部)의 반구형 덮개는 삼단三段으로 나누어 일, 이단은 봉황당초를 투조하였고 삼단은 인문(鱗紋)을 음각하였다. 세로로 홈이 파인 구형(球形), 파란(琺瑯) 여의주문투조구형(如意珠紋透彫球形)으로 장식하였다. 정개(頂蓋) 하부와 대철부(帶鐵部) 이상의 중앙부분은 재질은 가죽[皮製]으로써 흑칠(黑漆)을 한 것으로 보이며, 장식은 모두 유제(鍮製)인데 발의 바탕에는 전후좌우의 근철로 나뉘어진 면마다 투조하였다. 전비[前庇: 해가리개]는 연주문(連珠紋)으로 외곽선을 두르고 내부는 봉황당초문을 투조(透彫)했다. 미비는 산형(山形)으로서 옥원판(玉圓板)이 부착되어 있다. 목가리개는 수달피를 둘렀다. 두정(頭釘)은 지름 1.1cm의 갑옷의 두정과 같은 것을 박았으며 각 가닥의 상단에는 여의두문이 세편씩 부착되었다.
▲ 용봉문투구 우리나라 전형적인 제식(製式)으로 상첨하광식(上尖下廣式)이다. 즉, 위는 좁고 아래로 퍼지면서 하반부에서 대철(帶鐵)로 마무리하였고, 전면에는 전비(前庇)와 미비(眉庇)로 좌우와 후면에는 목가리개를 드리운 형태이다.정개부(頂蓋部)의 반구형 덮개는 삼단三段으로 나누어 일, 이단은 봉황당초를 투조하였고 삼단은 인문(鱗紋)을 음각하였다. 세로로 홈이 파인 구형(球形), 파란(琺瑯) 여의주문투조구형(如意珠紋透彫球形)으로 장식하였다. 정개(頂蓋) 하부와 대철부(帶鐵部) 이상의 중앙부분은 재질은 가죽[皮製]으로써 흑칠(黑漆)을 한 것으로 보이며, 장식은 모두 유제(鍮製)인데 발의 바탕에는 전후좌우의 근철로 나뉘어진 면마다 투조하였다. 전비[前庇: 해가리개]는 연주문(連珠紋)으로 외곽선을 두르고 내부는 봉황당초문을 투조(透彫)했다. 미비는 산형(山形)으로서 옥원판(玉圓板)이 부착되어 있다. 목가리개는 수달피를 둘렀다. 두정(頭釘)은 지름 1.1cm의 갑옷의 두정과 같은 것을 박았으며 각 가닥의 상단에는 여의두문이 세편씩 부착되었다.
ⓒ 오구라컬렉션 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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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는 아직까지 발견된 적인 없는 용봉문투구(전체길이 74.1Cm, 둘레 20.0Cm, 유물번호 TK-3445)는 19세기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며 용봉문과 여의주 문양이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 최고의 군사권력자 이거나 제왕의 의전용 투구로 보인다.

이밖에도 도쿄국립박물관에는 1980년대 초 오구라컬렉션이 기증한 에는 조선임금의 정무복식인 곤룡포(袞龍袍)에 갖추어 쓰는 관모(冠帽)로 정무를 볼 때 착용한 정치권력의 최고 상징물인 익선관(翼善冠 :높이 19Cm, 유물번호 TI-446)과 갑옷도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오구라컬렉션은 일제 강점기에 우리 문화재를 가장 많이 약탈해간 대표적 인물이며 재단법인 오구라컬렉션보존회의 설립자 '오구라 타케노스케'가 오랜 세월에 걸쳐 약탈, 수집한 1천1백10건의 고고 자료와 미술 공예품을 총칭하는 말이다.

또한 오구라컬렉션에는  조선 시대 투구와 익선관을 비롯해 경상남도 창녕에서 출토된 신라 시대의 금동 관모, 통일신라 시대의 금동비로자나불입상과 은평탈육갑합 등 우리나라 문화재 중 39점(중요문화재 8점, 중요미술품 31점)이 일본 국가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며 이들 국보급 문화재는 지난 1965년 한-일협정 때 우리정부가 반환을 요청했으나, 개인 소장품이라는 이유로 거부당한 바 있다.

왕?세자의 시사복(視事服)인 곤룡포(袞龍袍)에 갖추어 쓰는 관모이다. 2단으로 턱진 모체 뒤쪽에 매미날개 모양의 소각 두 개가 위쪽을 향해 부착되어 있다. 말총(馬尾)과 가죽같이 보이는 종이에 옻칠을 하여 모체(母體)를 만들고, 그 겉에 진보라색 추사(皺紗)를 발라 붙였으며, 우익(羽翼)은 가늘게 쪼갠 대나무로 형체를 만들어 같은 천을 붙였다.
▲ 익선관 왕?세자의 시사복(視事服)인 곤룡포(袞龍袍)에 갖추어 쓰는 관모이다. 2단으로 턱진 모체 뒤쪽에 매미날개 모양의 소각 두 개가 위쪽을 향해 부착되어 있다. 말총(馬尾)과 가죽같이 보이는 종이에 옻칠을 하여 모체(母體)를 만들고, 그 겉에 진보라색 추사(皺紗)를 발라 붙였으며, 우익(羽翼)은 가늘게 쪼갠 대나무로 형체를 만들어 같은 천을 붙였다.
ⓒ 오구라컬렉션 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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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구라컬렉션은 1980년대 초, 오구라의 아들에 의해 도쿄 국립박물관에 기증되었으므로 더 이상 개인 소장 유물로 볼 수 없으며, 일본은 지난 2002년 평양 선언을 통해 북한과 문화재 반환 문제에 대해 협력을 약속한 상태다. 또 문화재제자리찾기, 조계종 중앙신도회 등은 지난 2008년과 2009년 평양을 방문해 오구라 컬렉션의 반환을 위해 남북공조를 구축하기로 합의했고, 북한도 북.일 수교 과정에서 오구라 컬렉션의 반환을 요구하겠다고 나섬에 따라 앞으로 귀추가 주목된다.

혜문스님은 "조선시대 군사권력의 최고상징인 투구와 갑옷, 정치권력의 최고 상징인 왕관(익선관)이 도쿄 국립박물관에 아직까지 인질처럼 보관되어 있다는 사실이 처연하다"며 "이 유물들이 정상적인 방식으로 전달되었다고는 인정할 수 없는 만큼 앞으로 문화재제자리 찾기 등은 오구라컬렉션의 수집 경위 등에 대해 관계 전문가들과 면밀히 상의한 뒤, 대응 방안을 꾀할 생각"이라며 문제를 제기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형태나 재질, 장식적인 면에서 볼 때 왕실의 최고위층인  왕이나 왕세자가 착용한 것임을 짐작하게 하는 갑옷
▲ 갑옷 형태나 재질, 장식적인 면에서 볼 때 왕실의 최고위층인 왕이나 왕세자가 착용한 것임을 짐작하게 하는 갑옷
ⓒ 오구라컬렉션 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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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오구라컬렉션, #용봉문투구, #익선관, #문화재제자리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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