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앤디 워홀이 얼마나 유명하기에 많은 사람들이 찬사를 보낼까? 신문과 인터넷에서 쏟아지는 앤디 워홀에 대한 글을 접하며 '나도 앤디 워홀전에 꼭 한번 가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서울 시립미술관에서 4월 4일까지 열린 '앤디 워홀의 위대한 세계전'을 놓치고 싶지 않아 전시회 마지막 날 찾아갔다.

 

엄마와 함께 서울시청역에 내려 덕수궁 방향 골목길로 들어가니 서울시립미술관이 나왔다. 처음 가보았지만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입구에 들어서니 미술관 들어가는 길부터 예술적이었다. 조경이 잘되어 있었고 계단에 어둠을 밝혀주는 전등이 박혀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나는 앤디 워홀이 팝아트라고해서 언뜻 POP(음악)을 생각했는데 앤디 워홀은 현대미술의 거장이었다. 팝아트는 '현대의 대중문화와 소비사회를 상업적인 기법으로 과감하게 복제하는 것'이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인지 이 전시회에는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 상대성 이론의 아인슈타인, 스타 마릴린 먼로, 중국의 정치 지도자 마오쩌둥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물이 많이 전시되어 있었다. 친근한 인물들이 나오니 더 호기심이 갔다. 워홀의 작품은 처음 보았지만 낯설지 않았다.

 

워홀은 얼굴부터 예술가 기질이 다분했다. 워홀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제작했다는 자화상을 보면 머리가 사방으로 뻗쳤고 볼이 홀쭉하고 눈빛이 매섭다. 어딘가에 사로잡힌 듯한 느낌이다. 워홀은 우리 외할아버지와 같은 1928년생이었다. 외할아버지는 올해 83세로 아직 살아계시는데 워홀은 59세에 사망했다고 한다.

 

앤디 워홀은 미술을 비롯, 영화제작자, 음반제작자, 작가 출판인, 방송인에 이르기까지 여러 분야를 개척해서 성공을 거두었다니 재능이 많은 것 같다. 가수가 사회도 보고 연기도 하듯이 예술은 공통분모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워홀이 우리 외할아버지처럼 아직 살아있다면 얼마나 더 치열한 삶을 살았으며 훌륭한 작품을 많이 남겼을까?

 

왜 그 많은 소재 중 코카 콜라일까

 

나는 앤디 워홀이 실제 인물을 마주 보고 작품을 만드는지 궁금했다. 그런데 워홀의 주요 작품 제작과정을 보니 자료와 사진, 도서관을 샅샅이 뒤져 적당한 이미지를 찾아낸다고 한다. 그 다음 포토스크린 이미지 위에 얼굴 윤곽과 비슷하게 드로잉을 그려 넣었다고 한다. 하긴 작품을 위해 실제 인물을 만난다 해도 단 몇 분일 거다. 작품이 완성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이런 기법을 사용할 것 같다.

 

코카 콜라가 등장한 작품도 있었다. 왜 그 많은 소재 중 코카 콜라인가가 궁금했다. 콜라는 워홀의 작품 중 가장 상업적인 것을 상징한다고 한다. 콜라는 예술의 주제로 적합하지 않지만 음료수병을 소재로 삼아 대량 생산과 소비로 동질화되는 미국사회를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대통령도 인기스타도 거지도 똑같은 콜라를 마시기 때문에 콜라는 만인 평등을 나타낸다니 참 기발한 아이디어다.

 

워홀의 어머니 줄리아 워홀라의 초상화도 전시되어 있었다. 어머니는 어린 시절 몸이 약한 워홀이 집에만 있자 만화책과 미술책을 사다주며 격려했다고 한다. 미술에 대한 재능을 발견하고 끝까지 밀어준 덕분에 아들은 팝아트의 신화를 이룬 것 같다.

 

세상은 순수예술가가 아닌 상업디자이너로 출발해 현대예술의 새로운 흐름을 선보인 그를 두고 가히 혁명적이라고 평했다. 이런 그를 두고 지나치게 상업적이라는 비판도 제기되었다고 한다. 어떤 일에서나 찬반은 있다. 대중들에게 친숙한 것을 소재로 한 전시회를 보니 지루하지 않았다. 이제야 팝아트가 뭔지 알겠다. 그 유명한 앤디 워홀의 세계를 놓치지 않아서 뿌듯하다. 

덧붙이는 글 | 김가람은 고등학생 시민기자입니다


태그:#팝아트의 제왕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