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횡성 야산 어느 산자락에는 봄이면 피어나는 '보랏빛 처녀치마'가 있습니다. 강추위와 더불어 춘삼월까지도 폭설이 내려 지난 겨울은 참으로 혹독한 계절이었을 것입니다.
몇 년째 봄이면 그와 눈맞춤을 하곤 합니다. 무슨 까닭인지는 모르겠지만 해마다 개체수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줄어들고 있습니다. 사람의 손길이 거의 타지 않은 곳임에도 뭔가 그들의 삶을 위협하는 것들이 있는가 봅니다.
'처녀치마'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레이스를 닮은 보랏빛 꽃모양도 그렇겠지만, 사철 푸른 이파리 역시도 한 몫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올해는 여느해와 다르게 처녀치마의 이파리가 다 뜯겨나갔습니다. 맨 처음에는 어떤 몰상식한 사람이 먹지도 못할 이파리를 다 뜯어간 줄 알았습니다.
알고보니 지난 겨울이 얼마나 혹독했는지 어지간해서는 뜯어먹지 않았을 처녀치마 이파리를 산짐승들이 뜯어먹었던 것입니다. 그 산짐승은 고라니로 추정이 되는데, 폭설이 자주 내려 그만큼 먹을 것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파리만 뜯겨나간 것이 아니라, 이어지는 추위로 꽃대도 짧습니다. 그야말로 숏다리 처녀치마입니다. 치마도 다 뜯기고, 짧고 굵은 다리로 우뚝 서있는 처녀치마, 그러나 꽃잎은 여느해보다 진한 보랏빛입니다.
몸의 일부는 산짐승의 먹이가 되고, 추위로 제대로 꽃대를 올리지 못했지만 밋밋한 보랏빛 꽃을 피운 롱다리 처녀치마보다 훨씬 더 예쁩니다.
간혹 비탈진 곳, 그리하여 산짐승이라도 똑바로 서 있지 못할 곳에 있는 처녀치마는 이파리도 성합니다.
산짐승들이 꽃대까지 잘라먹기 전에 봄이 온 것이 천만다행입니다. 겨우내 배고파 평소에는 먹지도 않았을 처녀치마 이파리를 먹었던 산짐승들이 배탈이나 난 것은 아닌지, 이제는 다른 풀로 허기를 면하기는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추운 겨울, 그들에게는 고난의 계절이었을 것입니다. 쌓인 눈 애써 녹여 푸른 이파리를 내놓았더니만, 초록에 배고픈 산짐승들이 뜯어먹으니 또 얼마나 아팠을까요.
그러나 그들은 기어이 피어났습니다. 작지만 야무지게, 단단하게 더 진한 빛깔로 피어났습니다.
꽃, 그 속에 새겨진 수많은 삶의 흔적들은 사람의 삶과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문인 김동리는 <꽃과 소녀와 달과>에서 '그렇다, 내가 꽃을 보고 그렇게 충격을 받는 것은 거기서 곧 신의 얼굴을 보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한번쯤, 들에 피어나는 꽃들에게서 '충격'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충격이든 행복한 감정이든 꽃 속에 새겨진 신의 얼굴을 한번이라도 본다면 자연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질 것입니다.
수많은 꽃들이 피어나는 계절임에도 그들이 피어나든 말든 바쁘게 살아가는 이들이 얼마나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는 의문입니다.
이번 봄에 만난 숏다리 처녀치마, 롱다리 처녀치마보다 훨씬 예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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