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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윤수 전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자료사진)
 김윤수 전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자료사진)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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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물론이고 집안 친척, 친구 계좌까지 다 뒤져서 심적 고통이 이만저만 아니었죠. 대학 제자에게 돈을 빌려줬다가 받았는데 그게 부정한 돈인 것처럼 수사를 해서. 물론 아니라는 게 밝혀졌지만…."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문화부) 장관을 이긴 김윤수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의 회상이다. 그는 13일 자신을 해임한 국가 처분이 부당하다는 법원 판결을 받았다.

서울고법 행정9부(재판장 박병대)는 김 전 관장이 국가를 상대로 낸 계약해지무효확인 청구소송에서 "채용계약 해지는 무효"라면서 "해지 이후 계약기간 만료시까지의 급여 합계 8193만 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정권 출범 이후 계속돼 온 문 기관장 물갈이 인사에 제동을 건 것이다.

이에 대해 김 전 관장은 "제가 누명을 쓰고 불명예스럽게 나갔다, 사람들이 '부정을 저질렀구나' 생각했을 텐데 이번에 (판결로) 체면이 섰다"고 소감을 말하면서 웃었다.

"문화부에서 날 상대도 안 했다"

 유인촌 문과체육관광부 장관이 지난 2008년 4월 1일 오후 경기도 과천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업무보고를 받기 위해 도착하고 있다.
 유인촌 문과체육관광부 장관이 지난 2008년 4월 1일 오후 경기도 과천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업무보고를 받기 위해 도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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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김윤수 전 관장은 김정헌 한국문화예술위원장과 함께 "지난 정부의 정치색을 지닌 기관장"으로 찍혔다. 유인촌 장관은 2008년 3월 공개석상에서 김 전 관장과 김 위원장을 겨냥해 "새 정권이 들어섰는데도 자리를 지킨다면 지금껏 살아온 인생을 뒤집는 것"이라고 자진사퇴를 종용했다.

김윤수 전 관장은 당시 상황에 대해 "나도 미술관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고 위(문화부)의 사람들은 아예 날 상대를 안 했다, 밑에 있는 행정관 불러서 보고 받았다"고 전했다. 김 전 관장이 김장실 문화부 차관으로부터 "금년(2008년) 말까지 결심해 달라"는 통보까지 받았다는 주장은 이미 잘 알려진 내용이다.  

그래도 그는 물러나지 않았고, 그 때문에 검찰과 관세청은 국립현대미술관 수사에 나섰다. 문화부는 "국무조정실 조사결과에 따른 조사로 퇴진 압력 차원은 아니"라고 했지만, 김 전 관장은 2008년 11월 결국 계약해지를 통보받았다. 그리고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김윤수 전 관장은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그동안 자신이 버텼던 이유를 두 가지로 설명했다. 첫 번째는 '문화 선진화'였다.

"지금은 저 사람들이 '노무현 정부 때의 사람은 나가야 한다'고 이야기했는데, 우리가 주장하는 것은 권력기관은 그럴 수 있어도 문화기관은 독립적·중립적으로 일을 계속 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화 쪽은 전문인이기 때문에 러시아나 미국·프랑스·독일은 다 임기를 보장한다. 이 정부가 이른바 선진화를 표방하면서 하는 짓거리는 오히려 과거 시절처럼 후퇴하고 있다."

두 번째 이유는 '민주화운동에 대한 임무'다. 그는 "70~80년대 대학을 쫓겨나는 수난도 겪었고 민주화의 중요한 단계에서 말석에나마 있었는데 (자리를) 지키는 게 임무라고 생각했다"고 강조했다.

김 전 관장은 1973년 장준하·백기완 선생이 주도한 '개헌청원 30인 선언'에 동참한 것을 시작으로 민주화운동에 뛰어들었고, 민족미술인협의회와 민족예술인총연합회 등에서 활동했다.

그는 자신과 함께 '적출'됐던 김정헌 위원장과도 최근 만난 적이 있는데, 그 때도 "이 정부가 너무 무리하게 사람을 내보내는 게 문제"라는 이야기를 나눴다. 농담 삼아 "이번 기회로 문화예술위원회가 수억 원어치 홍보가 됐다"는 말도 나왔다고 한다.

'민주화운동 말석에 있던 사람'의 임무

 지난 2008년 4월 1일 오후 업무보고를 받기 위해 경기도 과천시 국립현대미술관에 도착한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현관에서 기다리던 김윤수 국립현대미술관 관장과 악수를 하고 있다.
 지난 2008년 4월 1일 오후 업무보고를 받기 위해 경기도 과천시 국립현대미술관에 도착한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현관에서 기다리던 김윤수 국립현대미술관 관장과 악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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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수 전 관장은 지난해 7월 1심에서 패소한 뒤 항소심 도중 계약기간(2009년 9월)이 끝나자 미지급 급여를 청구하는 쪽으로 청구 취지를 바꿨다. 따라서 문화예술위원회 같은 '한 지붕 두 관장'이 만들어지진 않는다.

문화부는 약 넉 달 동안 국립현대미술관장직을 공석으로 비워두다가 지난 2009년 2월 배순훈 전 정보통신부 장관을 임명했다. 비전문 인사가 미술관장을 맡은 게 이례적이라서 '국립미술관 민영화 수순'이라는 우려도 나왔다. 배 장관은 대우전자 사장 시절 유 장관과 함께 '탱크주의' 기업광고에 출연하기도 했다.

김 전 관장은 이후 일정에 대해 "그동안 미술관 때문에 개인 일을 못했는데, 그림도 좀 보고 책도 좀 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유인촌 장관에게 패배 실어나른 <여행용 가방> 진실은...
지난 2008년 11월 문화부가 밝힌 김윤수 전 관장 해임 사유는 미술품 구입 과정에서의 규정 위반. 마르셸 뒤샹의 <여행용 가방>을 구입하면서 거래사에 미리 가부를 약속했고 충분한 가격조사도 없었다는 것이다. 우편거래로 작품을 들여오면서 세관에 신고하지 않은 것도 문제가 됐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김 전 관장이 미술품 구입 공문을 보내면서 '진위 확인'과 '가격 협상'이 선행돼야 한다고 조건을 제시했고, 당시 미술품 중개사가 다른 미술관 등에 작품을 매도할 가능성이 있었다"고 밝혔다.

또한 "이 작품은 오로지 한 점이어서 시장가격이 존재하지 않는다, 중개사가 제안한 견적 가격을 기준으로 예정 가격을 결정하는 것이 위법하다고 볼 수 없다"고 문화부 주장을 반박했다.

거래 방식에 대해서도 "해외미술품 거래에서는 우편거래가 상당히 일반화됐고, 미술품은 무관세 품목으로 부당이득을 얻으려 신고를 안할 이유도 없다"고 김 전 관장의 손을 들어줬다.

당시 국립현대미술관은 마르셀 뒤샹 서거 40주년을 기념해 작품전을 열 예정이었지만, 김윤수 전 관장 해임 이틀 뒤 전시를 취소했다.


#김윤수#유인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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