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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일보가 4월 14일자 1면톱으로 단독 보도한 문제의 기사
조선일보가 4월 14일자 1면톱으로 단독 보도한 문제의 기사 ⓒ 조선일보

<조선일보>가 지난 10일 치러진 9급 공무원 시험을 꼬투리잡고 나섰습니다. 국가공무원을 뽑는 공채시험에 전교조 발기선언문을 출제한 것이 문제라는 겁니다. 조선일보가 단독 보도한 14일자 톱기사가 그러합니다.

 

조선일보는 <9급 공무원 공채 시험에 '전교조 발기선언문' 논란> 제목을 단 기사에서 "정치적 중립을 추구해야 할 공무원을 선발하는 시험의 문제에 과연 전교조에 대한 내용까지 출제하는 것이 적절하냐는 것이 논란의 핵심"이라며 "국가공무원 선발 시험이 너무 좌편향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무원이 되려면 전교조 창설 선언과 그 시기까지 공부해야 한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는 응시자 조모씨의 말을 곁들였습니다.

조선일보의 비난은 다음날인 15일에도 계속됐습니다. 조선일보는 <공무원 시험에 전교조 선언문 발표 年度 문제 낸 행안부>라는 제하의 사설을 통해 "전국의 젊은이들에게 앞으로 공무원이 되려면 전교조의 설립연도·역사·이념에 대해서 확실히 공부하라고 알리려는 뜻인 모양"이라고 행안부를 거듭 질타하면서 "많고 많은 선언문·발표문 중에서 전교조 선언문을 골라 그 설립연도를 맞히라는 문제를 출제했다니 그 부처엔 눈이 제대로 박힌 사람이 그렇게 없나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고 공세의 수위를 높였습니다.

그러나 바르게 말하면, 이는 말도 안 되는 어거지 내지는 비루한 흠집내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선, 전교조의 1989년 '발기 선언문' 일부를 1976년 3월 재야단체의 '민주구국 선언문', 1981년 1월 민정당 창당 선언문, 1987년 6월 '호헌 철폐 국민대회 선언문' 등과 함께 나열한 것이 잘못이라면, 같은 논리로 한나라당의 뿌리인 민정당 창당 선언문을 인용한 것도 잘못이라고 지적해야 마땅합니다. 그래야 형평에 부합합니다.

게다가 문제의 난이도 또한 조선일보가 염려하는 것처럼 전교조를 부러 공부하지 않아도 능히 맞출 수 있게끔 무난하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시기순으로 바르게 나열된 것을 묻는 보기들 가운데, '정의사회 구현'과 '4.13 호헌조치', '긴급조치 철폐' 등은 웬만한 상식만 있으면 이것들이 각각 '5공 초기-5공 말기-박정희 유신시대'와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을 정도입니다. 이마저 모른다면 공무원 되기에 상식이 턱없이 부족하지 않나 의심해 봐야 합니다.

그러나 전교조 발기선언문 인용을 꼬투리잡은 조선일보가 문제인 것은 비판하지 않아도 될 것은 비판하면서 정작 비판해야 할 것은 비판하지 않는다는데 있습니다. 지난 해 치러진 9급 공무원 시험은 문제지 유형에서부터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녹색+성장'을 본따서 짓는 등 정부 홍보 일색이었지만, 놀랍게도 조선일보는 이에 대해 눈길 한번 주지 않았습니다.

그 가운데 백미는 조선 21대 왕인 영조의 업적을 묻는 국사 문제였습니다. 정답이 무엇이었는지 아십니까? 바로 이명박 대통령과 관련 있는 '청계천 준설'이었습니다. 시험 직후 응시자들이 "문제를 읽지도 않고 보기에 청계천이 있어서 무조건 답으로 했다"고 말했다고 하니, 이쯤 되면 말 다 한 거 아닙니까? (참조. 서울신문, <공무원시험이 정책 홍보의 場?>, 2009-04-16, A24)

폐일언 왈, 조선일보에게 '전교조 알레르기'가 있다는 건 대한민국 공지의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전교조의 'ㅈ'자도 발음하지 못하도록 입을 틀어막는 건, 한 마디로 언론의 억압이고 횡포이며 압제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누가 조선일보에게 이런 권한을 주었습니까? 

글을 맺기 전에 조선일보가 김대중 정부 시절에 내뱉은 사설 한 대목을 소개합니다. 조선일보 창간 80년 기념사설인 <조선일보의 정도>에서 스스로 다짐한 말인데, 아마 이걸 보시면 입이 절로 비틀어지면서 웃음이 스물스물 기어나올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우리와 다른 견해, 다른 접근 방식을 결코 사악하게 보지 않음을 분명히 밝힌다. 이 나라를 이끌어가는 이념과 정신은 다양할 수 있으며 다양한 견해가 각각 나름대로의 비중을 차지하며 존재하는 것이 건강한 사회다. 조선일보는 조선일보가 보는 '길 '을 제시하고 많은 사람들의 동의를 구하는 것뿐이며 우리 주장과 다른 것의 존재 자체를 제거하려는 식의 독단과 독선을 배척한다..."


#9급 공무원 시험#조선일보와 전교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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