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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1월에 심은 산마늘밭에 진달래 꽃이 피었다. 진달래 꽃의 정서는 영변의 약산 진달래 때문인지 우리와 잘 어울린다.
▲ 산마늘과 진달래 작년 11월에 심은 산마늘밭에 진달래 꽃이 피었다. 진달래 꽃의 정서는 영변의 약산 진달래 때문인지 우리와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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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 다음 주는 식목일이 포함된 주일이라 나무 이식을 전문으로 하는 인부를 구하기 어렵네요. 굴착기 수배도 힘들 것 같고요."

토요일 아침에 후배 농장에 가서 이식할 소나무를 둘러보고 작업 일정을 조율한 다음 시랑헌으로 돌아와 준비하고 있는 나에게 전해온 소식이다. 다음 주에는 소나무와 편백나무를 시랑헌의 빈 터에 조림할 계획인 나에겐 여간 실망스러운 얘기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나무심기 좋은 시기를 그냥 보낼 순 없었다.

혹시 시랑헌 뒷산에 옮겨 심을 만한 어린 편백나무 묘목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답사에 나섰다. 묘목을 찾아 산속을 헤매다 보니, 작년 11월에 숱한 사연을 만들면서 심은 산마늘밭에 이르렀다.

산마늘은 눈 속에서 싹이 트고 이른봄에 자라는 약초다. 지난 2월 고로쇠수액 채취 작업 때 한 번 올라와 눈 속에서 삐쭉삐쭉 올라오는 새싹을 확인했다. 그 사이 이렇게 자랄 줄 몰랐다. 반갑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다.  산마늘밭은 시랑헌에서 많이 떨어진 외진 곳이라 일에 쫓기다 보면 가 보지도 못하고 그냥 대전으로 돌아오기 십상이다.

산마늘 8000촉을 심었고 그 싹이 산 능선 한 자락을 덮고 있으니 참 보기 좋다. 그 위에 우리 정서와 잘 어울리는 진달래 꽃이 무리지어 피었다. 산골생활 재미가 이런 것인가 싶다. 내가 해 놓은 일이라는 사실이 그저 놀랍고 대견스럽다.

농산물도 그렇지만 임산물도 심어 놓으면 자라는게 아니다. 끊임없이 돌보아주면서 사랑해야한다. 만물의 법칙이다.
▲ 산마늘밭 농산물도 그렇지만 임산물도 심어 놓으면 자라는게 아니다. 끊임없이 돌보아주면서 사랑해야한다. 만물의 법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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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불꼬불 만든 산마늘밭 길 따라 걷다가 진달래 꽃 아래 주저앉아 산마늘 한 잎 따서 입에 넣고 씹어 보니 약초이면서 마늘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향긋한 마늘 냄새가 입안에 가득하다. 콜라 맛도 아니고 피자 맛도 아니다. 불로초 맛이 있다면 산마늘 쪽에 가까울 것 같다.

잣나무 이식

집사람에게서 전화가 왔다. 밥은 잘 먹고 있으며 몸은 좀 어떠냐고 묻는다. 아들의 혼사를 앞둔 사람은 행동거지에 신중해야 한다면서 이번 시랑헌 일에 따라 나서기를 거부했다. 나는 나무를 심는 일은 때가 있는지라 결혼식 당일 30분 동안 남에게 보이기 위한 얼굴 관리 때문에 일년의 세월을 기다릴 수 없다고 하면서 집사람을 남겨둔 채 혼자 내려와 일하고 있는 중이다.

3일째 김치 한 가지 반찬에 현미 밥을 먹었다. 오늘은 너무 허기져 돼지고기를 사와 김치찌개를 만들어 막걸리 한잔에 곁들이고 있는 중이었다. 조금은 외롭기도 하고 청승맞기도 한 것 같아 산마늘 소식을 전하면서 "당신이 필요하다"고 했다. 집사람은 전화를 마치자마자 길을 나선 모양이다. 9시가 조금 넘자 30분 후면 남원 버스터미널에 도착한다는 연락이다.

다음날 아침, 집사람에게 시랑헌에는 이식할 만한 크기의 편백나무 묘목이 많지 않고, 있다고 하더라도 굴착기가 접근할 수 없어 작업 여건이 좋지 않다는 사정을 알려주면서 산림청에서 운영하는 나무시장에서 묘목을 구입해다가 심자고 했다.

집사람은 나무시장 묘목은 너무 적고, 7~8년 된 묘목은 너무 비싸서 어려움이 있다고 하면서 산마늘밭 좌측 능선에 자라고 있는 2~3m 크기의 잣나무 묘목으로 대체하는 것이 어떠냐고 묻는다.

숲에서 자연발아하여 자란 어린 잣나무 묘목들
▲ 잣나무 묘목 숲에서 자연발아하여 자란 어린 잣나무 묘목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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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사람이 말하는 곳에 가 보니, 큰 잣나무 숲 아래 씨앗이 떨어져 자연 발아된 묘목들이 자라고 있다. 원하는 크기의 묘목 200여 주는 쉽게 구할 수 있을 것 같다. 문제는 뿌리와 흙이 분리되지 않게 분(盆)을 뜨는 것과 트럭이 있는 곳까지 옮기는 것이다.

능선의 중간부근까지 산마늘 밭 진입로를 이용하고 이곳에서 좌측으로 30m 정도 산길을 만들면 잣나무 묘목이 있는 곳까지 도달할 수 있을 것 같다. 군에서 사용하는 야전삽을 이용하여 길을 만들어 보니 흙이 부드럽고 비옥하여 별 어려움 없이 길을 낼 수 있었다. 이 주변에 씨앗이 발아하여 훌륭한 묘목으로 자란 사연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나무 분을 뜨는 것을 몇 번 보기는 했어도 직접 내 손으로 해본 경험은 없다. 작년 편백나무 같이 또 모두 고사시키지 않을까 걱정된다. 그러나 작년에 나무를 이식한 사람들은 최고 전문가들이라는 사람 5명이 이틀간 작업한 결과이다. 이들의 성적표가 0점이라면 내가 한다고 해도 더 낮은 점수를 받을 가능성은 전무하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인터넷에서 분을 뜨는 방법을 충분히 읽히고 현장에 섰다. 처음 시도한 분은 너무 크게 떴는지 나 혼자 울러 매고 산길을 나올 수 없다. 집사람과 같이 낑낑대며 산마늘 진입로까지 끌고 나왔으나 분이 깨져 버렸다. 이대로 물러설 수 없다. 몇 차례 반복 시도한 결과 쓸 만한 크기와 형태를 갖춘 분을 떴다.

이식한 묘목을 살리기 위해서는 뿌리와 흙이 분리되지 않도록 해야한다.
▲ 분뜨기 이식한 묘목을 살리기 위해서는 뿌리와 흙이 분리되지 않도록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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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 위에 매고 옮길 수 있을 정도 크기로 요령 있게 연장을 사용하여 분을 떠간다. 숫자가 늘어가면서 나의 솜씨도 능숙해졌다. 조금 성급한 결론이 될 줄 몰라도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내가 분을 뜨고 이식한 나무들은 생존율이 높을 것이란 자신이 선다.

묘목을 심고 나면 뿌리와 흙이 밀착하도록 물을 주는 것과 활착 중인 뿌리가 바람에 흔들리지 않도록 지지대를 대주는 중요한 일이 남는다. 우리가 잣나무 묘목을 심은 곳은 사람이 바로 서 있기 힘든 심한 경사면이다. 물이 고일 정도로 웅덩이를 파주는 일도 지지대를 대주는 일도 평지와 전혀 다르다.

실정에 맞는 물주기를 위해 난방 배수관으로 사용하는 엑셀을 70cm 길이로 자르고 끝을 죽창 같이 날을 새웠다 호수로 연결한 부위에 개폐장치를 부착하니 쓸 만한 물주는 장치가 되었다. 날카로운 엑셀로 분의 밑부분까지 찔러 박고 급수 스위치를 열면 물이 밑부분부터 차올라 빈 공간의 공기가 빠져나가는 효과적인 물주기가 된다.

경사면의 지지대를 설치하는 작업은 마지막 날까지 집사람과 의견 일치를 보지 못한 부분이다. 집사람은 한 번 심기가 힘드니 안전하게 한 그루당 3개의 지지목을 엮어 단단히 대라는 것이고, 나는 작년에 대전 집에서 향나무를 이식하면서 지지대로 사용했던 15mm X 1m 철근을 뽑아 다시 사용하자는 것이었다.

집사람이 끝까지 버티면 대부분 내가 진다. 다음날이 월요일이라 대전으로 올라와야 돼 지지목 설치를 못했으니 월요일 하루 휴가를 연장하고 한 그루당 3개씩 지지목을 설치하기로 했다. 오늘이 막노동꾼이 된 지 9일째이다. 그 동안 일이 끝나면 편백욕조에서 반신욕을 하는 호사를 누리고 숙면을 취하고 나면 어느 정도 회복되어 다음날도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은 시랑헌 뒷켠에 있는 목욕탕까지 갈 힘도 없다.

분이 깨지지 않게 운반하는 것도 심고 관리하는 것과 같이 중요한 과정이다.  한나절 일한 분량씩 산마늘 밭 입구에서 걷는 속도로 시랑헌 집터까지 조심스럽게 옮겼다.
▲ 이식을 위한 묘목 분이 깨지지 않게 운반하는 것도 심고 관리하는 것과 같이 중요한 과정이다. 한나절 일한 분량씩 산마늘 밭 입구에서 걷는 속도로 시랑헌 집터까지 조심스럽게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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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한 야간 작업을 해야했던 사연

핸드폰 문자 메시지를 확인한 집사람의 표정이 달라진다. 철근지지대로 야간작업을 하고 내일 아침에 대전으로 올라가자는 것이다. 집사람 모임 날짜가 내일로 변경된 모양이다. 모임에 참석하여 아들 결혼 청첩장을 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막걸리까지 한 잔했으니 몸도 흔들린다. 저녁 때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이미 땅을 적셨다. 먹물 같은 어둔 밤의 야간 작업이다. 서 있기도 힘든 경사면의 젖은 땅 위에서……

고어텍스 등산복을 둘러쓰고 집사람이 비추는 손전등 빛으로 50여 개의 향나무 철근지지대를 뽑고 나니 9시가 넘었다. 집사람은 비가 이렇게 오니 오늘 심은 나무는 물을 줄 필요가 없지 않느냐고 묻는다. 비가 70 mm 이상 충분히 내려 묘목의 밑바닥까지 적신다는 확신이 없다면 물을 충분히 줘야 하는 이유를 다시 한번 강조했다. 

그 후, 나와 집사람은 트럭의 전조등 불빛과 포크레인 작업등 그리고 2개의 손전등 불빛으로 험한 작업여건에서 서너 시간 동안 철근지지대를 박는 일과 물주는 일, 지지대 묶는 일을 휴식 없이 계속했다. 

나는 야전삽 날 반대쪽 곡괭이를 아이스바일처럼 사용하면서 작업을 했지만 셀 수 없이 슬립을 했으며 콘크리트 도로까지 두 번 추락했다. 비명을 지르지도 않았고 집사람과 따로 떨어져 일을 했기 때문에 집사람이 알아채지 못했다. 간신히 사나이 체면을 유지할 수 있었다. 아마 집사람도 미끄러지고 넘어진 횟수가 나보다 적지는 않았을 것이다.

'여자는 약할지 몰라도 어머니는 강했다'


태그:#잣나무, #산골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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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연구단지에 30년 동안 근무 후 은퇴하여 지리산골로 귀농한 전직 연구원입니다. 귀촌을 위해 은퇴시기를 중심으로 10년 전부터 준비했고, 은퇴하고 귀촌하여 2020년까지 귀촌생활의 정착을 위해 산전수전과 같이 딩굴었습니다. 이제 앞으로 10년 동안은 귀촌생활의 의미를 객관적인 견지에서 바라보며 그 느낌을 공유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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