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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가에 분식점을 낸 출판사 사장 부부

내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글을 써서 한 권의 책으로 출판하기가 매우 힘들다. 출판사로서는 최소한 종이 값이나 인쇄비 등 제작비를 건질 수 있다는 판단이 서지 않는 한 웬만한 저자의 원고에 덥석 달려들지 않기 때문이다. 책이 출판되어 서점에 나가 독자가 정가를 주고 책을 사게 하는 일이 여간 어렵지 않다. 

한 중견언론인이 출판사를 차려 수년 동안 20여 권의 양서를 냈건만 책이 예상 외로 팔리지 않자 당신 아파트는 물론 아내의 혼수 패물까지 처분하여 종이 집과 인쇄소에 밀린 빚을 갚았다. 그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출판사 문을 닫고 먹고 살기 위해 부부가 대학가에서 분식점을 열었다. 또 한 문인은 출판사 경영 몇 해 만에 신용불량자가 되어 어쩔 수 없이 시골로 잠적하는 일도 내 눈으로 보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체로 책 사는데 익숙지 않다. 영화는 잘 보는데 견주어 비슷한 값의 책을 사는 데는 매우 인색하다. 여기에는 여러 요인이 있을 것이다. 예로부터 책 읽는 습관이 익숙지 않다든지, "책 도둑은 도둑이 아니다"라 하여 저작권을 아예 무시하거나, 책을 서점에서 사보기보다는 남의 책이나 도서관이나 대여점에서 빌려보는 풍조가 우리사회에 가득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거기다가 일부 정치인들이 선거를 앞두고 자기선전을 위한 자서전 같은 책을 마구 찍어 공짜로 돌리는 바람에 일반인들은 책을 거저 얻는데 이력이 났기 때문일 것이다.

독자들이 서점에서 책을 사줘야 저자도 출판사도 서점도 산다. 저자는 그 책을 쓰기 위해 엄청난 정신노동뿐 아니라 자료수집과 답사를 위해 숱한 경비가 들어갔다. 책이 팔려 인세로 그 대가가 나와야 저자는 다음 책을 쓸 수 있다. 출판사도 마찬가지다. 책이 팔려야 출판사는 종이 값도 인쇄비도 뽑고 직원들의 월급도 줄 수 있고 다음 책을 낼 수가 있다. 서점도 마찬가지다. 책이 팔려야 서점을 제대로 운영할 수가 있다.

내가 한 출판인에게 들은 바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창업하고 가장 많이 폐업한 업종이 출판사라고 한다. 이런 풍토로서는 문화선진국이 될 수가 없다. 점차 전국 중소서점은 거의 문을 닫고 있는 실정이다.

책의 원료는 생나무다

이런 출판문화는 독자에게만 문제가 있는 게 아니다. 저자에게도, 출판사에게도 그 책임이 있다. 저자는 책을 사지 않는 독자를 원망할 일에 앞서 독자가 읽고 싶은 책을 써야 하고, 출판사는 독자들이 책을 읽고 갖고 싶을 정도로 책을 잘 만들어야 할 것이다. 나는 일본 여행 중 서점에 가보면 그들 출판사가 책을 어찌나 잘 만들었는지 일본어를 몰라도 사고 싶을 정도로 책을 아담하고 예쁘게 만들었다.

누가 책을 가장 많이 살까? 그 답은 저자다. 새 책을 출판하면 저자는 출판사로부터 10~20권 정도의 저자 몫을 받는다. 하지만 저자는 언저리 여러 지인들에게 책을 보내자면 그게 부족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저자는 출판사나 서점에서 책을 사서 미처 전하지 못한 지인들에게 보낸다. 또 출판사에서 판매부진으로 인세를 받지 못할 때는 인세 대신 책으로 떠안으니 저자가 '울며 겨자 먹기'로 책을 가장 많이 사는 꼴이다.

1989년 첫 작품집을 낸 이래 20여 권의 책을 내면서 처음에는 나도 그랬다. 친구들이 책을 냈다는 소문을 듣고는 "얘, 책 한 권 보내주라"라는 전화를 받고는 "얘, 서점에 가서 한 권 사줘라"는 말을 차마 못하고, 내가 서점에 가 책을 사서 우편으로 보낸 일이 숱하게 많았다.

그 뒤 그 친구를 만나면 책의 내용에 대한 얘기보다는 "책 많이 나가냐?"라는 질문이 앞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몇 마디 나누면 그는 책도 끝까지 읽지도 않았을 뿐더러, 책의 내용보다 인세로 얼마나 수입을 올렸느냐가 더 궁금한 모양이었다. 그런 사실을 알고서는 씁쓸하여 책 기증을 자제하겠다고 맹세하지만 그래도 딱 끊지 못하던 가운데 몇 해 전 한 출판인을 만났다.

"선생님, 지인들에게 책을 거저 주지 마세요. 거저 주는 책은 그들 대부분 읽지 않습니다. 저자도 출판사도 서점도 먹고 살아야지요. 더욱이 책의 원료는 펄프로 생나무를 잘라 만든 겁니다."

그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저자가 체면치레로 책을 준다는 것이 매우 잘못된 일이요, 책의 원료가 펄프로 생나무를 잘라 만든다는 말은 충격이었다. 저자나 출판사가 독자들이 읽지도 않는 책을 쓰고 만든다는 것은 자연환경을 파괴하는 또 하나의 공해라는 사실임을 깨달았다. 그 뒤로는 독한 마음을 먹고 원고를 쓴 뒤 신간이 나와도 친지에게 책 기증을 극도로 자제하고 있다.

어느 제자의 메일

<영웅 안중근> 겉그림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 장군 순국 100주년 기념으로 현지 유적을 답사하고 쓴 책이다.
<영웅 안중근> 겉그림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 장군 순국 100주년 기념으로 현지 유적을 답사하고 쓴 책이다. ⓒ 눈빛출판사
지난 3월 26일, 안중근 장군 순국 100주년 기념일에 맞춰 <영웅 안중근>이라는 책을 펴냈다. 어느 책인들 공들여 쓰지 않았으련만 이 책도 무척 정성을 들였다.

지난해 10월 26일 안중근 장군 의거 100주년 기념일에 속초항을 출발하여 100년 전 안 장군이 고국을 떠난 뒤부터 가능한 그 발자취를 그대로 좇으며 국외 유적을 답사하고, 여러 학자들의 저서와 증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특히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얼빈에 이르는 열차여행 답사는 무려 40시간 넘게 이틀 밤을 보낸 긴 여로 끝에 하얼빈에 닿아 그곳 안중근 전문가조차 이른 새벽에 마중 나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얼빈까지 열차를 타고 답사하는 이는 처음"이라고 했다. 

답사에서 돌아온 뒤 기왕이면 안중근 장군 순국 100주년 기념일에 맞춰 책을 펴냈다. 나는 이 책의 머리글에 다음과 같이 썼다.

나는 이 책의 원고를 다 쓴 뒤 '죽어도 좋아'라는 말이 문득 떠올랐다. 이 말은 1960연대 초에 만든 미국영화의 제목으로 주제곡과 함께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그 영화에서 주인공들은 사랑을 위해 '죽어도 좋아'였다. 하지만 나는 그와 다른 차원에서 '죽어도 좋아'다.

나는 우리 현대사에 가장 빛나는 절세의 애국자요, 영웅인 안중근 장군이 가신 길을 그대로 뒤쫓으며 카메라에 부지런히 담고 무딘 붓을 마음껏 휘둘렀으니 작가로서 더 이상의 영광이 어디 있겠는가. 그야말로 공자가 말한 "아침에 도를 깨치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聞道 夕死可矣)"와 같은 심정이다. 정말 이제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

책이 나오자 출판사에서 저자용으로 10부를 보내주는데 답사 길에 도움을 받은 몇 분에게 보내자 내 수중에 책이 없었다. 몇 곳 더 보낼 곳이 있어도 꾹 참고 대신 몇 지인들에게 책이 나왔다는 메일을 보냈다. 메일 주소를 모르는 한 제자에게는 전화를 했다.

"선생님, 제가 조금 사드릴게요. 한 열 권만요."
"아니야, 한 권이면 족해."
"아니에요, 선생님. 저 학교 다닐 때 매우 힘들었는데 그때 선생님 말씀이 무척 힘이 되었거든요. 책 열 권을 저에게 보내지 마시고 대신 선생님이 그 책을 주고 싶은 분에게 드리세요."

수화기를 놓고서 그의 마음 씀이 나를 한동안 깊은 감동에 빠지게 했다. 그날 저녁 메일함을 열자 워싱턴 근교에 사는 한 제자가 메일을 보냈다.

제목: 좋은 소식 주셨네요~~
선생님 축하드려요~~ 오늘 아침 순영이와 전화를 하게 되었어요. 순영이와 의논해서 저도 부족 하지만 동참하기로 했어요. 아마도 선생님께서  당신 책을 보내드리고 싶은 분이 많으실 거라 생각해요. 저는 그동안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책에 어떻게 보답 드려야 하나 했는데, 요번이 아주 좋은 기회네요. 저는 한국 나가는 기회에 사보겠습니다. 이번 책이 잘 나갔으면 좋겠고요~ 건강 하세요. 사모님께 안부 전해 주시구요. 안녕히 계세요. 미진 올림

연해주 벌판 러시아 극동 우수리스크에서 국경도시 포브라니치야로 가는 철로 옆 황량한 들판에 밀싹이 파릇파릇 돋아나고 있다.
연해주 벌판러시아 극동 우수리스크에서 국경도시 포브라니치야로 가는 철로 옆 황량한 들판에 밀싹이 파릇파릇 돋아나고 있다. ⓒ 박도

250권의 책을 사는 신부님

또 하나 메일은 친구였다.

제목: 의미 있는 일을 했군요.
경하할 일이지요. 내가 가까이 지내고 있는 신부님이 미리내 성지에서 안중근 동상 제막식을 3월 26일에 합니다. 사정이 허락한다면 그 신부님께 책을 보내주시면 좋아하실 것 같군요. 무리한 부탁이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만…….

순간 '가까이 지내고 있는 신부님이라면 자기가 사서 보낼 일이지 뭐야'하는 생각이 들어 친구의 청을 묵살했다. 그리고는 제자들이 사준 20권으로 미처 보내지 못한 지인들에게 책을 우송하다가 곰곰 뜯어보니 '바로 이런 곳에 쓰라고 사준 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나는 그 친구가 가르쳐준 주소로 생면부지의 방구들장 신부님에게 <영웅 안중근>을 우송했다.

그 며칠 뒤 방 신부님으로부터 매우 고맙다는, "안중근 장군님께서 부활하여 제 앞에 계신 듯 하옵니다"라는 메일을 받았다. 다시 며칠 뒤 방 신부님에게 손 전화를 받았다. 인사말에 이어 책을 250권 보내달라는 사연이었다. 신부님의 말씀이지만 이때까지 이런 일이 없던 터라 도무지 믿어지지 않아 책을 펴낸 ㄴ출판사 직원에게 확인을 부탁했더니 사실이라고 했다.

출판사에서도 이런 일은 매우 드문 일이라 사장은 "하늘에 계신 안 도마님께서 도와주신 일"이라고 감격했다. 나는 신부님에게 그 고마움을 표현한 길이 없어 대신 그 답으로 이전에 쓴 책을 보내드렸다. 며칠 뒤 방 신부님에게 문자가 왔다.

평안하시기를 빌며 보내주신 '길 위에서 아버지를 만나다' 감명 깊이 읽었기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250권을 주문합니다.

이 책을 내준 ㅁ출판사에게 확인을 부탁하자 사실인 바, 책 재고가 부족하여 시중 서점에 나간 재고를 반품 받든지, 아니면 새로 찍어 보내야겠다는 답을 받았다.

나는 아직 신부님에게 다시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지 않았다.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고 하지만 어쩐지 내 말이 의례적인 인사로 가벼워 보일 것 같기 때문이다. 앞으로 남은 삶을 더 진지하게 살면서 성실하게 글을 쓰고 책을 펴내는 일이 신부님에게 드리는 답 같기 때문이다.

못난 둔재가 그동안 26권의 책을 펴내고, 지금도 책을 펴내고자 원고를 쓰고 있는 것은 지구촌 곳곳에 흩어져 있는 제자들의 뜨거운 성원 때문이리라. 언젠가 만난 한 제자의 말이다.

"아마 선생님은 잘 모르는 제자일 겁니다. 걔네 집에 갔더니 그동안 선생님이 쓰신 책은 서가에 다 꽂혀 있더라고요."

이 밤 문득 그들이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영웅 안중근 -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 장군의 자취를 찾아서

박도 지음, 눈빛(2010)


#책#영웅 안중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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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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