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경향신문>에 난 한 편의 기사가 내 눈길을 끌었다. 이 신문은
'기업과 임금 격차 커지고, 근로시간은 늘고… 이런데 中企에 가라고?' 를 통해 "중소기업 일자리의 질이 대기업에 비해 갈수록 열악해지고 있다"며 "대기업과의 임금격차는 더 커지고, 근로시간은 더 늘어나는 추세다, 이런 상황에서 '눈높이를 낮춰 중소기업에 취업하라'는 얘기는 공허하다"고 평했다.
맞다. 내 이야기다. 중소기업에 다니고 있는 직장인으로서, 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내가 부푼 꿈을 안고 본격적으로 사회에 첫발을 디딘 지도 5년이 넘었다. 흔히들 얘기하는 좋은 학벌, 높은 어학점수, 온갖 자격증을 지닌 '고스펙'은 아니었지만 주5일 근무를 하며 여가활동도 하고 저축도 하며 안정된 삶을 살고 싶었다. 대기업으로의 취업은 위에서 밝힌 스펙 문제로 일찌감치 접었고 당연하게 중소기업으로 눈을 돌렸다.
중소기업도 잘만 고르면 대기업 못지않은 복지와 급여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 믿었고 실제로 탄탄한 중소기업은 대기업보다 근무환경이 좋다고들 하니 전혀 망설일 것이 없었다. 운이 좋았는지 지원하는 회사마다 서류에 합격했고 면접에도 적극적으로 임한 결과 취업에 성공할 수 있었다.
중소기업 급여는 며느리도 몰러처음 입사했던 회사는 나름 규모도 꽤 있는 반도체 관련 회사였다. 다만 수도권을 벗어나 지방 도시에 자리를 잡고 있어 기숙사 생활을 해야만 하는 처지였다. 물론 이 정도는 감수할 수 있었다. 입사 후 얼마 되지 않아 손꼽아 기다리던 근로계약을 하게 되었을 때다.
대기업이야 언론에서도 많이 떠들듯이 어느 정도 급여의 '감'을 미리 짐작할 수 있지만 중소기업은 이 부분에서 전혀 감을 잡을 수가 없다. 그때 얘기한 연봉이 2000만원이 채 되지 않았다. 도대체 언론에서 매번 떠들던 대졸초임 연봉은 어디로 간 것일까? 나름 규모있는 중소기업이라서, 기대한 만큼 실망도 컸다.
아무튼 그때 난 더 이상 얘기할 것 없이 '사직'을 표명했다. 지금 생각하면 배부른 소리였지만 졸업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어느 때보다 자신감이 충만했었다. 더 좋은 회사를 들어가면 급여도 많이 받고 인정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입사 서류를 내미는 곳마다 면접까지는 봤으니 말이다.
중소기업의 구인광고를 보면 급여수준에 대해 설명 해주는 회사는 많지 않다. '회사 내규', '면접 후 협의'와 같은 말로 얼버무린다. 그러면서 이력서를 제출할 때는 '희망연봉'을 적게 돼있다. 회사 내규로 정해져 있는 신입사원 연봉을 공개하면 어떨까? 그렇다면 희망연봉을 적어내기도 수월할 텐데. 내규는 1800만 원인데 거기다 대고 2500만 원을 희망연봉으로 적어낼 수는 없지 않을까?
구인광고의 비밀, 결국 회사를 나오고 말았다
한 번은 이런 경우도 있었다. 구인광고에 정확하게 명시된 연봉을 보게 된 것이다. 인터넷을 자주 하는 누리꾼이라면 적어도 한번쯤은 들어봤을 만한 회사였다. 역시 서류 통과, 면접통과 후 최종적으로 실기시험까지 통과하여 입사했던 그 회사.
대학 전공과는 동 떨어진 새로운 세상을 접하게 되는 설렘도 잠시였다. 구인광고에서 봤던 연봉은 종적을 감추고 회사내규라며 내밀었던 계약서엔 그 구인광고에서 봤던 금액보다 많이 낮은 연봉만이 있을 뿐이었다. 게다가 퇴직금 포함 금액이라니 이건 해도 너무 하다는 생각뿐이었다.
이 문제로 먼저 입사한 선배에게 이 사실을 얘기했더니 자신도 그렇게 속아서 들어왔다고 털어놓았다. 다만 이 선배는 일이 재미있고 경력을 키우기에 나쁘지 않을 것 같아 있는 것이라 했다.
예전 TV 광고 중 신림동 떡볶이 가게의 마복림 할머니가 등장해 "우리 며느리도 몰러~~" 라던 고추장 광고도 아니고, 구인광고에 이런 비밀이 있을 줄이야. 난 이 사실을 용납하지 못해 결국 회사를 나오고 말았다. 일개 신입사원에게 이런 거짓말을 한다면 결국 오래있어도 득보단 실이 많을 것 같아서였다.
시간외 수당, 퇴직금... 그게 뭔가요그렇게 몇번의 실패(?)를 하고 해외생활까지 해보며 국내로 다시 돌아와 그동안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니 남은 것 없이 시간만 흐른 것 같아 안타까웠다. 그래서 급여에 연연하지 않고 다닐 수 있는 회사를 물색하던 중 유망한 벤처기업 타이틀을 달고 있던 중소기업에 입사하게 되었다.
연봉에 퇴직금이 포함(연봉을 1/13으로 나누게 되어 있다) 되어 실 수령액은 많지 않았지만 그쪽 분야에서 만큼은 알아주는 회사였기에 미래를 보고 다니게 되었다. 하지만 여기서도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니 처음 지원했던 일과는 많이 다른 일을 하고 있었고 이것이 중소기업 선배들에게 듣던 '멀티플레이'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중소기업은 대기업처럼 인원이 많고 부서의 체계가 명확하지 않아 이것저것 다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미래를 위해 여러 가지 경험하면 좋을 것 같아 나에게 주어지는 일들을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물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며 야근과 주말근무가 매달 고정적으로 늘어난 데 비해 '시간외 수당'이 전무했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식대지원만 받으며 '먹고 살기 위해 일한다'는 걸 실감해야만 했다.
이 때문일까. 대기업을 다니는 사람과 중소기업 다니는 사람이 만나면 연봉 계산법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부분 대기업 근로자들은 각종 수당, 연말 성과금, 세금을 제외하고 실제로 받는 '본봉'을 보통 '연봉'이라고 표현하지만 중소기업 근로자들은 거의 나오지 않는 수당, 성과금, 거기에 퇴직금까지 포함된 금액을 연봉이라 생각하고 얘기한다.
실제로 매달 받는 급여에 퇴직금을 포함해서 지급하는 회사도 많이 있고 내가 다니던 회사의 근로계약서에는 연봉에 '수당, 퇴직금, 세금을 모두 포함한다'는 내용이 명시되어 있었다. 결국 '본봉'이 얼마인지는 계산해도 알 수 없고 야근을 밥 먹듯이 해도 급여는 매달 똑같다.
친분이 있던 다른 회사 사람은 퇴사할 때 퇴직금을 못받았다고 나에게 하소연 하기도 했다. 2년 넘게 근무했는 데 왜 퇴직금이 없냐고 하니 처음 입사시 퇴직금이 급여에 포함되어 나온다고 구두로 설명했다는 것이다.
나는 노동부에 민원을 넣으면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그는 결국 퇴직금을 포기했다. 회사를 옮기더라도 계속 같은 계통에서 일해야 하고, 괜한 오해 사기도 싫다는 게 그가 퇴직금을 포기한 이유였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난, 남일 같지 않아서 많이 씁쓸했다.
중소기업 처우 개선이 시급한 과제너무 안 좋은 얘기만 늘어놓은 건 아닌가 싶지만 지금 이 시각에도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중소기업의 한 단면이다. 물론 "그럼 스펙 높여서 대기업 가지, 왜 중소기업을 가려고 하나요?"라는 반문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기업 정원은 한정 되어 있는데 모두 대기업에만 가려고 한다면, 대한민국은 100만 실업자를 넘어 세계로 도약하는 실업자 생산국이 될지도 모른다. 학력 인플레로 인해 대졸자가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이들에게 정부의 얘기처럼 무조건 "눈높이를 낮춰 중소기업에 취업하라"고 말 할 수는 없다.
가장 크게 지적되는 시간외수당과 퇴직금 문제, 이런 현실적이고 가장 기본적인 처우 개선이 선행되어야 취업 준비생들도 중소기업으로의 취업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중소기업들의 개선 노력과 그에 따른 정부의 피부에 와 닿는 중소기업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