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주년 되는 4·19를 맞이하여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와 대구사회연구소, 대구경북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4·9인혁열사계승사업회 4개 단체가 공동으로 준비한 4월혁명 50주년 기념학술토론회가 19일 오후 1시 경북대 복지관 3층 교수회의실에서 열렸다.
토론회는 총 3부로 진행되었다. 1, 2부는 부산대학교 장세룡 선생의 사회로 국가기록원 이영도 선생이 '4월혁명의 역사적 배경'이라는 주제로, 진실화해위의 김상숙, 임채도 선생과 영남대학교의 노용석, 경북대학교의 석원호 선생은 '4월혁명과 사회운동'이라는 주제로 발제를 했다. 그리고 금오공과대 최병덕 선생과 경북대의 채장수 선생, 대구역사교사모임의 장대수 선생과 성균관대학교 김일수 선생이 토론으로 참여했다.
3부는 계명대학교 이윤갑 선생의 사회로 '사월혁명과 오늘의 한국민주주의'라는 주제로 안동대학교 이창희 선생이 발제를 하고 대구경북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김찬수 이사와 문화비평가이자 여성주의 문학치료사인 이은주 선생이 토론을 했다. 또 참여한 모든 사람들과 종합토론을 하면서 4월혁명 50주년 기념토론회를 마쳤다.
관심을 끈 발표는 '2·28과 1960년 봄 혁명'이라는 주제로 발표한 영남대 정외과 김태일 선생의 이야기였다.
'4·19'혁명과 '4월'혁명에 대한 용어 개념이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었다. 4월이나 4·19라는 용어에는 첫째는 시간적으로 4·19, 둘째는 공간적으로 서울, 셋째는 주체적으로 대학생이라는 편견이 묻어있다고 했다. 4월 19일 서울에서 대학생들이 이끌었던 시위라는 뜻을 지나치게 돋보이게 하고 치켜세운다는 문제점이 있다고 했다.
김태일 선생은 그러한 것이 서울의 대학생 중심의 역사의식이라는 것이다. 4월 이전 즉, 2·28 대구에서 시작하여 3월 동안 서울이 아닌 전국 방방곡곡에서 타올랐던 저항운동은 무엇이며, 대학생이 아닌 초중고등학생, 도시빈민, 실업자, 직장인 등 저항 시위에 참여했던 민중들은 또 무엇인가?라며 '4월', '4·19'라는 개념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1960년 봄 혁명'이라고 부르는 것도 2·28대구민주운동이 혁명운동의 한 부분으로 자리매김하고 싶기 때문이라 했다.
토론에서 경북대 채장수 선생은 명칭은 기억, 담론투쟁의 영역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하면서 공감을 표시했다.
그 연장선에서 4·3항쟁도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인데, 이 항쟁의 중심가치를 남로당 제주도당의 무장투쟁이 시작되는 1948년 4월 3일보다는 미군정 치하의 압제에 대한 대중적 저항이 시작도는 1947년 3월1일에 두어야 한다는 기존의 관념을 깨는 주장을 했다.
마찬가지로 '386세대'라는 명칭이 가지는 배재성도 문제를 야기할 소지가 있다고 덧붙였다. 80년대 민주화운동의 주역을 특정 연령의 대학생으로 한정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또한 '혁명'은 5·18광주와 대비해서 과도한 의미 부여가 아닌지 조심스러운 문제제기도 함께 했다. '4월혁명'의 역사적 의미를 후대의 시각에서 다소 과도하게 설정하여 확대재생산하기보다는 던져놓았던 문제들을 차분하게 성찰하는 것을 중심으로 '4월혁명'의 재명칭화를 시도하는 것이 올바른 접근법이라고 했다.
5시간 넘게 계속된 토론회는 지역의 관점에서 오늘의 한국 민주주의에 대한 성찰과 과제를 소통과 통합, 그리고 새판짜기의 고민을 던지며 마무리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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