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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수한 밴댕이구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추억 속에 아련하게 남아 있는 인천 백운역 앞 부안고가교(일명 백운고가교) 밑 밴댕이구이집.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그곳에서 사람들은 석쇠에 밴댕이를 올려놓고 세상사 시름을 달랬다.

 

동인천에 삼치구이가 유명하다면 부평에는 단연 밴댕이구이다. 이제 밴댕이구이를 맛볼 수 있는 곳은 몇 안 남았지만, 부평공원 옆 굴포천 상류 복개구간에 들어선 밴댕이골목은 아직도 유명하다. 그리고 거기에는 피는 안 섞였지만 밴댕이구이 다섯 자매가 있다.

 

굴포천 상류 복개하면서 밴댕이골목 들어서

 

맛도 추억도 길 따라 사람 따라 흐른다. 밴댕이골목이 각광을 받게 된 것은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오른다. 백운역이 들어서기 전에는 부안고가교가 없었고 부평 쪽 사람들이 부평4거리(옛 부평삼거리)로 가기 위해서는 (부평) 신촌의 '종로'라고 불리었던, 부평미군기지 옛 정문에서 백운역에 이르는 골목길을 지나야 했다.

 

그러다 길이 닦이고 백운역이 들어서고, 고가교가 들어서면서 번화가였던 길은 골목길 신세로 전락했다. 자연스레 사람들의 발길도 줄었다. 그런 뒤 부평미군기지 앞에 있던 공병부대기지가 부평공원으로 바뀌고 굴포천 상류에 해당하는 부평공원 옆 하천이 복개되면서 복개구간에 밴댕이구이집이 들어섰다.

 

연탄구이 '호남집'을 운영하는 길성순(56)씨는 "10년 좀 더 된 것 같다. 15년 전 이 자리에서 장사할 때는 밴댕이골목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없어서 장사도 안 되기에 다른 데 갔다가 복개하면서 다시 가게를 열었다. 그러니 밴댕이구이골목 형성은 그 때부터로 보면 얼추 맞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평 신촌은 경인전철이 지나는 부평역과 백운역 사이 부평공원 앞마을을 일컫는다. 일제강점기 시절 현 미군기지는 당시 일본 관동군 조병창(군수물자 생산지)으로 사용되던 곳으로 그곳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마을을 이루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 신촌과 부평공원 사이에는 굴포천이 흘렀다. 밴댕구이집 '외포리'를 운영하는 장상임(59)씨는 "전에는 그 천에서 멱 감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들었다. 헌데 사람들이 밀집하면서 생활하수가 모이고 차량들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레 복개하게 됐다"며 "복개하기 전에는 가게 후문이었던 곳이 지금은 출입문으로 바뀌었다"고 전했다.

 

고소한 밴댕이구이와 감칠맛 밴댕이무침에 침이 '꼴깍'

 

밴댕이골목을 형성하고 있는 다섯 집은 차례로 '대명포구', '외포리', '호남연탄구이', '강화밴댕이', '철따라 맛따라'이다. 다섯 집 모두 파는 게 비슷하다.

 

'대명포구'는 강화 초지대교 건너기 전 김포에 있는 조그만 항구 이름이고, '외포리' 역시 강화도에서 석모도를 들어가는 시골 항이며, '강화밴댕이'는 이름자체로 강화도를 말하고 있다. 다만 '호남연탄구이'가 소 막창구이와 곱창구이를 특화시킨 것 외에는 대부분 밴댕이구이와 무침 등 제철 생선회와 구이, 조개구이 등을 전문으로 팔고 있다.

 

'강화밴댕이'를 운영하고 있는 하정숙(58)씨는 "인천사람들이 밴댕이구이를 특히 좋아하는 것 같다. 찾아오는 사람들도 밴댕이구이에 대한 추억을 많이 얘기한다. 백운역 앞에 있었다는 밴댕이구이집도 장사하면서 들은 얘기"라며 "밴댕이가 강화도를 비롯한 서해 일대에서 많이 났고, 많이 나는 만큼 서민들이 저렴하게 구할 수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밴댕이골목을 지키는 다섯 아줌마 자매들이 추천하는 음식은 단연 밴댕이구이와 밴댕이회무침이다. 밴댕이 회덮밥도 있는데 회덮밥은 밴댕이회무침을 안주나 반주삼아 실컷 먹다가 출출하다 싶을 때 밥을 얹어 비비면 그 자체로 회덮밥이 된다. 그리고 별미인 회가 있다.

 

밴댕이골목을 지키는 다섯 자매 중 어린 축에 속하는 '대명포구' 황명희(50)씨는 "뭐든 제철에 먹어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다. 밴댕이는 4월부터 시작해 6월에 막을 내리는데 요즘에는 보관시설이 좋아 사시사철 먹을 수 있지만 그래도 알이 꽉 차 있는 5월이 최고"라며 "살이 통통 올라 회 맛도 그 때가 최고"라고 말했다.

 

철따라 맛따라를 운영하는 송희숙씨는 "사람마다 입맛이 다르다. 구이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무침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며 "밴댕이회는 전어회와 달리 포를 떠 잘게 안 썰고 통째로 먹는다. 장사하는 사람들은 보통 자기네 음식을 잘 안 먹는데 살이 올랐을 땐 우리도 정말 먹고 싶어서 장사를 마친 뒤 포를 떠 몇 쌈 먹고 집에 가곤 한다. 밴댕이를 제대로 맛보려면 회에서 구이까지 다양하게 맛보는 게 좋다"고 덧붙였다.

 

다섯 자매의 얘기를 토대로 손님들의 주문을 살펴보니 밴댕이구이가 제일 많다. 밴댕이골목을 자주 찾는다는 이 마을 신종택씨는 "포를 떠 밴댕이회 본연의 맛을 보고, 그런 뒤 시큼하면서도 매콤하고 달콤한 무침을 곁들이면 애주가한테 이만한 안주가 없다"며 "그런 뒤 고소한 구이까지 입에 넣으면 금상첨화다. 이 골목을 지날 때 구이냄새에 발목이 잡힐 때가 허다하다. 특히, 구이는 여름이 시작될 때 땀을 뻘뻘 흘리며 먹을 때가 제 맛인데 시원한 막걸리와 함께라면 세상의 시름도 연기와 함께 사라진다"고 밴댕이를 예찬했다.

 

밴댕이골목도 철 따라 맛 따라 그리고 세월 따라

 

밴댕이골목이 서서히 바빠지기 시작했다. 밴댕이 골목이라고 해서 밴댕이만 취급하는 것은 아니라서 쭈꾸미가 나오는 봄부터 전어가 끝물을 타는 가을까지가 밴댕이골목이 가장 바쁜 철이다.

 

4월 주꾸미로 한철 장사를 시작하는 밴댕이골목은 5~6월 밴댕이회와 무침, 구이로 절정에 이른다. 여름철은 봄에 비해 밴댕이골목이 다소 조용하다. 밴댕이구이를 좋아하는 마니아들은 그래서 여름철을 선호하기도 한다. 그런 뒤 가을이 시작되면 전어와 새우로, 겨울이 되면 숭어나 간재미, 조개구이로 밴댕이골목을 찾는 서민들의 입맛을 달랜다.

 

밴댕이골목의 끝집인 '철따라 맛따라'를 운영하는 송희숙는 "경제가 안 좋으니 장사가 안 되는 것은 우리도 마찬가지다. 장사가 잘 되면 얼마나 좋을까만 그리 호락호락 하지 않다. 잘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는 게 장사"라며 "꼭 무슨 아리랑 같다. 주꾸미가 나올 때, 밴댕이가 나올 때, 전어가 나올 때 나도 손님도 아리랑 고개를 넘는다"고 말했다.

 

해가 지고 부평공원에 어둠이 깔리면 공원 건너편에 불이 켜진다. 그 불빛 사이로 연탄구이에 밴댕이가 올려 졌는지 연기와 함께 구이냄새가 이내 콧속을 파고든다. 아직은 밤 날씨가 차서 그런지 희미한 비닐 천막 안으로 사람들이 두런두런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나이 지긋한 어른들이 아직 끝나지 않은 길에서 추억을 나누고, 중년의 사람들이 저마다 세상사에 대한 열정적인 토론을 벌인다. 가야할 길과 지나온 길을 되묻고 반추하는 청년들도 거기에 가세해 오늘도 밴댕이골목은 정겹다. 막걸리 한 사발에 밴댕이골목의 하루 해가 그렇게 또 저문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부평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밴댕이구이#부평 밴댕이골목#인천#밴댕이회#부평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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