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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4월 17일) 헤이리에도 봄기운과 함께 다양한 행사들이 펼쳐졌습니다. 새로운 전시가 개막되고 공연도 개최되었습니다.

 

저는 그 봄의 풍경을 담기 위해 헤이리를 한바퀴 돌았습니다. 더스텝 작가동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으며 안상규 화백님이 살고 계시는 은행마을로 걸음을 옮겼습니다.

 

안 화백님 뜰 앞 대파가 30cm가 넘는 키를 키운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이미 공연이 시작되었을 국윤종의 독창회 현장인 예맥아트홀로 급히 발길을 옮겼습니다.

 

 

안상규 화백님은 저보다 두 자리가 넘는 차이로 연세가 훨씬 많은 분임에도 불구하고 서로가 '벗님'으로 호칭하며 숨김없이 마음을 나누는 사이로 헤이리에서의 7년을 지내오고 있습니다. 저의 처도 친정아버님을 대하는 마음이고 저의 아들·딸들도 친할아버지를 대하는 편안한 마음입니다.

 

일요일에 안 화백님과 점심을 함께 했습니다. 일행들과 함께 막걸리 한 잔도 곁들였습니다. 봄기운 탓인지 단 한잔의 낮술에도 얼굴이 불콰해졌습니다. 안화백님께서 불그레한 얼굴을 구태여 숨기지 않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내, 술기운에 벗님께 고백하고 싶은 게 있어요. 괜찮아요?"

"벗님, 물론이죠. 어서 고백하세요."

 

저는 안 화백님의 고백이라는 말에 더욱 솔깃해져서 말을 재촉했습니다.

 

"벗님이 내게 깨달음을 주었어요. 어제, 우리 마을에 왔었지요? 내가 3층 창가의 의자에 앉아 밖을 보니 벗님이 작가동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기에 필시 내 집에 들르겠구나 하고 급히 1층 갤러리로 내려가서 불을 켜고 온풍기를 털었어요. 그리고 한참을 기다려도 안 들어오는 거예요. 결국 촬영이 더 길어지나 보다 하고 한동안을 더 기다렸지만 바라보고 있는 출입문을 밀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난 그날 밤 오랫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어요. 사람의 관계성에 관한 의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습니다. 그 부질없는 사변(思辨)의 결론은 '다정도 병이구나'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벗님과 정을 주고받지 않았더라면 기다림도 없고 서운함도 없을 테지요. 결국,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병을 만듭니다."

 

 

저는 안 선생님의 전혀 예상치 못한 말씀이 충격이었습니다. 저는 지금껏 안 선생님의 동네를 지나칠 때면 으레 용건의 유무와 관계없이 선생님의 작업실에 들려 얼굴 한번 보고 나오곤 했지요. 지난 토요일의 경우는 이미 음악회가 시작되었다는 조바심 때문에 안 선생님댁을 지나쳤던 것입니다. 돌이켜보니 제가 은행마을에 갈 때마다 안 선생님의 댁에 발길 했던 것도, 토요일에 선생님 댁을 그냥 지나쳤던 것도 안 선생님을 고려하지 않은 무의식적으로 일어난 일들입니다.

 

안 선생님의 고백은 제가 무심코 한 행위들이 누군가에는 병이 될 수 있음을 알게 해준, 제게도 큰 깨달음이었습니다.

 

일요일 해질녘에 그 마을의 최영선갤러리에 들렸다가 부러 안 선생님댁으로 갔습니다. 선생님은 안 계시고 음악만 켜져 있었습니다. 저는 이미 완전히 어두워진 스튜디오에 불을 켜고 혼자 한참을 둘러보았습니다.

 

이미 수십 번도 더 들락인 그 공간이 더욱 각별해졌습니다. 안 선생님께서 그리다만 캔버스며 붓도 유심히 보고 안 선생님이 앉아 평소 작업을 하시는 의자에도 앉아보았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제 초상화가 선생님의 작업실 책상 옆 이젤에 고이 올려져있는 것도 보았습니다. 그 초상화는 제가 모델이 되어준 적이 없었던 그림입니다. 몇 년 전에 그 그림을 처음보고 제가 물었던 말을 떠올렸습니다.

 

"제가 모델을 한 적도 없는데 어떻게 제 초상화를 그릴 수 있었어요?"

"벗님은 항상 내 머리와 가슴속에 들어있어서 언제든지 그릴 수 있어요."

 

안 선생님의 그 대답이 지금에 와서야 더욱 새삼스럽게 제 가슴에 박혔습니다.

 

안 선생님의 그림은 늘 한국의 창을 소재로 합니다. 안 선생님께서는 애초에 시를 쓰겠다는 욕심으로 국문과에 진학했다가 다시 홍대미대에 입학했던 분입니다. 그래서 글로 생각을 푸는 솜씨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월요일 오전, 컴맹이신 안 선생님께서 스스로 쓰신 '작가노트'를 워드로 입력해달라는 부탁을 하기위해 제게 왔습니다.

 

"작품은 작가가 사물의 본질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표현양식이 달라진다. 나는 표현의 대상을 이지적 관념보다는 정서적 감성으로 파악한다. 따라서 나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형이나 색은 현상으로서가 아니고 사유로서 존재한다.

 

내가 추구하는 조형미는 선과 색이다. 곧고 단순한 선의 결구와 담백하고 소박한 흰색. 이는 우리 한옥의 전통창호에서 찾을 수 있다. 창은 안과 밖을 이어주는 경계인 동시에 최초의 관문이다. 안은 내재된 마음이요 밖은 실천하는 행동이다. 창은 눈이며 마음이다. 사물을 보는 것은 눈이고 세상을 보는 것은 마음이다. 마음의 창을 열면 사람이 소중하고 그리우며 눈의 창을 열면 자연이 아름답고 고귀하다.

 

나는 나의 작품에 대한 설명을 가급적 피한다. 가능한 한 관조자의 자유로운 상상과 해석에 맡기고 싶다. 이론과 논리적 설명은 보는 이의 상상력을 지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품은 순순하게 느끼는 것이다. 선입관을 갖고 보는 것은 금물이다.

 

작가는 무엇에든 얽매어서는 안 된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제비와 같이 자유스러워야 한다. 고정관념이나 일상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내가 그림을 그리는 이유는 나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한 행위 그 자체일 뿐이다."

 

안 선생은 유리로 된 서양의 창이 아니라 문창살이 있는 한국의 창을 그립니다. 유리는 내외가 훤히 보여서 소통인 듯하지만 모든 공기의 흐름을 차단합니다. 그러나 한국의 창호지는 시야를 차단해서 소통을 막는 듯하지만 공기와 소리가 드나듭니다. 안 선생님께서 여닫는 문을 그리지만 그것은 소통을 얘기하고 싶었던 것이지요. 사람과 교감하고자 하는 '세상을 보는 마음의 창'을 그리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안 선생님께서 10여 년 전에 한 고등학교의 미술교사로 계실 적에 쓰신 교지의 다른 글에서 금강경의 구절을 인용한 내용을 볼 수 있었습니다.

 

"과거는 지나갔으니 미련을 두지 말고 현재는 다가 왔으니 망설이지 말고 미래는 오지 않았으니 망상을 말라.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라."

 

금강경에서 과거의 마음도, 현재의 마음도 그리고 미래의 마음도 얽맬 수 없음을 설파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정으로 병을 앓습니다. 토요일밤 다정이 병이되어 삼경(三更)에도 잠 못 이루었을 안 선생님을 생각하니 오늘 제가 잠 못 드는 것은 춘심 탓만은 아닐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포스팅됩니다.


태그:#안상규, #헤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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