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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일자 4면 하단에 위치한 문제의 기사. 조선닷컴에서는 이를 메인톱으로 처리했다.
20일자 4면 하단에 위치한 문제의 기사. 조선닷컴에서는 이를 메인톱으로 처리했다. ⓒ 문성

20일자 <조선일보>에 엄청난 기사가 떴다. 4면 하단에 실린 <"김정일이 직접 '대청해전 복수' 지시/北 반잠수정으로 천안함 침몰시켰다"> 타이틀을 단 단독기사다.

내용은 따옴표로 처리된 제목이 시사하듯, 최성용 납북자가족모임대표가 19일 북한 고위 장교와 전화통화 하면서 그에게 들었다는 "카더라" 기사다.

최씨에 따르면, 북한군 장교가 "천안함 침몰은 북한의 계획적인 작전에 의해 빚어진 참사"이며, "작년 11월 대청해전 패전 이후 김정일 장군이 '어떻게 하든 꼭 복수를 하라'며 친히 남포 서해함대사령부를 방문해 보복 명령을 내린 데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북한군 장교는 또 "비파곶에서 출발한 13명의 대원이 천안함을 침몰시켰"으며 "워낙 중대한 작전이라 3명이 탈 수 있는 반잠수정을 개조해 13명이 타고 나간 것으로 안다"는 말까지 전했다고 했다.

기사 내용이 틀림없다면, 천안함 침몰원인을 조사한답시고 더이상 지체하거나 시간을 끌 필요가 없어 보인다. 적의 장교 입에서 자신들이 했다는 말이 나왔다는데 이보다 더 확실한 증거가 어디 있겠는가.

'북 작전 참사' 기사, <조선>은 왜 4면에 실었을까

알다시피 <조선일보>는 천안함 침몰 직후부터 '북한군에 의한 어뢰 공격설'에 방점을 찍으며 국민에게 전쟁 가능성까지 포함한 비상한 결심을 요구하는 기사와 사설들을 수차례 실어 왔다.

"천안함이 북한의 기뢰 또는 어뢰 공격을 받고 침몰한 것이 사실로 입증되는 순간 대한민국은 국가적 차원의 대응을 결정해야 할 고비를 맞게 된다. 상황에 따라서는 전시에 준하는 국가적 위기도 각오해야 한다..."(사설, <국가적 위기에 대한민국 저력 보여주자>, 2010.03.30)

"천안함 관련 후속 조치는 때론 대한민국과 대한민국 국민 모두에게 비상한 결단을 요구할 수도 있다. 대한민국은 천안함 침몰의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 즉각적이고 확고한 결단을 내리고 행동할 준비를 갖춰야 한다..."(사설, <천안함 사태에 대한 결단의 자세도 갖춰나가야>, 2010.03.31)

"천안함 침몰은 그 자체만으로도 '중대한 사태'다. 그러나 우리가 국가적·국민적 결단을 내려야 할 '국가안보적 중대 상황'이 전개되는 것은 지금부터다. 국제법상 어뢰나 기뢰로 군함을 침몰시킨 것은 명백한 무력 공격 행위이며, 이에 대해서는 국제 평화를 대원칙으로 하는 유엔헌장조차 '자위권' 발동을 허용하고 있다..."(<'안보적 중대 상황'과 마주할 마음의 준비 갖출 때다>, 2010.04.17)

"물론 남북이 부딪치면 우리가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은 곧 김일성 세습 정권의 종말이 될 것이라는 점 역시 분명하다...우리가 이런 북한을 상대하려면 스스로 선택의 폭을 좁힐 게 아니라 '군사적 선택을 포함한 모든 선택'을 열어놓고 북한을 압박해야 한다..."(<군사적 대응도 열어놓아야 외교에 힘이 실린다>, 2010.04.20)


이런 <조선일보> 입장에서 보면, 북한군 장교가 최성용 납북자 대표에게 전화로 알려줬다는 해당 기사는 기존의 주장을 가장 든든하게 뒷받침하는 것이자, 천안함 침몰 원인을 두고 여러가지 말이 오가고 있는 작금의 혼돈을 쾌도난마처럼 한 방에 정리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어마어마한 내용을 담고 있는 중차대한 기사를 <조선일보>는 왜 1면이 아니라 4면 하단에 배치했을까. (물론 인터넷판에는 머리기사로 보도했다) 더구나 자신이 단독으로 보도한 특종기사를?

3명 탈 수 있는 반잠수정에 13명을 태웠다고?

몇 가지 추론이 가능하다. 우선, 납북자 대표 최씨가 북한군 장교에게 들었다며 전해준 얘기는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있다. 생각해 보라. 일개 민간인이 현역 북한군 장교와 자유자재로 전화로 접촉하고 또 그를 통해 대통령과 남한의 정보당국도 모르는 일급비밀을 전해 듣는다는 게 상식적으로 가능한 일일까?

이게 가능하다면, 국정원은 당장 짐싸서 해산해야 한다. 민간인이 전화 한 통화로 북한군 고위장교에게 톱시크릿을 제공받는 마당에, 비싼 돈 들여가며 국정원을 운영할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백보양보해서, 최씨가 북한군 장교와 전화 통화를 한 게 사실이라치자. 그렇다면 "반국가단체의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와 회합·통신 기타의 방법으로 연락을 한" 그를 당장 국가보안법 제8조 위반으로 집어 넣어야 한다. 또한 역공작의 위험이 상존함에도, 북한군 장교와 통화했다는 최씨의 말을 <조선일보>가 확인도 않고 지면에 내보냈다면, <조선일보> 역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상식을 뛰어넘은 이야기는 그 뿐만이 아니다. 북한군 장교가 최씨에게 전화로 알려줬다는 천안함 격파 비법은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한다. 이 보도 전까지만 해도 <조선일보>가 가상한 북한의 어뢰공격은 "중어뢰를 적재할 수 있는 최소 상어급 잠수함"에 맞춰져 있었다. 지진파에 맞추려면 적어도 그 정도의 폭발력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그런데 이번엔 '반잠수정에 의한 (경어뢰식) 타격'이란다. 그렇다면 <조선일보>가 '북한 공격설'을 뒷받침하기 위해 이제껏 노래했던 지진파는, 중어뢰는 뭔가.

게다가 <조선일보>는 이전 기사에서 북한의 반잠수정에 승선 가능한 인원을 최대 8명이라고 보도했다(참조. <'사기 떨어진 군' 교란 노린 듯>, 1998.12.18). 그러나 최씨가 이번에 북한 장교 입을 빌려 폭로한 북한 반잠수정의 침투방법은 "3명이 탈 수 있는 반잠수정을 개조해 13명이 타고 나갔다"는 것이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반잠수정을 이용한 공격에 13명이나 필요하다는 것도 의아하지만, 이런 아크로바틱이 가능하려면 '백자평'에 달린 댓글마따나 '인간 쥐포'로 만들어서 그 좁은 잠수정 안에 2층 3층으로 차곡차고 쌓는 수밖에 없다. 이게 과연 말이나 될 법한 소린가?


#천안함 침몰#북한 공격설#조선일보 유언비어#북한 반잠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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