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월요일 아빠는 고기를 부위별로 사오셨다. 로또 4등에 당첨돼서 돈 5만 원으로 그냥 조금 사왔다고 하시기에, 우린 두 눈이 휘둥그레지며 "아빠, 로또에 당첨됐어?"라고 소리쳤다.
몇 년 동안 매주 로또를 사는 것은 아빠의 유일한 취미였다. 비록 단돈 5만 원이긴 하지만 덕분에 가족끼리 도란도란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으니 좋다고 생각했는데, 로또 당첨되었다는 소리를 듣고 나서 엄마의 반응은 우리와 다르셨다.
"정말 4등이야?"
"엄마, 4등이니깐 그냥 고기 사왔지."
"너희 아빤 5백만 원 타야 5만 원 됐다고 할 사람이야."
엄마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빠의 웃음이 터지셨다. 아빠의 웃음을 보고 엄마는 말을 더 이으셨다.
"차라리 귀신을 속여"라는 엄마의 말에 아빠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시며 지갑 속에서 영수증을 꺼내셨다.
"하나 더 맞춰서 백만 원 조금 더 탔어."
종이엔 110만 원가량의 금액이 적혀 있었다. 역시 엄마다. 우린 아빠가 4등 당첨되었다고 했을 때 대단하다는 생각만 했는데, 아빠는 아직도 엄마 손바닥 위에 살고 계신 듯했다.
3등이니 번호 하나가 틀렸을 뿐인데, 토요일에 방송을 보며 아빠의 심장이 얼마나 두근거렸을까? 아빠는 번호가 하나씩 맞아 들어갈 때마다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다고 하셨다.
"1등 안돼서 다행이네. 아빠 심장에 마비라도 왔음 어쩔 뻔했어? 그렇지 엄마?"
평소엔 돈 좋아하시는 엄마도 내 말에 맞장구를 치셨다. "그럼, 이 방 저 방 다 좋다고 해도 서방이 최고지"라는 엄마의 애정표현에 온 가족이 한바탕 웃었다.
우리는 지난주 내내 아빠의 로또 당첨금 덕분에 저녁식사 때 고기반찬을 먹었다. 식구들 모두 그걸로 행복했는데, 단 한 분 아빠만은 그렇지 못하셨다. 아빠는 2주가 지난 지금도 "번호 하나만 더 맞았으면 34억인데…"하며 아쉬워하셨다. 하나 빗나간 번호는 38번인데, 아빠의 남은 번호는 39번이었다고 한다. 아까울 법도 하지만 우리 가족 중 아빠를 제외하고 그걸 크게 아쉬워하는 사람은 없다.
"아빠, 1등 안돼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됐으면 아빠 도망가서 얼굴도 못 볼 뻔했잖아?"
나의 애정 섞인 농담에 아빠는 "에이, 아니야. 십억은 떼어 줘야지"라고 웃으시며 방으로 들어가셨지만 이윽고 아쉬움의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아빠의 34억 속앓이는 당분간 계속 될 듯하다.
하지만 가족들 모두 34억보다 아빠가 좋다고 했으니 아빠는 로또 1등보다 비싼 몸이 되셨다. 만약 번호 하나가 더 맞아 아빠에게 거금이 생겼다면, 가족 모두 지금처럼 로또 하나로 재밌게 지낼 수 있었을까? 1등이 아니어서 참 다행이었다. 물론 이 말에 동의 안 하는 아빠를 제외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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